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출산도 모유수유도 절대로 당연한 건 없다
모성
그 어떤 것도 가능하고 그 어떤 것도 감수하라는
쌍팔년도 감성팔이 자주 강요되고 남용됨
출산은 당연히 자연분만
24시간 노동은 기본이죠
엄마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일부 남자들은 여자의 출산에 대해 그것은 ‘남자들의 군복무’와 동급이며 심지어 더 쉽다고까지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참 비상식적이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일단 무엇이 더 힘들고 괴롭냐를 따지기 이전에 그 성격 자체가 다르다.
남자와 여자에게 가장 힘들게 각인되는 경험이 각각 군대, 출산일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군복무가 어느 시점에서 ‘마침표’를 찍는다면, 여성출산이란 것은 그야말로 ‘마침’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10개월의 임신기간을 거치고 출산을 하면 그때부터 참 많은 일들이 시작된다. 그것은 나를 채 돌볼 수 없는 희생을 요구하고 양가부모 혹은 친척들의 관심 혹은 관계까지 개입시키게 하나니, 절대 내 한몸 건사하고 끝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란 것이다.
특히 이런 출산방식, 모유수유의 선택권에 대해 남편이 아닌 시어른이 주기적으로 전화를 하며 감시를 하는 경우도 보았는데, 솔직히 그들이 말하는 정답을 ‘모성’이란 포장으로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란 것이 내 생각이다. ‘당연함’이란 말들로 감당할 수 없는 것들까지 버겁게 감내해야 하는 순간, 내 안의 행복은 사라지고 이후 찾아오는 우울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산후우울증이 있었다. 제왕절개를 해, 애 둘을 낳았고 그 둘 각각을 약 석 달간 모유수유를 해서 키웠다. 문장으로 이렇게 적으면 ‘아 그런가보다’ 하는 전혀 감흥없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직접 출산과 육아를 경험해보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문장 속에 숨은 골 깊은 감정과 신체적 소모를 절감할 것이다. 내가 경험한 그 모든 힘든 시기를 다 더해서, 곱하기 일억 만 배 쯤하면 이 시기의 힘듦이 설명될 수 있을까? 특히 차오르는 모유 탓에 두 시간마다 일어나야 하는 극한 경험을 겪으면서는 내가 동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내가 참 힘들었지”의 한탄보다는, 그 과정에서 겪었던 ‘타인들의 간섭과 불편함’이었다. 출산 전 수술로 아이를 낳겠다는 말에 남편을 포함한 친정식구들까지도 ‘자연스러운 출산’이 좋다며 자연분만을 권했다. 아픔을 겪기 싫다는 말에 ‘아니 될 말’이라며 자연분만에 대한 블로그, 카페, 심지어 어디 뉴스의 줄글까지 문자로 보내줬을 정도니까. 그런데 이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무 시간 진통을 해도 자궁이 몇 미리mm 열리지 않은 내게 간호사는 “엄마니까, 조금만 더 참아보라”며 자연분만을 독려했고, 마침내 모성이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수술하라는 내 말에 놀라 겨우 수술에 들어갔다.
조리원에 가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조리원이란 곳이 어떤 곳인가. 아이를 내 손으로 온전히 보기 전에 약 2주간을 내 몸을 추스르며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몸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그런데 이 공간에서도 그 ‘당연한 모성’을 내세우는 적들이 등장한다. 좀 쉬겠다 싶으면 “유축은 다하셨나요?” 하며 모유수유를 강조하는 간호사에, “애를 좀 안아주셔야 엄마를 더 따르는 거에요”하며 아이를 은근슬쩍 맡기려는 그들.
물론 이 밖에도 설화할 것들은 많다. 완벽한 강요는 아니었지만 조리원을 나와서도 “모유가 좋다더라. 좀 많이 먹여랴”는 독려 비슷한 이야기를 시부모님과 통화하며 듣게 되었고, 언젠가 모유에서 분유로 바꾸었을 때는 “나는 계속 모유를 먹이는 줄 알았는데, 분유로 바꾸었구나. 그래서 애가 그렇게 살이 쪘나?”는 은근한 감시이자 비판의 말도 들었다.
물론 어르신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내 입장을 주장하고 싶다. 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그분들이 생각하는 ‘모성의 길’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내게 강요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것은 나와 비슷한 곰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자신이 채 소화할 수 없는 의무들을 억지로 소화하는 착한 사람이 되어봤자,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건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런 내 상태는 솔직히 나만 알지 그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속 답답해지고 건강 해치면서까지 ‘타인들의 주문’에 춤추지 말라는 거다. 처음엔 훌륭한 엄마가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다가도,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면, 정말 악이 담긴 억울함만 배가 될 테니 말이다.
정말 한번뿐인 인생이다.
그렇기에 내가 ‘설득’을 당하기 이전 ‘나의 엄마 됨과 그 권리’를 끝없이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라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제대로 인지시키라는 거다. 그 논리는 디테일하고 또 단호해야 한다. 그 어떤 연봉으로도 책정할 수 없는 일을 내가 겪고 있으며, 그 일의 책임감이 장기적으로 막중하기에 비례해 내가 이렇게 나 자신을 가꾸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복감으로 전해질 수 있는지를 하나부터 열까지 열거하고 생색을 내라는 논리다.
왜냐하면 모성은 선천적인 것이 아닌,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