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집의 수난시대

by 물고기자리

집이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 집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이사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무렵, 예전 집보다 넓어진 면적에 살짝 들떠 있던 나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검은 무언가를 보고 말았다. 지난날의 경험으로 직감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집주인은 바로 너희들이었구나. 건물 관리인을 불러 겨우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수많은 쥐를 우리가 직접 잡은 뒤였다.


침입자의 방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창가에 서서 둘째 아이가 전날 헤집어놓은 식물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흙을 쓸어 담고 있는데 순간 발등이 간지러웠다. 무언가가 발등을 살살 간질이는 기분이 가히 좋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본 나는 기겁했다. 내 엄지손가락 세 개 만 한 데다 두께 역시 굉장한 바퀴벌레가 내 발등에 올라가 있었다. 나는 트위스트에 가까운 몸짓을 선보이며 괴성을 질렀고 내 비명에 놀란 둘째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바퀴처럼 빨라서 바퀴벌레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 갈색의 두꺼운 바퀴벌레는 아찔한 속도로 바닥을 헤집고 다니면서 아이들 장난감과 인형 위를 오갔다. 아이들 의자 위로 수직으로 올라가고 있는 바퀴를 보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근처에 있던 플라스틱 장난감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잽싸게 피한 바퀴는 생각도 못한 공격에 당황한 듯 저 혼자 뒤집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혼비백산 달아나고 말았다.

‘제발, 들어온 곳으로 다시 나가줘. 그럼 헤치지 않을게.’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바퀴벌레는 자꾸 자신의 몸 두께를 감안하지 않고 낮은 틈 사이로 들어가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했고 그걸 바라보는 내 몸은 자꾸 꿈틀거렸다. 머릿속 생각은 하필 지금 이 순간 첫째 아이를 데려다주러 간 신랑을 향한 원망과 저토록 빠른 속도라면 신랑이 오기 전에 집안을 전부 헤집고 다닐 거라는 계산, 그때까지 몇십 분을 공포 속에 보낼 수는 없다는 자각, 그렇다면 내가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신속히 전개되었다.


둘째 아이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수납장을 열었다. 처음에는 뿌리는 약을 찾으려고 했으나 약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아이의 비치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꽤 묵직하니 그거면 될 것 같았다. 의자를 들고 돌아오니 바퀴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그 사이에 다른 데로 갔나.’


고개를 돌리는 사이 갑자기 내 발아래로 긴 더듬이를 곧추세운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나는 인정사정할 것 없이 갈색 녀석을 향해 의자를 내리쳤다. 그러고는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신랑이라는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직 목숨이 남아 있던 바퀴는 뒤집어진 채 자꾸만 버둥댔다. 신랑을 그렇게 간절히 기다린 적이 있던가.


바퀴를 본 신랑은 딱 한마디 했다.


와, 진짜 크다.


그나마 날아다니는 바퀴가 아니었던 게 다행이었다. 퀸스 집에서 바퀴가 누워 있는 우리를 향해 날아 들어왔던 걸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었다. 간만의 바퀴 습격 사건을 겪으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려면 빨리 마음을 수습하고 일을 해야 했지만 내 발등을 타고 지나간 바퀴벌레의 감촉이 아직 너무 선명했다.


그땐 몰랐다. 그게 시작일 줄. 며칠 후 또다시 왕 바퀴가 우리 집을 찾아왔고 관리인에게 물으니 3층에서 공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이런 일이 왕왕 일어난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건물 전체적으로 이루어지는 바퀴벌레 소독도 별 소용이 없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싱크대에서 역으로 기어 올라오는 바퀴 때문에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진 날은 정말 그 집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낮 시간 내내 집을 비우다가 밤에 돌아와 불을 켰을 때, 황급히 라디에이터로 들어가려는 바퀴를 반복해서 목격하자 우리가 집을 비우거나 잠을 자는 사이 어둠을 틈타 바퀴들이 광란의 파티라도 벌인다고 확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벌건 대낮에 아무렇지도 않게 마룻바닥을 쓱 지나가는 바퀴벌레에게 포장도 뜯지 않은 A4용지를 뭉치 채 던져 압사시킨 날, 나는 발악하다시피 소리를 질렀다.


이제 나올 만큼 충분히 나왔잖아. 그냥 너희들끼리 모여 살면 안 돼?


하지만 바퀴벌레에게는 내 말이 가 닿지 않았는지 일주일 뒤 벽에 걸어둔 달력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놈이 자태를 드러냈다. 달력을 넘기다 너무 놀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주책맞게 엉엉 울고 말았다. 다행히 재택근무 중인 신랑이 바퀴를 잡아줬고 놀란 내 가슴도 진정시켜주었지만 그날 밤은 사람 만 한 바퀴벌레들에게 둘러싸이는 악몽을 꾸었다. 그 집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에 밤새 뒤척였다.


누군가는 그깟 바퀴벌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층간 소음으로 살인이 일어나고 쓰레기 문제로 싸움이 벌어지는 시대에 상대적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 아니냐고.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한 신랑을 보고 나만 이렇게 진저리를 치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름이 끼치는 걸 어쩐단 말인가. 누구에게나 지키고 싶은 주거의 최소 조건이란 게 있다. 윗집에서, 옆집에서 나는 온갖 소음은 참을 수 있었다. 추위도 참을 수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녹물도 괜찮았다. 내가 견디지 못한 건 딱 하나, 그놈의 바퀴벌레(그리고 쥐)였다.


관리인은 선심 쓰듯 싱크대에 뿌리라며 나에게 특수 바퀴약을 건넸지만 애초에 건물 자체가 낡아 바퀴 전멸은 불가능했다. 어떤 날은 건물 소유주에게 협박 비슷한 메일을 쓰고 어떤 날은 아마존에서 초강력 바퀴 약을 찾아보며, 그렇게 기대와 체념을 무한히 오가는 가운데 나는 그 집에서의 긴긴 하루들을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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