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진다

by 물고기자리

소설가를 직접 본 건 딱 두 번이다. 두 번은 한국에서, 두 번은 여기 뉴욕에서.


대학원 재학 시절, 편혜영과 김중혁을 보았고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자그마치 폴 오스터! 를(그때 나는 정말 우연히 그의 책을 가방에 넣고 있었는데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사인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일부러 사인을 받으러 같은 장소로 가서 마이클 커닝햄을 보았다. 그 후 뉴욕에서는 소설가 따위를 만나는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 어떤 연예인을 만난 것보다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직접 말을 섞어 본 김중혁 소설가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아, 소설가도 사람이구나, 하는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전히 또 다른 도수의 아, 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소설가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늘 숙제처럼 안고 사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소설을 왜 읽느냐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소설을 좋아하지만 소설을 읽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기에 그들에게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고픈데 남의 말을 가져다 쓰기는 싫고 내가 직접 연구하고픈데 그게 또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저 남이 되어 보는 거라고, 그렇게 세상을, 남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내가 소설을 읽는 명확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늘 소설 속을 헤매었으므로. 소설을 읽는다고 내가 남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걸까,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걸까, 생각해 보면 그럴 때도 있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던 것 같았고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너무 우습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 있다. 세상을, 남을 이해하는 방식은 그것 말고도 널렸기에, '책'을 들이밀기에는 우리 모두 너무 바쁘기에.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이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진다. 나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중략)

현실의 우주가 빛나는 별과 행성, 블랙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크레페케이크를 닮은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들이 조용히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와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읽다》, 김영하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헤매기 위해서일 거라는" 말은 나를 향한 위로 같았다. “소설 안에 빠져 있다 보면 우리가 결론을 향해 가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이야기 안에 좀 더 제대로 머무르기 위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박연준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소설 속에서 어떠한 아름다운 구절을 만나면 그곳에서 굳이 빠져나오려 하지 않고 그냥 푹 잠긴 상태를 만끽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읽은 소설은 내 자아에 스며들어 나의 빛나는 우주를 형성하고 있었던 거였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나쁨'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울어야 할 일과 절대 울고 싶지 않은 일, 되돌려주고 싶은 모욕과 부끄러움, 한순간 광포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환멸과 후회들이 차창 밖처럼 연속된다. 나는 누구나 아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한계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소설은 어느 나쁘지 않은 오후에 누군가의 문상을 가듯 읽어 주었으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그렇게 읽는 소설도 있는 것이다. 얻으려는 마음보다 내어주려는 마음으로 읽는 소설. 누군가의 고백에 시간을 내어주는 일,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그건 결국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소설을 읽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사람을 설득할 명징한 이유를 찾지는 못한 것 같다.


고유한 내면을 얻는 일에도, 마음을 내어주는 일에도 관심이 없는 이들을 설득할 이유를 찾을 시간에 소설을 한 권 더 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는 반짝이는 나의 작은 우주를 갖는다는 것, 그건 나에게 정말 욕심나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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