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내리 아래로만 흐르는 사랑

엄마의 딸이 된 지 13956일째 되는 날

by 물고기자리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인가. 그 큰 사랑이 내리내리 아래로만 흘러간다. 그런 줄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 집을 떠나고 어린 새들은 날개를 퍼덕여 날아가는 것이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어릴 적 <우정의 무대>를 보면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남자 어른들이 나와서 “뒤에 있는 분은 제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 말이 무색하게 대부분이 자신의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수 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음성변조를 하더라도 아들에 대한 설명을 할 때의 말투나 억양 따위는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아들들은 어찌하여 20년 이상 함께 산 엄마를 못 알아볼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손목 주름 사이에 자리 잡은 점까지 기억할 정도로 내 자식의 작은 변화까지 알아채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 정도로 관심을 내어주지는 않았음을.


내리사랑이었다.


나 역시 그 장정들과 다를 바 없었다.




엄마가 엄마가 되던 날, 나는 자식이 되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던 연약한 시절의 나. 그 시작은 맞물린 톱니바퀴였던 엄마의 기억에만 남아 있다. 다른 이를 통해서만 그 시작이 기억될 만큼 미약한 존재였던 나는 타의로 그렇게 엄마의 딸이 되었다. 그 시절 주연 같은 조연이었을 엄마 옆에서 무구한 얼굴을 한 채 나는 고작 기억의 부스러기 정도만 주워 담았을 테다.


기억이란 원하는 것은 건져 올리지 못하고 때로는 엉뚱한 것만 잡고 마는 어망과도 같아서 엄마가 떠준 스웨터를 입은 사진 속의 나를 보며 그것을 떴을 당시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허망하게도 그 옷을 입고 내가 손이 노래지도록 먹었던 귤의 냄새 같은 것만 아직까지도 선연하다.


엄마가 시작한 그 여정의 시점이 주연인 나에게로 옮겨진 순간은 언제였을까. 내 시점의 기억이 더 또렷해진 순간은. 나의 생을 끊어준 이의 품에서 벗어나 희미한 경계를 넘었을 때의 나는 또 얼마나 자신만만했을까. 내 의지로 세상에 태어난 것마냥, 시작을 열어준 이를 향한 사랑은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었을 테다.


자그맣던 내 머리의 숨골이 닫히면서 엄마와 나의 연대가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태어난 지 2년 남짓되자 아이는 엄마인 나와 다른 관계를 정립해 나갔는데, 팔딱팔딱 뛰던 아이의 말랑말랑한 숨구멍이 단단해져 갈 무렵, 나는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엄마와 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때로는 엉키고 또 때로는 가늘어지기도 한 연대 속에서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함께 흘러갔을 테다. 걷기 시작하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연애를 시작하고 나의 삶은 그렇게 무수한 시작을 품은 채 흘렀을 테고, 내가 내 세계 안에 맺히는 상으로만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나의 어미는 그 뒤에 배경처럼 선 채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었을 거다.


서른아홉 해 동안 자식으로 꾸준히 달려왔지만 제 자식을 낳고 나서야 내가 자식이라는 역할을 부모라는 역할만큼 무겁게 생각한 적이 없음을 알고 한 동안 가슴이 저릿하기도 했다.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엄마의 마음, 청춘 따위의 단어가 어미가 된 나의 마음을 수시로 파고들었다.


사범대를 나온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면서 선생님이 되는 대신 주부의 길을 택했지만 그 후로도 어떤 식으로든 가르침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엄마는 미약하게나마 꿈을 향한 의지를 붙들고 있었던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해 그랬던 것일까. 아님 둘 다였을까. 지금의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묻고 싶은 말들이 자꾸 목 언저리에 쌓여만 간다.


내가 엄마가 던진 부메랑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시절 엄마에게 24시간 붙어 있었을 내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멀어지다 자식을 낳은 뒤 다시 엄마에게로 향해 가는 마음이.


그건 그리움의 다른 이름일 거다. 내가 몰랐을 엄마를 향한 그리움, 자식인 내가 거꾸로 돌려주지 못했을 사소한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 우아함을 집어던지고 전면으로 나서야만 하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득해지는 그리움.


제 스스로 자식을 낳은 뒤 그렇게 다시 한번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는 이번에는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내리 받기만 한 사랑을 전부 모아 엄마에게 도로 돌려줘 보자고도 다짐하지만 나의 사랑은 그렇게 또다시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만 만다. 그 시절의 엄마를 잊지 않고 자꾸 복기해 보는 게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라며 또 제멋대로 생각해버리는 나다.




창밖 너머 하늘에 내려앉은 하얀 구름이 말도 안 되게 풍성한 오후, 엄마는 지금쯤 지구 반대편에서 곤히 자고 있겠지, 생각하며 넋 놓고 앉아 있으니 옆에 앉아 있던 아이가 말한다.


"아, 좋다."


아이의 보드랍고 말간 얼굴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본다. 이제는 보인다. 그 풍경 속에는 지금의 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청춘이었을 엄마도 있었다는 것이.


오늘은 내가 엄마의 딸이 된 지 13956일째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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