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신화, 여성주의로 일기

by 지모신

1. 들어가는 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는 『부도지』 전하는 마고 신화이다. 부도지(符都誌)라는 말은 "하늘의 뜻 (天符)을 받드는 도읍(都)에 관한 기록(誌)"이라는 뜻이다. 원래의 『부도지』는 『징심록』15지 가운데 제1지로 신라의 박제상이 적어도 419년 이전에 기록하였고 영해 박 씨 종가에서 필사하여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으며 조선 세조 이전까지는 책의 내용이 상당히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조에 반기를 들었다가 박 씨 집안은 풍지박살 되었고 그 와중에 이 책은 김시습에게 전해졌다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해방 전 박금씨 대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박금 씨는 이 책을 해방 후 월남할 때 두고 내려왔다. 이에 한을 품은 박금(朴錦, 1895.10~1969.10)씨가 1953년 울산의 피난소에서 과거에 『징심록』을 번역하고 연구하던 때의 기억을 되살려 거 원문에 가깝게 되살려 내었다. 그래서 『부도지』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사학계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부도지』 초판 서문). 또한 이 설화를 역사에 직대입하여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하였다는 정설에 비추어 『부도지』의 설화가 사적인 자료로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김정희, 2011:7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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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은 무조건 사료적 가치가 없는 것일까? 구술사 연구도 구술자의 기억은 주관적이고 이는 구술이 거짓된 기억의 왜곡을 거쳤기 때문에 사학 연구가 채택해서는 안 되는 방법론이라는 비판을 주류 사학자들로부터 받는다. 이런 비판에 대해 폴텔리는 기록문서도 출처를 알 수 없는 구술 자료가 통제되지 않고 전승된 것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 모든 자료들은 표준 역사 연구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으면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고 말한다. 기록 문서라는 것들도 대개 문서가 전해주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 그리고 종종 그 사건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기록 문서와 구술받은 문서 간의 절대적 차이는 허구라는 것이다 Portelli, 1998)

. 폴텔리의 이러한 사료관에 입각할 때, 현재 존재하는『부도지』의 마고 신화는 신라시대부터 문서 기록으로 전승되어 온 『부도지』에 대한 유사한 기록이라는 신뢰를 전제로 적어도 가장 오래된 민족 신화로서의 가치는 인정받을 수 있다.

. 성서와 경전 모두 기록이 된 것은 예수의 설교와 부처님의 설법이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다 나중에 제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처음에 있는 건 구전과 기억뿐이었다.

『부도지』의 마고 신화의 역사성은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문자 그대로의 실증적 역사성이 아니라 한민족이 형성될 당시의 집단 정체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시대를 뛰어넘는 모종의 집단 무의식을 보여주는 원형이라는 데서 찾아야 한다.

. 그리고 이 집단 무의식은 『환단고기』와 더불어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환단고기』에 대한 위서 논의는 이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 없이 펼쳐지고 있음을 이기동 교수는 지적하면서 이 정신세계를 이해하면 위서론을 벗어나서 『환단고기』를 한민족에 국한되지 않는 고대 동북아시아의 정신세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닙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UzZv04CSyQ).

필자 역시 『부도지』를 10여 년 전에 있었을 때 그 웅혼하고 대각한 경지의 정신세계에 압도되어 이는 개인에 의해 창작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님을 확신하며 해석하지는 못한 채 대모신(大母神) 신화로 소개하는 데 그쳤다(김정희, 2011:73~81).

다만 대각(大覺)의 언어 ’살림‘이 마고 대모신 시대에 발화되었을 것을 직감한 것만으로도 경이로웠고 만족했다. 살림은 일상적으로 아이를 기르고 성인들의 하루하루 활동력을 재생시켜 주는 일에 국한되지 않고 나라살림, 지구살림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데서 보여주듯이 인류가 지배와 종속, 주인과 노예, 이것의 은유이면서 현실 질서로서의 남과 여, 문명과 자연과 같은 위계적인 이분법적 질서, 가부장제를 몰랐을 시대에 인간의 투명한 우주적 혼연일체의 ᄒᆞᆫ 어머니의 기백, 깨달음, 얼을 증거 한다(앞글:76~77, 139~141)

