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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Sep 04. 2019

04. 저기요, 임신은 제가 했거든요!

<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에피소드 04





아마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이 채 마르기도 전에 융단 폭격기처럼 쏟아지는 ‘임신에 대한 각종 조언들’을. 심지어 “내가 임신을 한 게 맞나?” 임신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에도 ‘기어코’ 듣게 될 것이다. ‘엄마라면 자고로 이렇게 해야지’라는 주변인들의 ‘묻지 마 참견’을.


생물학적으로 임신은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비로운 일이지만, 사회적으로 임신은 타인들의 참견에 본격적인 물꼬를 터 주는 일이다. 왜냐고?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부는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란 사실을. 그리고 그 간절한 심리를 ‘본인들 입맛대로’ 잘도 요리해 버린다.

 


제왕절개는 절대 안 된다고?


임신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나는 ‘출산 방식’에 대한 일장 훈계를 들었다. 진료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침을 튀기며 말한다. “전 제왕절개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자연분만을 하세요. 어머님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아기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난 좀 묘한 기분이 되었다. ‘제왕절개를 하는 것=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임신부’란 논리인가? 


하지만 난 자연분만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연분만 후 눈의 실핏줄까지 벌겋게 터진 친언니를 보고 제대로 겁을 먹었으니까. 그런 끔찍한 고통을 절대 엄마의 의무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 친정부모는 이런 내 태도를 문제 삼고 나섰다. 남편은 ‘제왕절개 산모, 출산 후 유방암 위험 2.8배’란 무시무시한 기사 링크를 보여주었고, 부모님은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연분만을 했는지에 대한 통계학적 수치를 내세웠다. 나는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강요인지 결혼을 앞둔 친구 P에게 호소했는데, P는 동의 대신 내게 새침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그게 뭐, 난 임신하면 수중분만을 할 건데?”


임신부는 ‘곧 쉬러 갈 사람’?


몇 달이 지나며 주변인들의 참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옆 자리 남자 과장은 말한다. “이 대리, 5개월 뒤면 출산 아닌가? 곧 쉬러 가서 좋겠네” 잠시 내 귀를 의심했지만, 그 말은 곧 메아리처럼 반복되며 사람을 두 번 보내버렸다. “그래, 세상 좋아졌지. 나 직장 초기 때엔 출산휴가도 눈치 보면서 썼어. 요즘 임신부들은 정말 편해졌다니까?” 앞자리에 앉은 여자 차장이 말한다. (저기, 과거에 저랑 같은 처지 아니셨나요? 세종대왕님도 권장한 출산휴가를 왜 21세기에 눈치를 보며 써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 나는 “임신부는 일을 대충 하지 않는다”를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내 배가 앞으로 퍼졌는지, 옆으로 퍼졌는지를 따지며 ‘임신부가 옷을 너무 잘 입고 다닌다’는 것까지 주위에서 지적질받고 있을 때 (아니, 임신부는 멋을 내도 문제인가), “배 나오고 근무 태도가 달라졌다”를 듣지 않기 위해 눈에 더 불을 켜고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나의 존재감을 ‘증명’ 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은 역시 상사의 몫이다. 영양제는 잘 챙겨 먹냐, 요즘 다크서클이 늘었다고 걱정해 주는 척하던 파트장은 은근슬쩍 나에게 못다 한 프로젝트들을 떠넘겨 버린다. “이번 기획서도 잘 부탁해. 엄마가 머리를 많이 써야 애가 똑똑해진대. 그리고 요즘 회사에서 근무 기강에 대해 강조하는 거 알지? 임신했다고 너무 쉬엄쉬엄 하지 말고”  


우주처럼 많은 사람들이 ‘내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


출산이 점점 다가오며 배는 남산처럼 부풀어올랐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걸을 때는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고, 어기적 어기적 힘을 내 걸어가면 아이가 배 속에서 발을 마구 굴러 정말 밑이(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부분이 맞다) 빠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잘은 몰라도, 이 상태는 햄버거를 몇백 개 먹고 직접 비만의 삶을 실험한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와 아주 흡사할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배 속에 애를 품어서 땀이 나는 것이고, 그 쪽 은배 속에 지방 덩어리를 품어서 열이 나는 거겠지.


