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건 좋은데 기분이가 안 좋아

by 물고기자리
엄마! 엄마! 아빠가 저것도 버렸어. 엉엉.


아이의 눈이 시뻘겋다.


곤도 마리에는 감상을 남기는 물건은 사진을 찍은 뒤 버리라고 했다. 아이는 지금 그걸 실천 중이다. 아이가 애착하는 물건을 쓰레기로만 보는 아빠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


몰래 갖다 버려야지 이렇게 아이랑 정면으로 충돌할 필요가 뭐가 있어.


내가 뒤늦게 요령을 말해주자 신랑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부터 한바탕 눈물바람이 일어난 건 자꾸만 늘어나는 장난감 때문이다. 동네에서 깨끗한 장난감이 보이면 자꾸만 주워오는 내 탓도 있겠다. 이 동네는 쓸모가 다했다는 이유로 버리는 대신 가져가라고 내놓는 물건들이 많다. 아이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그런지 책이나 장난감이 가장 흔하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데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는 게 맞지, 하며 적극 물건을 찾아 나선다. 그래, 다 엄마 잘못이구나. 그래도 나는 아이들 몰래 장난감을 갖다 버리기도 한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알 거다. 장난감이 얼마나 많은 짐을 차지하는지. 어느 정도 찼다 싶으면 속아내는 일을 주기적으로 시행해야지 안 그랬다가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아이에게만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이사 오기 전 책을 한바탕 정리했지만 여전히 책은 넘쳐난다. 예전에는 무작정 산 뒤 되파는 과정을 거쳤지만 이제는 웬만해서는 다시 팔만한 책은 사지 않기 때문에 책장은 늘 부족하다. 책을 주문할 때마다 책장 사정을 고려하는 편이 아니라 다소 대책 없는 상황임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나의 유일한 사치이자 기쁨인 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 장난감은 그런 존재일 터. 그래, 엄마가 그 마음 잘 알지.


훌쩍이는 아이의 기분을 달래주려고 말했다.


이것 봐, 깨끗하니까 좋지 않아?

깨끗한 건 좋은데 기분이가 안 좋아.

그렇다. 깨끗한 건 보기에는 좋지만 깨끗하다고 무조건 기분도 좋은 건 아니다. 아이다운 솔직한 고백에 엄마인 나는 그저 아이를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장난감은 집 크기만큼 늘어나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예전에 우리 집보다 평수가 넉넉한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장난감의 양이 우리 집의 다섯 배는 되는 듯했다. 문득 우리도 예전 집에 비해 장난감이 꽤 많아졌음을 깨달았다. 아이들 장난감을 비롯해 집 안에 아이가 있음으로써 사게 되는 기타 물건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규모가 확장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아이들이 훌쩍 커서 집을 떠나버리면 부부는 시원섭섭해하며 집의 규모를, 물건의 규모를 줄이겠지. 아이가 없는 삶, 파트너가 없는 삶을 택한 이들의 집 역시 저마다의 삶의 주기에 따라 물건이 늘어나는 시기, 줄어드는 시기가 있다.


이제껏 살면서 내가 사들이고 처분한 물건이 얼마나 많을까. 가끔은 집은 그 물건들을 품고 싶지 않은데 인간의 욕심으로 어쩔 수 없이 들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뉴욕은 좁은 집이 많기 때문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물건이 꼭대기까지 차 있는 집도 많다. 그런 집에 들어가면 일단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된다. 집은 좁고 물건은 넘치니 어쩔 수 없겠지만 소화불량에 걸린 그 집은 늘 속이 더부룩하지 않을까. 끄억.


울먹이는 아이에게 말했다.


깨끗하면서 기분도 좋게 만들어보자. 그러려면 장난감을 살 때 정말 필요한 건지, 사고 싶은 건지 최대한 많이 고민해본 뒤 사야겠지. 쓸데없는 장난감을 애초에 들이지 않으면 되니까. 평소에 정리정돈도 잘하고 말이야.


‘물론 엄마는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은 책을 살 예정이야. 정말 필요한 건지, 사고 싶은 건지 최대한 많이 고민해보겠지만 쓸데없는 책은 없으니까.’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설득력도 없는 이 말은 속으로만 덧붙였다.


깨끗하면서 기분도 좋게 만들기. 처음 누리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아이는 앞으로 이 두 가지 일이 반드시 모순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다. 지금은 종이 한 장 버리기 힘들지만 쓸모를 다한 물건을 처리할 줄도 알아갈 테고 애초에 쓸데없는 물건과 나에게 정말 소중한 물건을 구별하는 방법도 알아가겠지. 일단은 그거면 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집을 떠날 때 아이가 쓸모를 다한 장난감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면 기쁘겠다. 그때쯤이면 나도 나의 책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미래의 나를 믿어보는 수밖에.


아이의 정리 안 된 책상과 책이 넘쳐나는 내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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