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살던 시절,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글로 먼저 알게 된 그녀는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홀로 살고 있었다.
용감하네.
처음 든 생각이었다. 흑인들이 대부분인 동네에 동양인 여자 혼자 살다니. 그녀가 더 궁금해졌다.
우리가 만난 날은 추운 가을날이었다. 아직 겨울이 온 건 아니었는데 내내 살짝 덥기까지 하던 가을날은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 하필 매서웠다. 이쪽으로 20분 넘게 걸어온 그녀에게 미안하게 우리 손에 들린 커피는 금세 미지근해졌다. 누군가를 온라인에서 먼저 알고 실제로 만나는 건 싸이월드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일로서 만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사람이 궁금해서 만나는 건. 상대가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단 건 만난 지 5분 만에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조차 그리 많지 않은 이 동네에서 우리는 각자 살고 있었다. 어쩌면 지나가다가 길에서 마주쳤을지도, 공원에서 산책하다 마주쳤을지도 몰랐다. 조곤조곤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어렸지만 나보다 깊은 생각을 품고 있는 듯했다.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사람, 하지만 너무 저만치 앞서 나가지는 않아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책을 추천해 달라고 기꺼이 말하는 사람. 무엇보다도 그녀는 나처럼 목말라하는 사람이었다.
뉴욕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나 스스로 만든 인연은 기꺼이 품어주고픈 사람이었다. 나와는 달리 맨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낸 당찬 사람이기도 했고. 그녀는 글에서와는 다른 모습도 내어주었고, 공간, 그리고 글, 책, 인생이라는 주제로 우리의 대화는 막힘없이 흘러갔다. 추위만 아니었으면 그곳에 몇 시간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헤어지고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저만치 멀어져 가던 그녀도 몸을 돌려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점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들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만남이란 무엇일까. 대화 중에 그녀는 말했다. 이제는 내 인생에 잠깐 들어오든 길게 들어오든 모든 인연의 순간적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고.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만난 시간이나 횟수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그 아이와의 인연을 통해 실감했다. 그렇게 마음을 나눈 그녀를 나는 그 집에 초대하기까지 했다.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한 그 집에.
돌아보면 어렸을 적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온 적이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제법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가장 사적인 부분을 내어 보이는 데 소심했다. 중학교 때에는 마음 맞는 친구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에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이들이 많았고 그 가운데에는 비뚤어진 열등감으로 가득 찬 아이들도 많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향한 두려움과 시기심이 뒤섞인 숨 막히는 공기 안에서 나는 겉돌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어쩌다 찾아온 인연 앞에서 내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평생지기 친구들을 만났지만 집에 데리고 오지 못한 건 여전했다. 친구들이 나를 판단할까 봐, 우리 집을 평가할까 봐 어린 마음에 문을 살짝 닫아두고 지냈다. 그랬던 나였기에 외국에 와서도 누군가를 섣불리 초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랑 회사 한국인 동료들을 집에 초대한 적은 있었으나 그들을 진짜 내 친구라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6년이 넘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남들에게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집에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인연을 들인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린 시절의 나를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만난 곳이 한국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본다. 사는 곳으로 상대를 판단할 만큼 얄팍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도 있었겠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갖게 된 상태였고.
내가 15년 전 일했던 대형 건설회사에서는 ‘사는 곳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홍보 문구로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를 선전했다. 그 문구를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직원 중 그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몇 안 된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입고 싶은 대로 대충 차려입을 수 있지만 (물론 이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지만) 사는 곳은 쉽지 않다. 공간은 가난을 감출 수 없다.
바퀴벌레가 득실대던 집, 해가 들지 않던 그 집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기억된다면 그 인연을 만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용기가 불쑥 나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그 아이를 만나러 가던 길, 누군가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깊어졌던 하루. 텅 빈 마음을 채우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용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집에서 시작된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 그 집이 조금은 덜 아프게 기억된다. 이제 그녀도 나도 더 이상 그 동네에 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첫 만남은 여전히 그 동네, 미지근한 라테로 기억된다.
아이가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마음을 품지 않도록 친구들을 마음껏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집의 크기에 상관없이, 방의 크기에 관계없이. 어린아이였던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의식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분명 나도 모르는 사이 어른들의 말에 영향을 받았을 테지. 내 아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보다는 나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