. 이러한 대각의 경지의 ’살림‘이란 말의 웅혼함은 『부도지』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제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해석되는 부분들이 있어 나눌 수 있고 이에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나눔의 인연은 지금은 폐관된 여담재가 2021년 10월 15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연 서용선 화가의 '우리 안의 여신을 찾아서' 전시이다. 이 전시를 위한 브로셔에 마고신화 해설을 쓰게 되는 행운을 만났다. 당시의 이혜경 관장님, 서용선 화가님, 신지영 전시 감독님에게도 감사드린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원고를 다시 보니 마고에 대한 여성연구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묵히기 아까워 다시 나누고자 여성신문사 문을 두드려 싣는다. 여성신문사에도 감사드린다.



2. 마고 신화의 정신세계 읽기


마고 신화는 우주와 지구의 창조와 지구상에서의 인간 출현에 대한 우리 고대 선조들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상상력은 어떤 점에서 대각(大覺) 수준의 높은 정신적 경지를 보여준다. 즉 마고 신화를 만든, 후기 구석기나 신석기 초기의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는 미개한 원시인이 아니라, 자재율(自在律)에 따라 살았다고 하는 마고성 사람들의 경지로 현대인들이 복본(復本)해야 근접할 수 있는 그런 정신적 경지를 보여준다. 김시습도 『부도지』의 이러한 경지를 간파하여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통칭 그윽한 의미가 선도와 불법과 비슷하나 같지 아니하다. 당시 신라에는 잠시도 선(仙), 유(儒), 불(佛)이 침투해 오지 않았으니, 이는 고사(古史)에 근거한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광명의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였으니, 그 시대는 과연 어느 시절인가?”(김시습, 2020:123)

이하에서는 이러한 마고 신화의 범상치 않은 정신세계를 일별해 보고자 합니다.

마고 신화는 동이족 혹은 동북아시아인들이 공유한, 인류 보편의 대모신(大母神, Great Goddess) 신화로 이해된다. 인류 고대의 신화들을 살펴보면 창조 과정에 남신이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3, 4천 년 전경부터이다. 그 이전의 신화에는 지구와 별, 인간과 자연, 생과 사 모든 것이 대모신에게 구현되어 있고 대모신은 새 생명 창조를 시작하는 바다, 물, 알의 신비, 자연 속의 원시적 힘으로 우주와 자연 인간을 창조한다. 예를 들면 이집트의 원시 바다인 여신 넌(Nun)은 태양신 아툼(Atum)을 낳고 아툼이 이 우주의 나머지 것들을 창조한다. 바벨론의 여신 티마(Timat)는 그녀의 배우자와 남신, 여신을 출산하고 그리스의 여신 가이아(Gaia)는 처녀 출산으로 하늘인 우라노스(Uranos)와 인간을 창조한다(Lerner,1986: 149).

이런 신화사에 따르면 마고 신화는 대모신 시대의 전형적인 여신 창조 신화의 모습과 동시에 가부장제 성립 이전 대모신의 조력자로서의 남신이 등장하는 단계의 신화를 보여준다. 선사 시대 여신 연구들을 검토한 러너(Lerner)에 의하면 1단계 여신 신화에서 여신은 창조주 대모신으로 하늘과 땅, 우주를 창조하고 동정 생식으로 낳은 자녀들을 두는 최고의 신이다. 2단계 여신 신화에서는 남신이 처음에는 대모신의 아들 또는 남자 형제로 나타나다가 점차 배우자 남신으로도 나타난다. 남신들은 대모신의 조력자이고 여전히 권능은 대모신에게 있다. 3단계 신화에서는 신이며 왕인 배우자가 여신과 대등한 권능을 갖는다. 마지막 4단계에서는 여신은 격퇴되며 남신-왕이 혼자 지배하는 신화가 나온다 (앞글:41). 제우스가 파리로 변신한 지혜의 여신 메티스를 잡아먹고 최고신으로 군림한 그리스-로마신화와 하나님 아버지(God Father) 유일신 신앙이 성립되는 구약의 창세 신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고의 계보는 2대 궁희와 소희에서 3대에는 궁희와 소희가 낳은 네 천인과 네 천녀로 이어진다. 3대에서 궁희와 소희가 낳은 아들 4명의 천인은 황궁씨, 청궁씨, 백소씨, 흑소씨로 이름이 나오는데 4명의 딸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신화시대에 남성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마고가 두 딸에게 오음칠조의 음절을 맡아보게 하였고 다시 이 두 딸의 네 아들이 본음(本音)을 나누어 관장하니, 이 아들신인(神人)들은 여전히 대모신을 보필하는 위치에 있다. 러너의 여신 신화 단계 분류에 따르면 두 번째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마고 신화에서 주목할 점은 한반도 역사에서 어느 시기에도 절대 권력자 남신이 신앙세계에서 지배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사진1>마고

