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완벽해도 다음에 할 게 없어

by 물고기자리

미국 집과 한국 집의 가장 큰 차이라면 온돌이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지만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은 날이면 얼음장 위를 걷는 기분이다.


러그를 깔면 되지 않느냐고?

러그가 얼마나 비싼지 알고 하는 소린지. 관리는 또 얼마나 어려운데.


그럼 슬리퍼를 신으면 되지 않느냐고?

집에서는 양말조차 신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플 때면 나는 발이 바닥에 닿는 면적을 최소한으로 한 채 걸으며 최대한 침대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편을 택한다.


이 집에 들어온 게 초여름 무렵이었는데 벌써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가을이다. 집 안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진 어느 낮, 차가운 발을 손으로 조몰락대다가 아이들과 눈이 맞았다.


너네 발도 차갑니?

응!

이리 들어와!!!


이불 안에 셋이 들어가 서로의 맨살에 차가운 발을 밀어 넣으며 키득거렸다. 가끔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지긋지긋하다 싶다가도 이런 순간에는 이불 안에 영원히 품고 싶을 만큼 간질간질하고 몽실몽실한 무언가가 사르륵 얹어지는 기분이다.




며칠 전 아이 친구 집에 다 같이 놀러 갔다. 이 동네에 흔한 3층짜리 하우스였다. 지하에 가족 공간과 부엌이 있었고 그 뒤로 굉장히 큰 뒤뜰이 있었다. 1층에는 아이 엄마의 작업실과 부부의 방이 있었고 2층에는 아이들 방이 있었다. 각 층별로 화장실도 있었고. 우리의 한 층짜리 집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집에 다녀온 뒤 둘째 아이는 우리도 이사를 가자고 했다. 나 역시 이사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다음 집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공간에 있는 내가 그려지지 않았다. 지금 집 청소하기도 벅찬데 각 층마다 낑낑대며 청소기를 들고 이동해야 하나. 계단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처음에야 신나겠지만 벌써부터 삐걱대는 관절이 과연 받쳐줄까. 누군가를 부를 때마다 목청껏 소리 질러야 할 테고. 생각해보니 불편한 것 천지였다. 그 집 엄마의 반쯤 얼빠진 수척한 얼굴이 혹시 그 거대한 집 때문은 아닐는지.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어린 지금은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게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임을 그 집에 다녀온 뒤에 알았다. 나의 원가족이 잠시 살았던 단칸방에서 보낸 날들을 언니와 나는 가장 신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니까. 부모님에게는 힘든 시절이었겠지만 막상 넓은 집으로 갔을 때 우리의 아기자기한 추억은 휘발되어 버렸으니까.


넓은 집으로 이사 가 나만의 서재를 꾸린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병풍처럼 펼쳐진 거대한 책장을 등진 채 커다란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하는 나의 모습은 솔직히 아직까지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건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조금 쓸쓸한 풍경 같기도 하고.


인스타그램 속에 등장하는 모델하우스 같은 집을 볼 때도 같은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의 나라면 부러워했을 테지만 어쩐지 사람 사는 집 같지가 않다. 좋은 가구만 잔뜩 들여놓는다고 집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잔뜩 꾸민 집에 저항하듯 아무런 가구도 놓지 않은 텅 빈 거실 인테리어도 봤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집이구나 싶었는데 시종일관 그런 사진이었다. 지나치게 비운 집 역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사진을 볼 때면 집이란 취향만으로 채울 수 있는 단순한 공간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 공간에 거주하는 개인이나 가족만의 분위기가 스며들어 집이란 공간이 완성된다. 인스타그램에는 담기지 않는 그 가족만의 이야기가. 멋지게 세팅해 놓은 집 인테리어보다 아이들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 너머로 얼핏 보이는 그 집의 정겨운 인테리어에 더 눈이 가는 건 그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인지라, 그런 멋들어진 집을 보다가 우리 집을 보면 부족한 점이 또 눈에 띄기 마련이다. 내가 이 집에서 미완성된 부분을 읊으며 불만을 털어놓자 옆집 언니는 말했다.


너무 완벽해도 다음에 할 게 없어.


명언이었다. 언니의 말은 향상심으로도 요약될 수 있었다. 더 나은 곳으로 향하고 싶다는 마음은 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피로하지 않을 만큼의 갈망은 언제나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이 집이 너무 완벽했다면, 나는 더 이상 꿈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다음 집을, 다다음 집을. 한 번에 너무 큰 도약을 했다면 이질감 속에 방황했을지도 모른다.


로또에 당첨되어 갑자기 럭셔리한 집에 살게 되는 내 모습을 가끔 상상한다. 그런 공간을 꿈꿔서가 아니라 그런 공간에 가도 충분히 즐기지 못할 내가 보여서다. 그런 나를 꽤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나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나에게 딱 맞다는 만족감이 나른하게 밀려온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부자가 될 만한 배포가 부족하다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지만 사람마다 각자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의 규모란 게 있지 않나. 그래서 나는 오늘도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실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건 로또를 사지 않기 때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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