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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Mar 19. 2018

도대체 연애는 왜

05. 지가 뭔데 날 평가해

                                                          주제파악  

                               

                               도도한 곰녀는 하기 힘든 일, 특히 맘에도 안 드는 소개팅남이
                           이래라 저래라 지적질 할 때는 쌍욕 후련히 날리고 반사하고 싶은 일  


                                지가 어따대고 날 평가해?
                                                                                   꼰대 아저씨 같이 생겨가지고


                                   근데 말야...,

                                                  너는 그렇게 완벽해?



                                     /

                                  

                                   05.  

               "지가 뭔데 나를 평가해?"  


국어를 알면 주제를 알고 수학을 알면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는 우스개처럼 넘길 농담이지만 여기서는 정색을 좀 하고 이야기해야겠다. 우리 곰녀들에게 가장 부족한 건 의외로 ‘자기 파악’의 문제일 수 있을 테니까.  


여기서는 ‘고도도’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도도는 나보다 한 살 연하로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대학교 시절 알게 된 친구다. 20대 후반의 우울한 백수시절을 함께 보낸 그녀는 내 늦은 취업, 결혼에 이르기까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언제든 전화를 걸어 상담해주는 최고의 멘토Mentor이기도 했다. 또래답지 않은 냉철한 판단, 똑 떨어지는 조언을 주던 그녀는 구질구질한 연애로 내 발등을 찍고 있을 때 “언니, 쫌!” 하는 쓴 소리도 유쾌하게 말해줬으니까.  


하지만 뭐든 척척박사처럼 잘해낼 것 같은 그녀도 최근 자신의 연애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듯 했다 특히 서른 셋 이후 진출한 소개팅 시장에서는 본인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서 ‘좋은 척’ 하는 것이 어렵고 싫다는 게 가장 큰 이유.  


“전 가식 떠는 건 절대 못해요. 특히 맘에도 없는 남자한테는.

그리고 내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데, 꼰대같은 남자들을 비위까지 맞춰야겠어요?”  


                                   /


물론 이해는 한다. 누가 봐도 도도는 괜찮은 사람이고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내 바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여자들에겐 다정하다가도 소개팅 남자들에겐 유독 차갑고 박한 그녀이기도 했다. “띠디디딩~” 도도가 소개팅을 나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핸드폰. 그러면 그날은 나도 수능 치러 간 딸래미 기다리듯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다 전화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도도야, 오늘은 좀 어땠어?”

“언니, 말도 마요. 진짜 나 우울해 죽겠어.”


벌써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확 꺾였다.


“글쎄 내가 어떤 놈을 만났는데, 그 놈이 뭐라는지 알아요?

나보고 차라리 연기를 하라나 뭐라나. 내가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한다고 아주 대놓고 디스하던데?”

그리고 씩씩대며 이어진 그녀의 말.


“나쁜 X, 지가 뭔데 나를 평가해?”  


                                 /


얘기를 들어보니 화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남에서 잘나가는 전문직이라는 것 같던데 소개팅 자리에서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늙은 여자는 별볼일 없다, 여자는 다소곳해야 한다, 나아가 도도를 보고도 직설적이며 잘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기 좀 하셔야겠다’고 막말을 했다는 것. 그이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낯선 이와의 첫만남에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한다는 건 ‘나쁜 놈’이 맞았다. “그래, 미친X네, 살다 보니 별 꼴을 다 본다.” 그리고 울분이 터진 ‘도도’를 달래 참 찜찜하게 전화를 끊었다.  


막상 전화를 끊으니 나까지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소개팅이 ‘Blind Date’라지만 그 정도 배경에 그토록 개념 없는 말을 한다는 건 머리와 인성이 따로 노는 무개념 인간이 분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머리를 팅~하고 치는 것이 있었다. 그 나쁜 X의 말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무례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속에는 도도의 소개팅 트라우마를 끊을 수 있는 해법이 들어있었으니까.   


                                   /


‘브랜드 리뷰를 해보자’, 한마디로 이거다. ‘성공적 브랜드의 이름은 동사’란 말처럼 곰녀들에게도 우직한 직진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시키는 ‘동적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소개팅 시장은 자선시장이 아니니까. 오히려 3초 안에 외모나 인상으로 호감을 느끼고 내 눈앞의 여자에게 ‘나의 경제적 요소들 (밥, 커피, 데이트시간) 등을 내어줄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이해타산의 최고봉 자리가 아닌가.그러니 자존심에만 의거해 상대방이 나의 진가를 알아봐주길 바란다는 것은 야무진 꿈을 떠나 현실성 제로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쿨하게 인정하자는 거다.  


더불어 환경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도도가 20대에서 30대로 접어든 시기만큼 그녀를 능가할 쭉쭉빵빵 미녀들은 이미 시장에 차고 넘치게 되었다. 도도 역시 아직도 생기 가득한 레모네이드 같은 남자를 찾는데 우스갯소리로 60대까지 고운 여자만 찾는다는 남자들은 그 마음이 오죽할까. 그러니 도도에겐 20대 여자들의 특권인 새침데기 컨셉을 넘어, 보다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 재미없고 아저씨 같아 보이는 남자들에게 먼저 대화의 스킬을 발휘해보는 거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겠지만 참을 인 석자를 새기며 ‘나는 너그러운 여자다’라는 컨셉을 반복 훈련하다 보면 상대 남자도 어느덧 나에게 감화되는 순간이 온다. “어, 이 여자 처음엔 별 느낌이 없었는데 말하다 보니 편하고 말도 잘 통하네”로 시작해 “편안하다고만 느꼈는데 똑똑하고 당찬 부분도 있어. 참 매력적이야”의 내 진가까지 알아보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오게 된다는 것.    


                                  /


한마디로 ‘1.현실분석2. 컨셉 형성  내재화3.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시도해보자는것. 이것은 남자들에게 다가가는 진입 장벽을 스스로 낮춰, 나의 매력을 장기적으로 어필하자는 논리다. 그럼 혹시 아는가? 그 과정에서 당신도 그 남자의 진가를 알게 될지. 얼굴은 레모네이드가 아닐지언정 내가 발견한 레모네이드 같은 특성에 어느 날 반짝 하고 끌리게 될 수도. (물론 싹수가 없는 놈들은 절대 제외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노력을 해야 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애도 훈련이다. 비록 그 남자가 지금의 내 인연이 아닐지라도 반복된 훈련을 통해 변화된 컨셉을 내재해야 진짜 내 인연이 나타났을 때 상대를 감화시킬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나의 기본적 특성까지 부정하며 상대에게 모든 걸 맞추란 말은 아니다.   


‘똑똑하고 당찬 모습’을 직설로 내세우기보다는 우회적으로 드러내자. 표정과 어투에 포장을 입히고 당을 입혀 보다 유연하고 장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대가 다가오게 하라는 것. 다시 말해 ‘제발 나를 알아달라’가 아닌 ‘들어봐. 내 이런 모습을 들여다볼래?’ 하고 속삭여보라는 말이다. 참 하기 힘들겠지만 한번 권유해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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