2-1. 태초의 율려로 창조된 우주


“짐세 이전에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할 때,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아 두 딸에게 오음칠조(五音七祖)의 음절을 맡아보게 하였다.”(『부도지』2장).


짐세는 같은 『부도지』2장에서 8 려(呂)의 음이 원시지구인 실달성과 허달성, 마고대성과 마고를 생기게 한 우주의 어떤 시기로 언급된다. 별들이 출현한 건 이 짐세 이전이다. 태양도 별이므로 짐세 이전에 출현하였다. 우주가 우주대폭발의 소리, 빅뱅(Big Bang)과 함께 형성되었다는 것은 현대 우주론의 표준 모델이다. 마고 신화에서는 이 빅뱅을 율려라는 소리, 또는 음악으로 표현한다. 오늘날 국악에서 율려는 양률인 육률(六律)과 음려인 육려(六呂)를 일컫는다 육율은 황종, 태주, 고선, 유빈, 이칙, 무역이고 음률인 육려(六呂)는 대려, 협종, 중려, 임종, 남려, 응종이다.

한 마디로 율려는 음양의 기운을 담은 소리이고 마고 신화는 이 음양의 소리가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선천시대에 마고대성은 실달성 위에 허달성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 려(呂)의 음만이 하늘에서 들려왔고 실달성과 허달성, 마고대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다.(『부도지』2장)


원시 지구인 실달성과 허달성, 마고대성과 마고는 8 려의 음에서 나왔는데 이때 이미 몇 번의 율려의 부활 속에서 태양은 있었다. 현재 음의 소리인 려는 대려, 협종, 중려, 임종, 남려, 응종의 육려만 사용되는데 짐세에는 8려의 음이 울렸다니 우리는 두 개의 려 소리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일까?


다시 앞의 인용구로 가면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할 때,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아 두 딸에게 오음칠조(五音七祖)의 음절을 맡아보게 하였다. 오늘날 전통 음악에서는 ‘궁(宮) · 상(商) · 각(角) · 치(徵) · 우(羽)’ , 이 다섯 가지 소리를 핵심을 이루는 오음으로 사용하고 있다.

칠조는 조선전기 향악에 사용된 일곱 가지 악곡의 음조이다(칠조,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95639&cid=46661&categoryId=46661)

. 향악은 일명 속악(俗樂)이라고도 한다. 삼국시대에 당악(唐樂)이 유입된 뒤 외래의 당악과 토착음악인 향악을 구분하기 위하여 이름 지어졌다(향악(鄕樂),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27350&cid=46661&categoryId=46661). 마고 신화에서의 오음칠조의 칠조는 한 민족 고유의 향악에 사용된 음조로 봐야 할 것이고 이는 마고 신화시대부터 내려오는 소리이다. 마고는 선천을 남자로 후천을 여자로 해서 낳은 두 딸 궁희와 소희에게 오음칠조의 관리를 맡겼다고 신화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에서 지유(地乳)가 처음으로 나오니, 궁희와 소희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精)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각각 네 천인과 네 천녀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길렀다. 그리고 네 천녀에게는 여(呂), 네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 하였다.”(『부도지』2장)


“… 성 중의 사방에 네 명의 천인이 있어 관(管)을 쌓아놓고 음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씨요, 둘째는 백소씨요, 셋째는 청궁씨요, 넷째는 흑소씨였다. 두 궁 씨의 어머니는 궁희씨요, 두 소 씨의 어머니는 소희 씨였다.”(『부도지』2장)




※ 이하의 글은 아래 여성신문에서 일으실 수 있어요.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4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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