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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pr 03. 2020

엄마에서 엄마로

해외살이 이야기

택배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묵직했다. 2층까지 낑낑대며 들고 올라와 열어보니 온갖 장아찌와 젓갈류가 한가득이다. 이러니 무거울 수밖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컸을 택배비보다 딸이 들고 올라가다가 행여 허리나 다치지 않을까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 엄마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엄마다.       


네 명의 자식 중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는 사랑받지 못했음을 한탄하는 것에 비해 우리에게는 많은 사랑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퍼주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역사는 때마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레퍼토리 같은 사연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엄마가 되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요즘, 내 나이 때 엄마의 일상이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 나에게 유독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젊은 날의 엄마가 날 업고 안양천 징검다리를 건너던 모습이다. 엄마에게 업힌 채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는 엄마가 폴짝폴짝 뛸 때마다 행여나 엄마의 짧은 다리가 다음번 징검다리에 닿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며 어린 맘에 어찌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큼큼한 하천 냄새와 빠르게 흐르던 물살, 어린 내가 보기에 정말이지 너무 넓어 보이던 두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보였던 엄마의 두 다리로 기억되는 순간이다.     


지금은 안다. 엄마의 그 두 다리는 자식을 업은 다리였기에 그 어떤 다리보다도 튼튼했을 거라는 걸. 엄마가 되어 자식을 업어보니 알겠다. 엄마의 두 다리는 튼튼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걸.      


  

해외에서 육아를 하다 보면 잠시라도 맡길 가족이나 친지가 없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많다. 내가 아프면 집안의 모든 일이 올 스톱될 거라는 걸 알기에 아플 여유도 없다.      


가뜩이나 성격이 급한 편인 나는 도와줄 사람 하나 없다는 조급한 마음까지 겹쳐 뭐든 빨리 해치우길 바랐다. 내 속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에게도 ‘빨리빨리’를 강요했고 혼자서 다 하려다 보니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픔을 위장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아이는 슬픔을 위장하지 않는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지르고 울고불고하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는다. 그 무렵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슬픔을 위장하는 법을 잊은 채 아이 앞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그러다가 또 아이의 아이다운 모습에 함께 까르르 웃던 원초적인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아이들과의 힘겨루기에서 늘 지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힘을 빼는 법을 배우려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힘을 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넘치는 에너지로 끝까지 내달린 뒤 방전이 되어야 비로소 눈을 감는 그 얼굴에서 어른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기운을 느끼는 하루가 많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갈 뿐만 아니라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 한 패턴에 익숙해질 만하면 또 다른 말간 얼굴을 하고 이건 또 어떻겠냐며 새로운 패를 보여주는 아이들.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들을 가르치는가 보다. 나는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배우는 쪽은 늘 나다.


작은 사람 같아 볼 때마다 신기한 아이는 그 작은 몸으로 저보다 훨씬 큰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낼 때가 있다. 이를테면 피로한 엄마를 단박에 환히 웃게 만드는 천진난만한 행동이라든지, 응아 속에 어제 먹은 음식을 그대로 드러내 엄마를 깔깔거리게 만드는 모습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 내가 고민 없이 엄마가 되었나 보다. ‘일시적인 생의 축제’를 누리기 위해.


그나저나, 응가만 잘해도 칭찬받던 우리가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었을까. 누군가가 기저귀를 갈아줘야만 했던 나는 언제 그 세월을 지나고 지나 이렇게 누군가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언제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에서 누군가를 보살피는 엄마가 된 것일까.

  

           



“서른,

한껏 기쁘게 부풀어 오르고 보니

곁에 선 부모가 바짝 쪼그라든 채 따라 웃고 있다."


김애란의 글을 보니 또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던 내가 엄마가 된 사이 엄마는 얼마나 쪼그라들었던 걸까. 엄마,라고 가만히 불러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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