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 속에서는 목적을 잊는다.
저 멀리 희끄무레 까마귀 한 마리
높이 솟은 삼나무 무리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볕 한 줌
반짝하고 몸을 떠는 거미줄
선선한 바람이 얼굴에 부딪혀 머리를 흩트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화가 나있었나?
순간 사고가 정지한다.
짧은 방황이 주는 예상외의 희열
미소가 새어 나온다 벅차서 숨길 수 없는
드넓은 숲의 적막함에 몸을 싣고서
흘러간다 바람 따라.
부유한다 흐드러진 삼나무 잎새 사이로
그저 존재하는, 무언가로서
목적이 희미해진 자로 전락하여
구속된 사소한 톱니바퀴에 불과함에도,
느껴지는 안도감 포근한 소속감.
한없이 작아져 다섯 살배기 아이가 된 듯
파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유로운 비행.
고삐를 꽉 쥔 손에 힘이 빠진다.
장엄한 각오와 신념은 일순간 사념이 되어
내 몸을 떠나 숲의 요깃거리가 된다.
비워낸 다음에야 다시 채울 수 있지
다양한 것들을,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다행스럽게도, 순수한 허무가 자유의 물꼬를 터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