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게 하는 부탁

by 물고기자리
다른 엄마는 안 그래!

다른 자식도 안 그래!


아이보다 서른셋이나 더 먹어서는 이토록 유치한 반박이라니. 오늘도 목소리의 데시벨이 높아지고 참을성의 끓는점이 낮아진다. 일 해야 한다고 그만 좀 귀찮게 하라고 했더니 아이 입에서 아픈 말이 나온다.


나 괜히 낳았어? 괜히 태어났어?


내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서둘러 되감기 해보지만 피곤했던 하루들의 무한 반복만 기억을 스친다. 아이는 그 말을 끝으로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쿵 닫는다. 이사 오면, 방 두 개짜리 집으로 오면 모든 문제가 사르륵 해결될 거라 착각한 나를 향해 보란 듯이.




집을 알아보고 오퍼를 넣고 모기지 승인을 받고 조금 손을 본 뒤 5월 말 드디어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집 구매 과정은 다른 브런치북에서 구체적으로 풀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미국에서는 <Home Buying Kit for Dummies> 류의 책이 굉장히 많을 정도로 집 사는 과정 자체가 녹록지 않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집주인과 내고를 하면 집 구매 과정이 대체로 종료되는 한국과는 달리 꽤 복잡한 데다 변호사 수수료만 해도 몇 천 불에 달한다). 거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앉아있던 아이들 장난감은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넘치는 짐은 지하 창고로 옮겨갔다. 바퀴벌레도, 쥐도 없었다. 세탁기도 설치했다. 기존 집에 비하면 큰 도약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바랐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으려는 듯 새집이 완벽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내 기준에 맞게 모든 것이 세팅된 공간을 꿈꿨다. 공사의 많은 부분이 미완성 상태로 남자 실망했다. 싱크대에서 물이 세고 서랍장이 맞지 않았다. 베란다 방충문은 빡빡해서 열고 닫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는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기 일쑤였다.


‘아, 내가 원하던 건 이런 모습이 아닌데...’


인부들은 왜 공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나, 속이 터졌다.

제 방이 생겼는데 아이는 뭐가 그리 불만인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좋은 집에 왔는데 난 왜 이리 맘에 안 드는 것 천진가, 답답했다.


그렇게 마음고생하던 주에 두 번 연속 가위에 눌렸다. 한 번은 방 침대에서, 한 번은 거실 소파에서. 몸으로 오는 마음의 상태였다.


나 이 집이랑 안 맞나 봐.


신랑 덕분에 가까스로 가위눌림에서 벗어난 나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집의 뭔가가 날 거부하는 것 같아.


돌아보면 이 집이 날 거부한 게 아니라 내가 이 집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만을 부풀려 보며 자꾸 트집을 잡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보글보글 끓어 넘치니 가위에 눌릴 수밖에.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사 온 뒤 잠시도 쉬지 않고 부산 떨던 몸을 가만히 앉혀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내가 그토록 원하던 내 집, 깨끗한 우리 집 아니던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삶의 한 구간에서 다른 구간으로 점프할 때마다 정해진 이상을 바라면 반드시 탈이 났다. 세탁기와 양문형 냉장고, 방 두 개는 확실히 삶의 질을 높여줬다. 그렇다면 집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자잘한 문제들은 하나씩 풀어나가면 되었다. 아이 역시 저의 속도대로 정직하게 자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기의 아이답게. 예전보다 넓은 집에 살게 되었다고 내가 갑자기 자상한 엄마 코스프레를 할 수는 없듯 내 아이가 갑자기 말 잘 듣는 아이가 될 거라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두 아이를 낳은 이후 줄곧 아등바등 살던 나였다. 일 분 일 초를 쪼개가며 바삐 사는 동안 모든 일 처리 속도의 기준은 내가 되어 있었다. 그 기준에서 보면 여유롭다 못해 답답하게 굴러가는 주위 속도는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자기반성의 시간을 거친 뒤 나는 너무 애쓰지 않기로 했다. 애쓸수록 내 속만 까맣게 타들어갈 뿐이었다.


살다 보면 모난 부분이 하나씩 정리가 될 테고 그렇게 고쳐 사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우리가 점유하고 있지만 잠시 살다 가는 것뿐이다. 이곳에 뼈를 묻을 것도 아니면서, 죽을 때 들고 갈 것도 아니면서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았던가. 한국의 편리한 집들과 비교하며 또다시 욕심의 수위를 높인 내가 화근이었다.


집에게 잘 부탁한다고 가만히 말해보았다. 나를 받아들여달라고. 우리 가족이 살다 가는 동안만큼은 우리 함께 잘 지내보자고. 화해의 악수를 청했다.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더는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집의 각진 부분에 둥그런 물건을 놓으라는 엄마의 조언 덕분이었는지, 엄마가 준 자그마한 성모상 덕분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만은 편안해졌다. 집이 정말로 내 부탁을 들어줬는지도. 스스로에게(혹은 신랑에게) 더 이상 혹독하게 굴지도 않기로 했다. 집이 미완성 상태로 남은 게 우리의 능력 부족인 것만 같아 품었던 못난 마음도 내려놓았다.


아직 집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사는 게 그렇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지키려 해도 우리 삶에는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다. 그 구멍을 죄다 막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어린애처럼 입을 삐죽이며 어리석게도 온몸으로 그걸 막아보려 했나 보다. 이제는 내가 막을 수 있는 구멍만 책임져야겠다. 싱크대에서 새는 물은 배관공이 해결해줄 테니, 나는 그에게 지불할 돈이나 벌련다. 신랑이 왜 아직도 배관공을 안 부르는지, 닦달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보는 하루다(신랑은 결국 배관공을 부르는 대신 자신이 직접 땜질을 하겠다고 혼자 결론 내렸지만 물은 계속해서 새고 있고 나는 또다시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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