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주 Apr 24. 2018

조리원의 두 얼굴

'엄마'의 이름으로 마주한 이상한 세계

아줌마니까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 그중 하나는 ‘산후 조리원’이다. 남자 목욕탕, 여자 목욕탕만큼 ‘대중적인 호기심 주제인가?’에서는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리얼함’ 측면에서는 르포 이상의 무엇을 기대해도 좋다. 다둥이 엄마로서 두 번이나 조리원에 다녀왔고, 슈퍼와 병원에 다녀온 이틀을 제외하곤 한 달 이상 정해진 합숙생활을 했으니 ‘정말 겪을 일은 다 겪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가 트일 지점은 ‘나는 점잖은 척하는 아줌마’는 아니란 사실이다. 순도 100%의 묘사를 자신한다. 부끄러움은 당신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럼 오늘의 말하고자 하는 주제. 물론 ‘어떤 조리원이 좋으냐’는 아니다. 그런 정보는 이미 포털 사이트에 우후죽순으로 널렸다. 오히려 출산 후 몸도 마음도 다운된 한 명의 엄마 입장에서, ‘조리원은 얼마나 불편한 곳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조리원에서 불려지는 호칭, 대접, 그리고 새롭게 요구되는 능력 밖의 의무감까지. 혹시 오해가 될까 싶어 밝히는데, 조리원 원장님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일방적 불만은 아니다. “저 잘 쉬었습니다. 잘 쉬었는데요. 그래도 이건 찜찜했어요”의 버전이다. 인간이란 원래, 생각의 동물이니까.  


                              /  


“가슴이 참 좋으시네요” 이건 내가 조리원에서 처음 들은 말이다. 병원에서 갓 조리원으로 옮겨 힘 없이 누워있는데, 조리원 원장과 마사지사가 상태를 좀 보자 하더니 내 가슴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직역하면 이거다. “가슴이 참 좋아서, 아이가 우유 먹기 참 편하겠다고” 사실 엄마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젖이 안 돌아 모유를 먹이기 어려운 이들도 있다는데, 몸에 좋은 초유를 먹일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지만 그것은 여자로서 좀 혼란스러운 상황이기도 했다. 아무리 동성이라지만, 내 가운을 거리낌 없이 여는 것도 그러했고, 건강보다 가슴 안부를 먼저 묻는 게 솔직히 익숙지 않았다. 뭔가 진짜 동물이 된 것 같은 느낌?   


사실 우리는 동물이 맞다. 하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처럼 본능적 동물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다시 가슴 얘기다. 매일 2시간마다 유축을 하고, 모유 얘기만 하는 조리원의 단면 이야기. 난 그 이후 ‘가슴 산모’이자 ‘모유 여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정말 모유가 샘처럼 솟아 나왔다. 분홍 유니폼을 맞춰 입은 산모들을 유축실에서 만나면 서로가 무심하게 상의를 풀어헤치고 유축을 했다. 난 30ml 나왔다. 넌 100ml네, 우와! 하는 대화를 반복하며 하루가 갔다. 조리원 간호사들도 독려를 했다. “어머, 301호는 오늘 큰 일 하셨다, 306호는 노력 좀 하셔야겠어” 미묘한 경쟁 구도에 어떤 엄마들은 자책으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게 그럴 일인가?   


어떤 집에게는 실제 그럴 일이 맞는 것도 같았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일’을 ‘노력의 일’로 만들고 있었다. 실제 306호 산모의 시댁은 매일 같이 조리원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대단한 분들이라 생각했는데, 실체를 알고 좀 놀랐다. 그들은 며느리가 얼마나 유축을 했는지 감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 면접 실에서 “오늘은 애를 얼마나 먹였니?”라고 묻는 질문을 듣고 있자면 뭔가 숨이 턱 막혔다. 매일 산모는 잠도 못 자고, 유축실에서 안 도는 젖을 짜며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루는 그분들이 쐐기를 박았다. “분유 값도 아껴야지. 그것도 다 네 능력이야” 엄마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왜 이리 많은 것일까.   


이런 갈등 속에서도 우리는 매일 미역국을 먹었다. 미역국이 회복에 좋은 줄 알아 열심히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히려 모유 양을 높여주는 목적이라 해서 어느 순간 끊었다. 그래도 이 놈의 모유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가슴 통증만 커져 갔다. 하루는 306호, 310호 엄마가 내 방에 찾아왔다. 유독 모유가 안 나오는 그 둘은 내게 이런 청을 했다. “모유 좀 팔아요. 우리 애 먹이게” 놀라서 말을 못 하는 내게 그들은 친절하게 엄마들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실제 모유를 사고파는 게시판이었다. 값을 후하게 쳐준다며 계속 설득을 하는 그들을 보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좀 이상한 나라에 던져진 것 같아서.   


사실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결국 난 모유를 팔지는 못했다. 옆 방 산모는 ‘모유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조리원 간호사들의 조언을 받들어 모유비누도 만들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줘야겠어요”라고 맑게 웃는 그녀를 보며, 나는 왜 저토록 구김살이 없는가 반성하기도 했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이후에도 불편함은 종종 찾아왔다. 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야 하는 피곤함에 낮잠이라도 자려면, 꼭 밖에서 문을 두들긴다. “애를 많이 안아 줘야 엄마를 따라요” 그러면 손목 관절이 쑤셔도 애를 안아야 했다. 싫다는 말보다, 그런 말을 할 때 느껴지는 암묵적 눈총이 싫었다. 결국 조리원의 시간은 그렇게 무한반복됐다. 판다 눈이 된 날 남긴 채.   


                               /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얕게 언급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쓰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어떤 주제는 시간이 지나면 쉽게 휘발되기에 어떻게든 붙잡고 남겨둬야 한다. ‘우유 짜는 기계’처럼 감시당하는 듯했던, ‘엄마’란 이름으로 족쇄가 채워지는 듯했던 ‘조리원의 이중성’은 어떻게든 마음에 새기고 싶었다. 그리고 내 친구와 미래의 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너만의 중심을 잘 잡으라고. 출산 후 펼쳐지는 ‘이상한 세계’에서 너의 방식으로 ‘엄마 됨’을 정립하라고. 그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하게 될 거라고.  


어영부영 그 세계를 버티다 나온 나는, 더 이상 ‘가슴 여왕’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가슴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이젠 ‘흔적 기관이 된 가슴’과 ‘손목 산후 풍’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두 아이를 바라보며 가끔 그때를 돌이켜 본다. 그때 내가 좀 더 나 자신을 챙겼더라면, 내가 좀 더 나 자신을 아낄 수 있었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라면’의 과거는 무의미하다. 이 무의미한 한숨까지 덤으로 얹어 ‘혹여 조리원에 입성하게 될 당신에게’라도 용기를 주고 싶다. ‘엄마’도 ‘내’가 있어야 있는 거야. 싫으면 싫다고 해. 

매거진의 이전글 "얘들아, 욕은 이렇게 하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