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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Mar 26. 2018

불편함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프롤로그




나는 ‘불편’이란 말을 좋아한다. 불편은 불만이라는 단어와 유사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불만이 ‘마음에 차지 않는 상태’, 불만족스러움이란 상태를 표현하는 데 그친다면 불편은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고 괴로운’ 인간적 고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질문의 시작이다. 내가 왜 이렇게 불편할까? 하는 자각으로 시작해 불편함의 대상을 마주 보려 하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물론 그 시도가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그것을 룰이라 수용하면 ‘수긍’이 되고, 반감은 느낄지언정 힘껏 대항하려는 생각이 없다면 ‘타협’으로 머무를 테니. 그리고 그렇게 수긍과 타협으로 머무르는 사람들이 우리의 대다수이기도 하다. 괜히 말 만들기 싫어서, 피곤한 사람 취급당하기 싫어서.   

                              

                               /  


나 역시도 이런 사람이었다.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로 학창 시절을 시작해, 그 어려운 입시지옥도 “입과 엉덩이가 무거워야 이긴다”는 말 하나로 버텨냈다. 앞으로 뭘 하고 싶다는 생각보단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정작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이 정도 회사는 되어야 체면치레를 하지”라는 생각으로 막연히 꿈을 정했다.   


내 마음의 목소리보단 가족의 시선, 주위의 평판을 신경 쓰느라 허덕였던 시간. 덕분에 부모님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구매했던 행정고시 책 스무 권을 후련히 중고장터에 내다 팔기까지 무려 3년의 시간이 걸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동공도 두뇌회전도 풀린 채 버틴 날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지질했던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드라마틱한 선회의 계기이기도 했다.   


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악재로 쌓여 돌아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던 계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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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공무원 아니면 백수 된다’는 공무원 가족의 신념을 등지고 정 반대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물론 이 역시도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7년의 백수 시절을 거쳐 언론고시에 낙방하고, 이후 온갖 위장병은 달고 살았던 카피라이터로 4년, 그리고 한 기업의 브랜드 기획자로 5년째 정착하기까지 말이다.   


부모님은 이런 날 보고 “거봐라. 결국 안정된 대기업에 입사하니 모양새가 좀 좋으냐”라고 하시지만, 그 대기업이란 곳에서 둘째 딸년이 얼마나 아등바등 조직의 룰에 대항하고 상사에게 바른말하며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면 정말 기절초풍하실 거다.  


덧붙여 그 과정에서 ‘결혼’이란 것도 하게 되었으니 그 입바른 말을 하는 대상이 우리 남편에, 시댁에, 여성의 입지를 위협하는 꼰대 남자들까지 싸잡아 추가된다는 것을 알면 “뭐야, 조직 부적응자에 어설픈 페미년이 된 건가?”하는 절망의 한숨을 내쉴 수도 있다.    


                                /  


하지만 30대 여성이자, 직장인이자, 엄마라는 내 수식어를 생각할 때 이 모든 사적 족적과는 무관하게 ‘어떤 불편함’이 응당 존재할 것이랄 것은 이견을 달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타깃은 기성세대의 완벽한 복종도, 밀레니엄 세대의 완벽한 개인주의도 아닌 ‘어느 순간 불편함을 깨닫게 된 끼인 부류’이자 ‘각종 차등대우’를 경험하고 있는 약자로서 늦은 사춘기를 경험하고 있으니까. 때로는 여자로, 때로는 며느리로, 때로는 워킹맘의 고충으로 그 테마를 발현하면서 말이다.   


나는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학인도, 한 순간 제사상을 파투 낼 담대한 며느리도, 가사와 육아를 끝장나게 해 내고 있는 워킹맘도 아니기에, 어느 특정 주제에 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겪고 있는 생활인으로서 ‘나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편함’에 대해, 보다 가볍고 자유롭고 솔직한 이야기를 던지고자 한다. 


‘진짜 못해 먹겠다’의 좌절도, ‘다 무시해 버리겠어’의 영적 탈출도 아닌 ‘이 불편함의 시작은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를 때론 자아반성으로, 때론 누군가에 대한 비판으로, 달고, 쓰고, 맵고, 짜게 이야기해보겠다는 것.


                                /


때론 글을 쓰다 울화가 치밀어 채 그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작가’란 고상한 타이틀을 얽매이지 않는 ‘어떤 생활인의 인간적 실수’로 이해해주셨음 한다. 어떤 불편함은 골이 너무 깊어 풀어내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펼쳐질 장황한 이야기들 끝에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한 가지였음 한다. 바로 불편(不便)함에서 시작해 불편(不偏)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단지 나의 감정의 폭풍에만 휩쓸리지 않고 좌우를 고루 살필 수 있는 중도의 무언가를 향해, 있는 힘껏 나아가 보자는 것이다. 자유롭게, 그리고 당당하게. 


나는 조직 부적응자도, 어설픈 페미년도 아닌, 

주체적 감성의 ‘프로 불편녀’가 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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