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세계, 작은 서재

나에게도 취향이 있다면

by 물고기자리

바람에 실린 비가 창문에 닿으며 후드득 소리가 난다. 하늘은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대고 실내는 이내 어두워지고 만다.


기분 좋은 단념을 심어주는 날씨. 이렇게 비 오는 날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는 핑계를 대며 못 이기는 척하지만 실은 설렘으로 무장한 채 책장으로 향하는 마음과 닮아 있다.




지금 사는 집은 층고가 꽤 높아 나는 침실 한 구석 좁은 틈에 6단짜리 책장을 세워두었다. 한 칸에 스무 권 가량을 꽂을 수 있으니 전부 합치면 120권 정도가 가능하다. 내 눈 밖에 난 아이들은 거실의 책장으로 옮겨지고 나의 현 관심사가 가장 잘 반영된 책들만이 이 6단짜리 책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나는 사실 취향이란 게 확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뭘 하든 간격을 두고 두 번은 시도해봐야 비로소 아하, 하고 느릿느릿 터득해 나갔으며 온전히 와 닿지 않으면 몸이 거부하는 통에 좀처럼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때도 잦았다.


그건 책도 마찬가지였다. K, J 등 아무리 유명한 저자의 책이라도 나와 맞지 않을 경우 읽어낼 수가 없었다. 남들이 좋다 해서 구매했던 책들 역시 나의 수준에 맞지 않아 읽다 말기를 반복하다 결국 팔아버리고 난 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내게 이제 조금씩 확실히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저자의 책이라면 무조건 사봐야 한다든지 하는 게 취향이라면 나에게도 취향이 생긴 셈이다.



시인의 따스하고 예리한 시선이 담긴 산문집, 나보다 어리지만 마음 넉넉한 작가에게도 마음이 간다. 한 칸을 조금 모자라게 채우고 있는 유유 출판사의 책들도 그 좁은문을 통과했다.



아직은 좁은 세계다.

탐구하고 싶은 세계, 탐험하고 싶은 세계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한 책을 열면 또 다른 책으로 향하는 문이 보인다. 그렇게 책이 소개해 준 새로운 책을 타고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조금씩 커져가는 이 세계가 더없이 반가운 이유는 그 안에 어설프게나마 자리를 잡아가는 나의 취향이 보여서일 거다.


욕심이 걷잡을 수 없이 부푸는 날에는 이 분야 저 분야 기웃거리며 보이는 책마다 장바구니에 담아보지만 하루만 지나 봐도 이내 알게 된다. 취향은 갑자기 욕심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님을.


지난 세월 무수한 실수를 반복하며 나란 사람의 속도를 알게 된 지금은 나에게만 집중한다.


조금씩 발을 담가보며 나와 맞는 온도인지 가늠해보는 그 과정이 기껍다.


그 흔적들이 쌓인 나의 작은 서재가 나를 위로한다면 바로 그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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