브루클린의 동네서점을 소개합니다
143 7th Ave, Brooklyn, NY 11215
동네주민들의 사랑방
코로나 이후 1년 반 만에 지하철을 탔다. 지저분하고 시끄럽기로 악명 높은 뉴욕 지하철이지만 좋아하는 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책 읽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지하철을 타면 거의 책을 꺼내 들곤 했던 나는 동지들 곁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곤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지하철 동료들은 대부분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드는 건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세상이 책을 외면하고 있구나, 울적한 마음이 들 때면 커뮤니티 북스토어로 간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세계에 들어간 것 마냥 평일 낮에도 북적이는 이 책방을 보면 아직 세상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적어도 이 책방이 문을 닫는 일은 없겠다고 안심하게 된다.
파크 슬로프의 가장 번화한 거리 7번가에 갈 때면 일부러 책방을 마지막 코스로 잡는다. 근처에 있는 대형 체인 서점 반스 앤 노블은 가볍게 건너뛰고 자그마한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부터 한다. 하지만 무리는 금물이다. 책방을 방문하기 전에 갖춰야 할 것들 중 튼튼한 다리는 필수이므로. 그렇게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자연스럽게 오늘의 마지막 코스, 커뮤니티 북스토어로 향한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초록색 현수막을 고수하고 있는 이 책방의 역사는 자그마치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잔 시올리와 당시 남편 존 시올리는 1971년, 파크 슬로프에 커뮤니티 북스토어를 열었다. 당시에 파크 슬로프는 젊은 이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었지만 상업 지구는 아니었다. 기회를 엿본 부부는 작은 서점을 하나 연 뒤 3년 후인 1974년, 브루클린 하이츠에 두 번째 지점을 연다. 1980년 부부가 갈라서면서 브루클린 하이츠 지점은 존이, 파크 슬로프 지점은 수잔이 갖기로 하는데 1980년대에 코블 힐로 이사한 뒤 존이 은퇴하면서 2016년 문을 닫은 하이츠 지점과는 달리 파크 슬로프 지점은 아직까지 건재하고 있다.
1997년, 반스 앤 노블이 인근에 문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수잔은 이 거대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그녀는 가게 벽을 허물고 재고를 확장했으며 카페를 짓고 뒤뜰을 꾸몄다. 그렇게 어렵사리 경쟁을 이어가던 수잔은 2001년, 캐서린 본에게 책방을 인수했고 2010년부터는 스테파니 발데즈, 에즈라 골드스타인 부부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 서점은 2013년에 2번째 지점인 테라스 북스를 열 만큼 번성했고 다양한 낭독회나 패널 토론 같은 행사를 주최하는 등 현지 작가들을 알리는 무대이자 지역의 중심지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폴 오스터, 줌파 라히리, 니콜 클라우스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낭독회만큼이나 이 서점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Tiny the Usurper라는 고양이와 John이라는 이름의 거북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이 고양이는 서가 사이를 유유히 거닐다가 때로는 책 위로 폴짝 뛰어오르고 슬그머니 책에 기대 낮잠을 자기도 한다. 이 고양이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팔로워가 자그마치 4,450명(2021년 10월 기준)으로 나보다 4배나 많다. 이 고양이는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로 번역된 <Biobliophile>에 얼굴 도장을 찍기도 했다. 역시 유명인! 뒤뜰 연못에 살고 있는 거북이 역시 주인이 한눈을 판 틈을 타 복도를 제법 빠르게 기어 다니기도 한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초록색 조명이 들어오는 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소설, 에세이, 음악, 예술, 역사, 여행, 사진집, 뉴욕 코너 등 알찬 큐레이션을 자랑하는 서점. 입구에는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들이 빼곡이 꽂혀 있고 세로로 긴 서점의 복도를 따라 끝까지 가면 아동 코너를 만날 수 있다. 테라스 북스토어에서 보던 인형들이 다시 나를 반기고 테라스 북스토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책들도 곳곳에 보인다. 딸아이와 함께 이 서점에 들어가면 이제 각자의 책을 읽자고 갈라서는데 결국 책에 푹 빠져 있는 아이를 찾아 내가 이쪽으로 오는 것으로 우리의 서점 탐방은 마무리 되곤 한다.
아동도서 코너 한 켠에 놓인 낡은 빨간 피아노를 지나 뒷문을 열고 나가면 수잔이 만들었다던 정원이 나온다. 각종 행사가 일어나는 이곳은 이 서점의 비밀 공간으로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10년 전 이 서점의 40주년 생일파티를 이곳에서 했다는 얘기를 <뉴욕의 책방>에서 읽었는데 사진을 보니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앞으로 10년도, 20년도 그렇지 않을까.
커뮤니티 북스토어는 올 가을 50주년을 맞이했다. 50년 동안 같은 곳에서 서점이 운영된다는 건 어떠한 의미일까. 우범지대에 속했을 동네가 값비싼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을 서점.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만큼 많은 것을 품고 있을 서점. 1956년부터 삼대 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속초의 동아서점처럼 나름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골목길을 지키고 있는 이 서점은 자신이 지닌 가장 큰 자산이 커뮤니티임을 잘 알고 있다. 한 때 폐업 직전까지 갔으나 동네주민들의 지지로 다시 살아났다고.
서점을 운영하는 에즈라는 이 동네가 더 이상 예전 분위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서점이 위치한 거리는 프랜차이즈보다는 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대부분인 진짜 로컬 상권이다. "책에는 돈으로 측량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이 만들어가고 있는 상권. 인스타그램으로, 블로그로도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대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내 눈으로 그들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안심이 된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만나 우리끼리 안부를 묻는 기분이랄까.
이들을 보며 부지런히 빙수를 갈고 커피를 내리고 온갖 모임을 운영해도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한국의 수많은 동네책방을 떠올린다. 그리고 커피 팔기를 거부하다 결국 문을 닫은(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송은정 작가의 "일단멈춤"을 떠올린다. 저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의 수많은 동네책방이 살아나려면 결국 지역사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굿즈를 만들어 팔지도 않고 오롯지 '책'에만 집중하는 이 책방이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에는 동네사람들의 기여가 가장 크다는 걸, 서점이 잘 운영되려면 미디어의 조명도, 참신한 비즈니스 모델도 아닌 책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걸 50년 된 이 서점은 보여주고 있다.
서점의 모든 공간 중 계산대가 가장 북적거리는 이 이상한 서점을 뒤로한 채 돌아서며 테라스 북스와 커뮤니티 북스토어 사이의 거리(street)를 생각했다. 테라스 북스에서 손님이 원하는 책이 없을 경우 커뮤니티 북스토어에서 자전거로 배달을 해주기도 한다는데, 그런 면에서 두 서점을 이어주는 거리 전체가 서점인 셈이다. 이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나지막한 상점들, 곳곳에 자리한 주택들, 그리고 그곳을 오가는 모든 이들이 두 서점 간의 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동네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