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쥐 잡는 거 괜찮아?

by 물고기자리

낡은 집은 온갖 소리를 달고 산다. 나이 든 몸이 온갖 병을 달고 사는 것처럼. 룸메이트가 나가고 낮 시간에 오롯이 그 집을 차지하고 앉아있자 전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새삼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집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자주 낑낑 대는 소리를 냈다.


뱃속 둘째가 4개월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그 집에 산 지 3년이 다 되어갔으므로 온갖 소리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그날따라 유난히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집이 내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선명했다.


바스락. 바스락.


부엌에 들어간 나는 그 소리가 쥐가 부엌 한편에 놓아둔 과자봉지를 밟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이 그대로 바닥에 붙어버린 채, 꿈속에서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버둥거렸다. 공포영화를 볼 때마다 땅에 붙박인 듯 움직이지를 못하는 주인공을 보며 비현실적이라고 구시렁댔는데 온몸으로 체험하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둘의 만남이 당혹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쥐는 나를 보자마자 싱크대를 따라 빠르게 질주하더니 가스레인지 안으로 냉큼 들어가 버렸다.


그때만 해도 그게 시작일 줄 몰랐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 쥐 가족은 우리 집 소파 바닥과 책장 아래, 창고 등을 터전 삼아 겨울을 났다. 한참 뒤, 쥐의 배설물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나서야 알았다. 쥐 가족은 우리와 그 공간에서 꽤 오랜 시간 함께했음을.


신랑이 놓은 독약과 쥐덫에 잡힌 쥐들, 그들이 흘리고 간 꽤 많은 양의 피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겉으로 목격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쥐가 우리 집에 침투했음을 실감했다. 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부들부들 떨던 몇 개월 동안 배 안의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런데 최소한 우리 눈에 안 띄려고 최선을 다했던 쥐들이 어느 순간, 내가 보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부엌 바닥을 슥, 가스레인지 위를 슥, 지나가기 시작했고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는 집주인을 몇 달이고 기다리다 지친 나는 남편을 닦달했다. 결국 우리는 전문가를 불렀고 냉장고 뒤며 라디에이터 곳곳에 난 구멍이란 구멍을 죄다 메웠다. 생각보다 큰 구멍이 집 곳곳에 나 있었다. 그걸로 쥐 사건이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산간을 도우러 한국에서 온 엄마가 하루는 쥐가 벽을 긁는 소리 때문에 밤새 한숨도 못 잤다 했다. 다음 날 나와 신랑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한 박박 소리. 쥐가 침투하던 라디에이터 입구에 쥐약을 칠해 놓아 경로를 차단한 상태였는데, 쥐들은 인해전술은 펴고 있었다. 한 쥐가 약을 먹고 사망하면 또 다른 쥐가 도전하고 결국 약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 과정이 반복되리라는 상상,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머리 바로 옆에 쥐의 사체가 잔뜩 쌓여 있으며 그 뒤로 또 다른 쥐들이 벽을 박박 긁어댄다는 상상은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그 해 여름, 우리는 결국 새로운 집으로, 퀸스를 떠나 브루클린으로 이사했다.




그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 신랑은 정말 많은 쥐를 잡았다. 하루는 신랑에게 물었다.


당신은 쥐 안 무서워? 쥐 잡는 거 괜찮아?


나? 싫지. 그래도 나밖에 없잖아. 해야지 뭐.


신랑이라고 작은 쥐의 목을 젓가락으로 비틀어 죽이는 일이 달가웠을까. 냉장고 문틈 아래 끼어 있는 쥐를 본 건 나였지만 그걸 결국 처리한 건 신랑이었다. 매번 난리 부르스를 치는 내 뒤에서 묵묵히 뒤처리를 하는 신랑이 있었음을, 내가 모르는 그의 유학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했다. 그러고 나면 왜 나를 이런 곳에 데리고 와서 고생시키냐는 원망 어린 생각이 스르륵 고개를 접었다.


놀랄까 봐 아까 얘기 안 했는데 오늘 아침에도 한 마리 잡혔어.


신랑이 보낸 문자를 보고 아침부터 쥐의 사체를 처리한 뒤 회사에 출근했을 신랑의 마음을 떠올려보았다. 쥐덫에 잡혔다고, 그런데 죽지는 않아 있었다고, 그래서 죽여야만 했다고 말하는 마음 너머를.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공포스러운 시절이었지만 신랑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때는 월급을 따박따박 벌어오는 신랑보다 쥐를 잡아주는 신랑이 더없이 고마웠다. 쥐똥과 외관상 거의 구별이 불가능한 흑미를 나무젓가락으로 콕콕 찔러보며 쥐가 남긴 흔적일지 우리가 흘린 흔적일지 판별하던 그 시절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의 어떤 중요한 지점을 건너고 있지 않았을까. 사랑이란 의무를 수행하는 일이기도 하므로.


지금도 나는 <라따뚜이>에 나오는 쥐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영화에서 부엌을 휘집고 다니는 주인공을 보면 나의 부엌을 휘집고 다녔던 쥐들이 생각난다. 영화에서 귀엽게 묘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동물이 어디 쥐뿐이겠느냐만은 깜찍 떠는 쥐들이 나오는 아이들 영화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화면에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함께 살겠다고 동의하지 않은 상대와의 동거는 그게 누구든 불편하다. 룸메이트든, 자그마한 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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