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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Mar 19. 2018

도대체 연애는 왜

03. 이별에 대하여 깔끔하게 경례! 


                                                        미련퉁이


        10년 전 그 남자, 잘 살고 있을까? 


  

     

                                                                       뭐야, 겨우 이런 놈 때문에!


                       내 피 같은 시간 돌려줘!


                                 

                                 03. 

          이별에 대하여 깔끔하게 경례!



곰녀들에게 사랑이란 맞이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건, 본인은 물론 본인 친구들이다. 연애를 할 때부터 “그 남자가 정말 날 좋아할까?”의 조언을 구하던 곰녀들은 헤어짐에 있어서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정말 날 좋아하긴 했을까?” 혹은 “그 남자가 정말 나랑 헤어진 게 맞는 걸까?”등의 물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끝없는 질문과 반복된 자기합리화에 마침내 곰녀들의 친구도 수화기 너머 넋을 놓을 즈음, 당사자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우리의 우정을 자극한다. “으어어엉! 도대체 그 남자가 나랑 왜 헤어지자고 했을까.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


내 친구 ‘박미련’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복학생 선배와 CC가 되어 무려 5년 간 장기연애를 했다. 처음엔 참 알콩달콩 했지만, 3년째부터는 친구가 먼저 취업하면서 연애가 좀 시들해졌다. 한쪽은 늘 회사일에, 다른 한 쪽은 백수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기 때문.     


하지만 친구는 사랑을 넘어 아름다운 의리를 보여주었는데, 백수 남자친구를 2년간 밥 세끼 꼬박꼬박 먹여가며 연애를 이어간 것은 물론, 그의 동영상 강의비용을 자비로 보태기도 했다. 그러니 그 남자가 삼수 끝에 드디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친구의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 미련이와 그 선배가 결혼까지 이르게 될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말 삼류드라마 같은 반전이 생겼으니 변호사 시험합격과 동시에 국내 3대 로펌 중 한 군데에 취직하게 된 이 남자는 입사 4개월 만에 친구와 이별을 선언했다. 그것도 직접 대면하는 것 없이 문자로 ‘우리 헤어져’란 단편적이고 무례한 통보만을 던진 채. 이후 미련이는 그놈에게 숱한 전화와 문자를 반복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고. 딱히 이렇다 할 마무리 없이 긴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래서였을까? 이후 그녀는 꽃다운 2,30대를 ‘그 놈을 기다리면서’, 혹은 ‘원망하면서’ 보냈는데, 서른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얼마 전 이런 내용의 전화 한 통을 걸어왔다.


                                 /

      

‘드디어 그 남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냈다! 메일계정을 가지고 구글링을 해보니 페이스북 하나가 걸린다. 근데 그 남자는 벌써 결혼을 했고, 와이프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별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남자는 완전 뚱뚱하고 무심한 표정의 아저씨가 되었는데, 내가 고작 이런 남자 기다리고자 이렇게 세월 허송했다고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난다. 그 놈에게 쪽지라도 보내 실컷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맞다. 참 그 시간이 아깝다.

그리고 이왕 말 나온 김에 그 남자와 헤어진 후의 미련이의 10년 세월을 한번 비용으로 계산해보도록 한다.     


                              <내 친구 박미련의 10년 무()연애에 따른 기회비용>  


 놓친 남자 : 1년에 2명씩만 줄 잡아도 대략 20명.
 육아 손실 : 결혼 후 2년 만에 애를 가졌다 생각해도 대략 8년의 육아 뒤처짐.

               더불어 노산의 위험성과출산 후의 급격한 체력 저하를 감안하면 수천만 원 그 이상
 노화된 미모 : 떠난 남자친구를 생각하느라 주름진 얼굴과 체중 저하, 외모 재건을 위한 보스, 필러 등의

                 시술 및 피트니스가 절실. 이 비용만 대략 추산해도 몇 백만 원.
 친구와의 불화 :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반복해 전하느라 신임을 잃은 친구만

                    1년에 1명씩만 잡아도 10명(실은 그보다 더 많을 듯).
 •가족과의 불화 : 밝은 연애관념을 잃은 친구에게 실망한 부모와의 불화, 상상 그 이상
 • 직장인의 기동력 저하 :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심적 즐거움 저하에 따른 직장에서의

                             집중력과 추진력 저하. 이를 1년에 PPT 100장으로 따지더라도 약 1,000장,

                             PPT 1장 당 아이디어 1개를 감안해도 약 1,000개.
 • 자존감 결여 : 자신을 아껴야 하는 자존감 지수 자체가 없음
 
   중간 소계 :무한대의 손실 (계산이 불가할 정도로 손해가 극심함)      


                                 /


과거의 남자를 유령처럼 안고 살며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지 못한 값이 이렇게 무섭다. 누군가는 이별 후에 다른 남자를 즉시 만나는 것이 ‘여우같다’고 하며, 그것은 ‘그만큼 전 인연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라 비난하지만 한번 지나간 버스를 다시 잡기 힘들 듯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 사는 것이 더 허망한 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묻지마 이별’에 대해서는 상대의 냉정한 태도만큼 냉정하게 맘을 돌리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도 나에 대해 예의가 없었는데 구태여 그 예의없음에 나 혼자 눈물흘리지 말자는 거다. 그럴 때는 오히려 떠난 그 놈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를 가꾸고, 준비하는 것이 낫다. ‘준비되어 있는 자에게 미래가 온다’고, 떠난 남자에 대한 짙은 미련 대신 그 남자에게서 발견한 단점과 허상을 하나씩 적어나가는 ‘오답정리’가 더 절실하다는 것.     


이별은 이별일 뿐이다. 그것이 내 친구 미련이처럼 영혼을 좀 먹는 긴 어둠이 될 수 없는 법. 그러니 이별도 우리 쿨하게 받아들이자. 엉뚱한 미련 두지 말고, 그 미련으로 더 미련퉁이 같은 짓 하지 말고,이별에 깔끔한 안녕을 고하자. 사랑하는 과정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어야겠지만,   


이별을 맞이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경제적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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