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덮는 순간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책이 있고 덮고 나서 더욱 생각나는 책이 있다. 그녀의 책은 읽는 동안에도 책장을 덮은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앞으로는 아이의 팔이나 다리에 난 멍을 볼 때마다 부딪쳐야만 걸을 수 있는 누군가와 그걸 지켜보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떠오르겠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녀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낀 건 미안하지만 장난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그녀의 농담들 속에서 어떤 우울을 느낄 때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브런치에 올라온 그녀의 글들을 읽으며 그녀를 안다고 자만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어렴풋이나마 짐작했던 내가 몰랐던 그녀의 시간들이 나를 아프게 때려서 읽는 동안 자주 눈시울이 붉어졌고 몇 번은 오열을 했던 것도 같다.
그녀가 건넌, 지금도 건너고 있을 시간을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프게 써 내려갔을 이 기록들마저 너무 그녀답고, 그건 또 너무 내 마음 같아서 감히 이해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본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우리 앞의 길마저도 전혀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내가 이 낭떠러지에서 한 발짝 내디뎌야 한다는 사실만이 분명해서 나는 두려웠다.”
이렇게 말했던 그녀의 시간 속에 나는 없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한참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나에게 괜찮다, 고맙다, 해주었다.
뒤늦은 위로를 건네고 나서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더 아파할까 봐, 더 아파하는 그녀를 내가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어쭙잖은 위로를 건넬 용기도 없으면서.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 말들을 기다릴 때 누군가는 자신의 다정을 쥐고 하얀 밤을 보냈겠구나. 몇 번이나 글귀를 썼다 지웠다 하면서 말을 골랐겠구나.”
그래서 나도 용기 내어 말해본다.
애썼다.
멋지다.
괜찮다.
좀 쉬어.
대단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남편 탐구 보고서’에서는 내가 아는 그녀가 등장해 울다 웃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 이게 당신이지. 내가 좋아하는 당신의 농담들이 떠올라 단걸음에 달려가 당신을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너를 잃지 말라”는 엄마의 말뜻을 그녀는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변호사에게 당차게 보호자의 존재를 각인시킨 그녀도 존중하지만 보호자로서가 아닌 본래 자신의 모습을 기어이 건져 올린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본만큼 자신의 마음도 오래 바라본 게 분명한 그녀를.
슬픔을 오랫동안 응시한 자의 말은 또 얼마나 가슴에 와서 콕 박히던지.
“단지 용기를 북돋우거나 희망적인 계획을 세운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슬픔은 차라리 그런 것들에게서도 나타나는 얼굴이다. 내가 애써 내는 용기에 눈물이 울컥 솟는 일, 희망을 말하다가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 슬픔에 가깝다. 김이 나는 밥 한 그릇 앞에서 흐르는 눈물, 반가운 목소리에 터지는 울음이 슬픔이다. 그러니 슬픔을 대하는 일에 너무 서투른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은 슬픔과 제대로 인사해 본 적도 없다고, 서둘러 피해 가기 바빴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그녀는 기어코 슬픔보다 사랑을 선택한다. “그러니 내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그러니 우리는 만나야 한다. 사랑에 관해서도, 슬픔에 관해서도 얼굴을 마주 보고 밤새 얘기 나눌 수 있는 그날을 나도 작은 촛불 하나 켜두듯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