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나를 좋아할 수 있겠어?

by 물고기자리

그 집의 문제는 쥐나 바퀴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해가 들지 않았다. 거실에 창문이 있었으나 주변 건물에 가려 하늘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비틀어 쭉 잡아 빼면 하늘 한 뼘이 비웃듯이 나를 내려다봤다. 낮에도 어두컴컴한 방은 우울증 걸리기 딱 좋았다. 이사하고 몇 주가 지났을 때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블라인드를 내리려는데 건너편 건물의 불이 환히 켜진 창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한 분이 식물을 창가에 늘어놓고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있었다. 눈은 다른 창가로도 향했다. 다들 한 줌의 햇살이라도 더 받으려고, 한 줌의 초록이라도 더 느껴보려고 창가에 갖가지 화분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살고 있는지 또 다른 창문 한쪽에는 한가득 쌓아 놓은 책이 보이기도 했다.


그 순간 생각했다. 나도 책을 사자. 이 무슨 생뚱맞은 해결책이냐 하겠지만 나는 진지했다. 마음에 안 드는 집으로의 이사는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월세가 워낙 비싸다 보니(바퀴벌레, 쥐, 녹물 등 온갖 문제를 달고 있는 방 한 개짜리 그 집조차 월세가 300만 원이 넘었다) 그 안을 채우는 것에 욕심을 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집에 자연스레 자리한 시간이 쌓여야 나도 집에 애정이 생길 터였다.


집 안을 둘러봤다. 무채색의 이케아 가구들로 채워진 방이 눈에 들어왔다. 필요할 때 적절한 예산에 맞춰 대충 산 물건들은 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 안에 초록은 없었다. 집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 시절이었다. 좋아하는 물건으로 채워 집에 정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었든 조금은 더 살 만한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자존심 문제였든 나는 악착같이 책을 사들이고 집을 꾸몄다.


이래도 나를 좋아할 수 있겠어?


집요하게 묻는 듯한 집과 화해를 해보려고, 내가 좋아하는 집의 ‘구석’을 만들어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예쁘게 꾸며놓은 공간에 자꾸만 출몰하는 바퀴들 때문이었을까, 그 시도가 성공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집 안에 초록을 들이면 나아질 줄 알았다


집은 나의 의지로 정말로 바꿀 수 있는 공간일까. 그렇다면 그 집에 끝까지 마음이 가지 않은 건 나의 나약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모든 집이 아무리 고유한 매력과 각자의 멋짐이 있다지만 그걸 상쇄할 만한 요소가 그 집에는 너무 많았다. 사람으로 치면 그곳은 구김이 너무 많은 집이었다.


1년만 살고 나오고 싶었지만 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뒤 마음을 접어야 했던 날,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계약서 내용에 따르면 우리가 계약 만료일 전에 나갈 경우 임대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월세를 고스란히 지불해야 했다. 두 집의 월세를 부담하기에는 우리의 경제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마지막 발악으로 우리 집과 맞닿아 있는 새 건물에 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구경 갔다. 하지만 그 좁은 공간에 우리 네 식구가 들어가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 욕심 때문에 가족들을 작디작은 아파트에 구겨 넣을 수는 없었다. 신랑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반나절을 고민한 끝에 말꼬리를 뭉개며 신랑에게 말했다.


그냥 살자…


내가 그렇게 결정하리란 걸 신랑도 알았겠지만 마지막까지 충분히 고민하도록 선택권을 넘겨준 신랑의 마음을 고맙게 받아 다시 한번 힘을 내보기로 했다. 지난겨울 이곳이 얼마나 추웠는지 알았기에 월동준비가 시급했다. 수십 시간의 인터넷 검색 끝에 한국에서 엄청나게 두꺼운 이불을 주문했다. 1년 후 우리가 그 집을 떠날 때 그 건물에 20년 넘게 살던 할머니가 말해주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그 건물에서 가장 추워서 사람들이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간다고. 우리가 나가는 이유가 바퀴벌레 때문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곳에서도 삶은 부지런히 이어졌다. 이가 딱딱 맞부딪칠 만큼 추운 집에서 바퀴벌레와 사투를 벌인 일이 그 집에 대한 기억의 전부로 남아서는 안 되었다.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산책했다. 겨울이면 집 앞 공터에 나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지런히 몸을 놀렸다. 바퀴벌레의 감촉을 잊기 위해서든 추위를 잊기 위해서든.


나의 궁핍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두 아이는 그 집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그 속도가 버거웠던 건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지 아이들에게 절박하고 사나운 감정을 투사한 날이 많았다. 나는 그게 그 집 탓인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 집이 날 싫어한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그 집을 싫어했다. 어떤 집은 아프다. 집의 못난 모습과 함께 나의 못난 모습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 기억을 끄집어낼 때마다 그 집의 황량한 풍경도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거친 모든 집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게 비록 내 선택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유년기 시절 부모의 선택에 의해 반자의적으로 살아야 했던 집들을 떠올려보니 부모님 역시 늘 만족스러운 선택을 내린 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 이제야 한 시절 부모님의 마음 언저리에 가 닿는다. 미화되어 버린 그 시절의 추억은 그 안에 살 때에는 징글징글한 현실이었겠지. 하지만 그 기억조차 함께한 누군가가 있기에 인간이란 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닐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바퀴벌레가 나오거나 코끝이 시릴 때에는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그렇게 남은 1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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