시부모님은 “엄마의 태교가 아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며 임신부에게 좋은 먹거리, 클래식 음악 정보를 수시로 보내셨다. 처음엔 너무 감사했는데, 언젠가 시댁에 가서 “가끔 커피를 마신다”라고 하니 정말 흠칫 놀라 날 쳐다보셨다. (“네가 감히 우리 손주에게 그런 음식을 먹여?”의 느낌)


출산 직전엔 육아박람회를 다녀왔다. 그런데 ‘한 번의 방문에도 신상이 털린 것인지’ 각종 학습지, 교구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그들의 맥락은 참 한결같았다. “똑똑한 아이는 엄마의 노력으로 만들어야죠” 그 ‘똑똑한 아이’가 되려면 조리원 환경도 ‘돈을 지를수록’ 좋은 모양이었다. 조리원 투어라는 것을 했는데 조리 원장이 말한다. “1층은 250, 2층은 300, 3층은 450만 원입니다. 자 몇 층을 선택하시겠어요?” 그녀의 얼굴엔 돈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의 계급을 나누는 상술이라니. (에잇, 퉤!)  


출산의 순간에도 ‘막장 드라마’가 연출된다


드디어 출산 D-day가 왔다. 가족들과 고기를 먹다 양수가 터졌고 얼떨결에 병원에 실려갔다. 생각보다 배는 많이 아팠다. 처음엔 똑똑 정도의 아픔이었는데, 나중에는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남편 머리카락을 죄다 뽑아버리고 싶은 상태가 되었다. 빨리 무통 주사를 놓아주세요” 하지만 간호사는 아직 자궁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며 더 참으라고 한다. 난 약이 올랐다. “그냥 빨리 놓으란 말에요!”


그렇게 무통 주사를 맞고도 고통은 더 커져갔다. 결국엔 제왕절개를 하겠다고 말하니 또 간호사가 몇 번이고 만류한다. “제발, 어머님의 힘을 보여주세요!” 이쯤 되면 정말 뚜껑이 열리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이고 나발이고, 그냥 수술해주세요! 지금 당장!” 그렇게 난 진통 20시간 끝에 애를 낳았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시간까지 다 기억한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자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다. “드디어, 네가 엄마가 되었어!”라며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었지만, 난 하나도 실감 나지 않았다. ‘그 주름투성이 애가 제 아이가 맞나요? 근데 이럴 땐 괜찮냐고 먼저 물어 봐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발 내 인생에서 꺼지라’고 말하자


<임신! 간단한 일이 아니었군>이란 책을 쓴 프랑스 작가 마드무아젤 카롤린은 말한다. “다들 임신이 ‘마법 같은 순간’이고 기쁜 일로 말하던데, 솔직히 제게 임신은 당혹감이자 각종 제약의 연속이었어요”. 


나는 이 일면식도 없는 외국 작가의 핸드폰 번호를 알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쩐지 그녀와는 몇 시간이고 진솔하게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Call me!) 정말이지 임신이란 경험은 “나 정말 임신 맞아?”의 당혹스러움으로 시작해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의 짜증을 연속으로 겪게 하는 사건이었니까. 손목이 시큰거리는 산모에게 애를 안으라는 간호사, 분유 값을 아끼라며 모유수유를 권하는 친척들. 첫째 돌잔치에서 갑자기 둘째 임신 계획을 지정해주는 어르신들까지. 그들은 임신, 출산의 주요 순간마다 내게 좀비처럼 들러붙어 혼을 쏙 빼놓곤 했지.


나는 공감을 가장한 그들의 오만함과 무례함이 나는 너무 지겹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보게 된 주위의 그 기쁜 얼굴을 감안하더라도, 그게 나에 대한 애정의 다른 표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참견들이 100% 미화되기엔 근본적인 공감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임신 부니까 이렇게”, “욕먹지 않게 이렇게”의 논리만 산을 쌓았지, “지금 심정이 어때?”를 물어 준 사람은 참 드물었으니까.


그래서 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할 ‘미래의 엄마’들이 이 ‘불편한참견러’들에게 더 주체적이고 솔직해지길 원한다. 애를 낳은 지 다섯 시간 만에 완벽한 모습으로 (풀 메이크업에 하이힐) 포토라인에선 저 영국의 케이트 왕세손비 말고. “다들 내 인생에서 꺼져 줘”를 외치는 평범하지만 되바라진 이들을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


참견에 곁을 내어주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참견에 근거를 만들어주면 그게 조언인 줄 안다. 혹시라도 이 지긋지긋한 참견에 몸서리치고 있는 당신. 있는 힘껏 외쳐보자. 


“저기요, 임신은 제가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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