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동네서점을 소개합니다
242 Prospect Park West, Brooklyn, NY 11215
핼러윈에 캔디를 나눠주는 서점
테라스 북스(Terrace Books)는 그야말로 자그마한 동네책방이다. 인근에 위치한 커뮤니티 북스토어(community bookstore)가 2013년, 기존 자리에 있던 바보스 북스(Babbo’s Books)를 인수하면서 테라스 북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6년 간 이 자리를 지켰던 서점이 문을 닫으려는 찰나 구세주가 나타나 서점과 동네, 동네 주민들을 전부 구출해준 셈이다.
들어가면 바로 주인장의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이 작은 책방은 간신히 한 사람 정도 서서 책을 구경할 만한 정도의 폭 밖에 되지 않는다. 파크 슬로프에 자리한 브라운 스톤 집들이 그런 것처럼 세로로 길쭉한 구조다. 양 옆으로 빼곡이 들어선 책장에는 주민들이 자주 찾는 소설과 에세이가 주로 꽂혀 있고 안으로 쭉 들어가면 아동 도서 코너가 나타난다. 아이들이 편하게 앉아서 책을 보고 고를 수 있도록 가장 널찍한 장소를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할애한 것이 동네 서점답다.
사실 내가 이 책방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쇼윈도다. 우울한 날 무심코 지나가다가 리베카 솔닛의 신간 <Recollections of My Nonexistence>가 나온 것을 본 것도, 이름 모를 한국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 것도 바로 이 쇼윈도였다. 마음 상태가 어떻든 늘 그 자리에 누운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책들에게 눈길을 주는 건 내가 오며 가며 거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마트에 들리러, 지하철 타러, 공원에 가러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내가 지나가곤 했던 이 서점 역시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한 동안 문을 닫아야 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을 가지러 가는 사람만 살짝 들릴 수 있을 뿐 책방에 들어가 직접 책을 보고 만질 수는 없었던 몇 개월의 시간을 겪은 뒤 이 책방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이미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간 뒤였다.
그랬던 내가 다시 이곳에 발을 디디게 만든 건 뜻밖에도 딸아이였다. 엄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던 딸아이는 이제 나보다 앞서 책방으로 들어가는 아이가 되어 있었고 무사히 초등학생이 된 아이와 함께 이 날을 기념할 겸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 것이었다. 아이 학교와 가깝다는 핑계였지만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직접 책을 보고 만지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잊고 있던 반가운 감정에 울컥하고 말았다. 나에게 책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면서 골라야 하는 물건이었으므로.
이곳은 중고 책이나 희귀본도 다루고 있어 책값이 부담스러울 때는 슬쩍 중고 책 코너로 향하곤 한다. 하지만 역시나 중고 책 코너에서 읽고 싶은 책을 찾지 못해 결국 신간 코너로 향하고 몇 번을 집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동네책방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웬만한 책은 25달러가 넘고 거기에 세금까지 더해지면 30달러는 기본이기에 갈 때마다 매 번 책을 사기는 망설여진다. 그런 엄마 맘을 아는지 아이는 이 책도 좋고 저 책도 좋다고 하고 결국 엄마는 오늘도 아이 책만 몇 권 구입하고 들고 있던 책은 다시 제자리에 슬쩍 내려놓는다.
이 책방의 이름은 동네 이름인 윈저 테라스(Windsor Terrace)에서 왔는데 이 지역이 윈저 테라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불린 건 1854년이다. 브루클린 시내와 가깝지만 어딘가 모르게 교외 느낌이 나던 이곳은 1933년 지하철이 개통되었지만 여전히 작은 마을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초고층 건물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80년 조닝 계획이 다시 이루어졌다. 지금도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지만 아직까지는 낮은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정겹다는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동네다.
1층짜리 건물 한쪽에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다른 한 편엔 피자 가게가 있는 동네. 학원들이 즐비한 높은 상가 건물에 익숙한 내가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건 미국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줄 만한 곳을 찾았기 때문일 거다. 뉴욕이지만 뉴욕 같지 않은 곳. 브루클린이지만 힙하지는 않은 곳. 그럼에도 작가와 서점이 넘쳐나는 곳. 태어나서 한 번도 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단단한 커뮤니티. 그런 동네라면 휘청이는 이방인 가족이 뿌리내리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동네도 언제까지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이 서점이 다시 한번 존재 위기에 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고 내가 진짜 이 동네 사람으로 자리 잡으려면 서점이 나에게 해준만큼 나도 되갚아줘야 할 거다.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책방을 자주 들락거리며 원하는 책을 사모은 뒤 “행복하다”라고 단언한 소피아처럼(진 리스의 소설 <한밤이여 안녕>의 주인공).
앞으로 이 서점이 다시 한 번 위기에 처할 때 내가 나서서 이 서점을 구하는 당돌한 상상을 해본다. 번역가의 벌이로 택도 없는 망상일 수 있지만 로또에 당첨되면 또 모르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이 지역에 점점 늘고 있는 한국인들을 위해 서점 안에 한국 책도 몇 권 가져다 놓아야지. 그중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달콤한 상상을 하며 오늘은 이곳에서 책 한 권을 사 바로 옆에 자리한 프로스펙트 공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길고도 긴 여름이 초가을에 자리를 내어주는, 바깥에서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책방을 나서는데 입구에 자리한 책장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들로 빼곡하다. 주중 낮이라 책방은 비교적 한산하지만 책을 문의하는 사람들의 전화는 계속해서 걸려온다. 일요일 낮 시간에 동네 아이들을 위한 스토리타임을 진행하고 핼러윈 때에는 캔디를 나눠주는 책방이라면 이 거리에서 절대로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이가 커서 어린 시절 추억의 일부로 간직할 수 있도록 책방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어주면 좋겠다. 아니, 책방은 이미 제 할 일을 다 했는지도 모른다. 책방이 숨 쉬게 만드는 건 이제 동네 사람들의 몫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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