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이별에 대하여 깔끔하게 경례!
미련퉁이
10년 전 그 남자, 잘 살고 있을까?
뭐야, 겨우 이런 놈 때문에!
곰녀들에게 사랑이란 맞이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건, 본인은 물론 본인 친구들이다. 연애를 할 때부터 “그 남자가 정말 날 좋아할까?”의 조언을 구하던 곰녀들은 헤어짐에 있어서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정말 날 좋아하긴 했을까?” 혹은 “그 남자가 정말 나랑 헤어진 게 맞는 걸까?”등의 물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끝없는 질문과 반복된 자기합리화에 마침내 곰녀들의 친구도 수화기 너머 넋을 놓을 즈음, 당사자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우리의 우정을 자극한다. “으어어엉! 도대체 그 남자가 나랑 왜 헤어지자고 했을까.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 친구 ‘박미련’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복학생 선배와 CC가 되어 무려 5년 간 장기연애를 했다. 처음엔 참 알콩달콩 했지만, 3년째부터는 친구가 먼저 취업하면서 연애가 좀 시들해졌다. 한쪽은 늘 회사일에, 다른 한 쪽은 백수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기 때문.
하지만 친구는 사랑을 넘어 아름다운 의리를 보여주었는데, 백수 남자친구를 2년간 밥 세끼 꼬박꼬박 먹여가며 연애를 이어간 것은 물론, 그의 동영상 강의비용을 자비로 보태기도 했다. 그러니 그 남자가 삼수 끝에 드디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친구의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 미련이와 그 선배가 결혼까지 이르게 될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말 삼류드라마 같은 반전이 생겼으니 변호사 시험합격과 동시에 국내 3대 로펌 중 한 군데에 취직하게 된 이 남자는 입사 4개월 만에 친구와 이별을 선언했다. 그것도 직접 대면하는 것 없이 문자로 ‘우리 헤어져’란 단편적이고 무례한 통보만을 던진 채. 이후 미련이는 그놈에게 숱한 전화와 문자를 반복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고. 딱히 이렇다 할 마무리 없이 긴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래서였을까? 이후 그녀는 꽃다운 2,30대를 ‘그 놈을 기다리면서’, 혹은 ‘원망하면서’ 보냈는데, 서른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얼마 전 이런 내용의 전화 한 통을 걸어왔다.
‘드디어 그 남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냈다! 메일계정을 가지고 구글링을 해보니 페이스북 하나가 걸린다. 근데 그 남자는 벌써 결혼을 했고, 와이프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별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남자는 완전 뚱뚱하고 무심한 표정의 아저씨가 되었는데, 내가 고작 이런 남자 기다리고자 이렇게 세월 허송했다고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난다. 그 놈에게 쪽지라도 보내 실컷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맞다. 참 그 시간이 아깝다.
그리고 이왕 말 나온 김에 그 남자와 헤어진 후의 미련이의 10년 세월을 한번 비용으로 계산해보도록 한다.
<내 친구 박미련의 10년 무(無)연애에 따른 기회비용>
•놓친 남자 : 1년에 2명씩만 줄 잡아도 대략 20명.
•육아 손실 : 결혼 후 2년 만에 애를 가졌다 생각해도 대략 8년의 육아 뒤처짐.
더불어 노산의 위험성과출산 후의 급격한 체력 저하를 감안하면 수천만 원 그 이상.
•노화된 미모 : 떠난 남자친구를 생각하느라 주름진 얼굴과 체중 저하, 외모 재건을 위한 보스, 필러 등의
시술 및 피트니스가 절실. 이 비용만 대략 추산해도 몇 백만 원.
•친구와의 불화 :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반복해 전하느라 신임을 잃은 친구만
1년에 1명씩만 잡아도 10명(실은 그보다 더 많을 듯).
•가족과의 불화 : 밝은 연애관념을 잃은 친구에게 실망한 부모와의 불화, 상상 그 이상.
• 직장인의 기동력 저하 :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심적 즐거움 저하에 따른 직장에서의
집중력과 추진력 저하. 이를 1년에 PPT 100장으로 따지더라도 약 1,000장,
PPT 1장 당 아이디어 1개를 감안해도 약 1,000개.
• 자존감 결여 : 자신을 아껴야 하는 자존감 지수 자체가 없음
⇨ 중간 소계 :무한대의 손실 (계산이 불가할 정도로 손해가 극심함)
과거의 남자를 유령처럼 안고 살며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지 못한 값이 이렇게 무섭다. 누군가는 이별 후에 다른 남자를 즉시 만나는 것이 ‘여우같다’고 하며, 그것은 ‘그만큼 전 인연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라 비난하지만 한번 지나간 버스를 다시 잡기 힘들 듯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 사는 것이 더 허망한 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묻지마 이별’에 대해서는 상대의 냉정한 태도만큼 냉정하게 맘을 돌리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도 나에 대해 예의가 없었는데 구태여 그 예의없음에 나 혼자 눈물흘리지 말자는 거다. 그럴 때는 오히려 떠난 그 놈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를 가꾸고, 준비하는 것이 낫다. ‘준비되어 있는 자에게 미래가 온다’고, 떠난 남자에 대한 짙은 미련 대신 그 남자에게서 발견한 단점과 허상을 하나씩 적어나가는 ‘오답정리’가 더 절실하다는 것.
이별은 이별일 뿐이다. 그것이 내 친구 미련이처럼 영혼을 좀 먹는 긴 어둠이 될 수 없는 법. 그러니 이별도 우리 쿨하게 받아들이자. 엉뚱한 미련 두지 말고, 그 미련으로 더 미련퉁이 같은 짓 하지 말고,이별에 깔끔한 안녕을 고하자. 사랑하는 과정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