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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Mar 24. 2018

그 남자의 복근을 가질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에 대한 믿음의 복근이다 



<출처_JTBC 홈페이지>


"아, 제발 쫌!"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몹시 거슬린다. 왜 하필 내 남편은 이 소중한 시간에 무언가를 꼭 먹어야 할까. 온 정신을 저곳에 집중해야 하는데.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는데. 그분의 촉촉한 눈빛, 품격 있는 말투, 그리고 양복인지 갑옷인지 구분되지 않는 볼륨감 있는 슈트발까지. 이렇게 TV 속 그분은 내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 놓으셨다. 바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티>의 주인공 지진희 님이 그분. 특히 마음이 괴로운 듯, 미간에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에선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온다. "안 돼요. 진희 님 슬퍼하지 마세요!" 때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남편은 이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찬다. 


"왜, 지진희랑 결혼이라도 하게?" 


                                             /


그러고 보니 결혼까진 모르겠지만, 그를 만날 기회는 꽤 많았다. 대학 새내기 시절, 지진희 님의 어머님은 학교 앞에서 분식점을 운영하셨다. 학생들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볶음밥류를 주로 팔았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오므라이스를 참 좋아했다. 맛있기도 했지만 양이 참 행복하게 푸짐해서. 어머님은 가끔 말씀하셨다. "우리 진희가 가끔 여기 와. 원하면 내가 사인도 받아줄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죄송하지만 진희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갓 드라마에 데뷔한 신입배우, 그것도 교과서를 읽는 듯한 발성에 답답한 머리스타일만 인상에 남았을 뿐. 그러니 구태여 그의 사인을 직접 요청해 간직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면 사인도 한 열 장 받고 찐한 포옹도 해달라고 요청할 텐데" 얼마 전 친구와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쓱 웃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넌 안 돼. 넌 원석을 보는 눈이 없어" 그리고 요즘 자신은 우주신에 귀의했다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우리는 믿음이 있어야 해. 너나 나나,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거다. 정신 차려!"


                                               /


우주신은 뭐며, 믿음은 또 무슨 얘기인가. 어쨌든 그녀가 건네고 간 책 한 권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제목이 꽤 흥미롭다. <2억 빚을 진 내게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 고이케 히로시라는 일본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실제 2억 원이란 큰 빚을 지고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 저자가 '우주신'을 만나 9년 만에 빚을 청산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우주신'이란 다소 황당한 대상이 나오는 부분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줄거리의 요체는 이거다. 목표를 향한 구체적 화법과 실천. 가령 '빚을 청산하요 싶어요'가 아닌, '나는 9년 만에 빚을 청산했습니다'의 과거완료형 어법과 그를 향한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우주신이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 


하지만 내게 저자보다 더 임팩트를 남긴 건, 빚이 있는 상황에서도 그와 결혼한 그의 아내였다. 사랑이 국경도 초월한다고 하지만, 자영업자에 사채빚까지 쓴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건 사실 굉장한 결심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책 속의 그녀는 그를 타박하는 대신 끝없는 믿음을 준다. "당신은 잘할 수 있어요. 나도 당신 덕분에 잘 해 낼 수 있을 거예요"라고. 그리고 그 맹신적인 믿음은 실제 그 거대한 빚의 청산을 실현해준다.


불완전한 인간을 믿고 기다려주는 '믿음'. 어쩌면 우주신을 감동시킨 건 스스로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사랑하는 이의 한결같은 격려가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늘 불완전한 인간들과 마주한다. 20대 초반의 나는 '어디서 이런 분들만 나왔을까'하는 꺼벙해 보이는 남자들을 흘려보냈으며, 20대 후반의 나는 '내가 이런 상사와 일하자고 회사 다니는 줄 알아?'라며 은근히 그들을 비웃었다. 30대에 접어들어서는 '이제 이 사람과의 인연은 효용가치가 없어'라며 가끔씩 내 인간관계의 정리를 시도하기도 했다. 완벽해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서 그 어떤 가치도 발견해내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어설펐던 그 남자들은 누가 봐도 멋진 사회인으로 성장했으며,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회사를 떠난 그 상사는 한 중소기업의 CEO가 되었다. 효용 관계를 운운하며 내 핸드폰에서 정리된 그 혹은 그녀는 이젠 내가 절실해도 부끄러움에 연락을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렇듯 한때 내가 '불완전한 사람'으로 평가했던 그들은 누가 봐도 '완전한 사람들'로 변신해가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믿음을 지운 사이, 다른 누군가 그 불완전함을 감싸줬으며, 그 강력한 믿음이 그들을 누가 봐도 흠모할 만한 사람들로 탈바꿈하게 해 주었다는 것.


                                                /


미스티의 주제가가 흐른다. "그 아픈 상처가 날 울려도, 그 아픔이 날 저며와도, 내 안에 잠든 너의 기억은 사랑이었다". 비단 드라마 속에서 김남주를 지키는 지진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긴 무명시절을 이겨내고 브라운관의 옴므파탈로 거듭난 지진희 님. 그 긴 무명시절 동안 실제 함께 했다는 아내 수연 씨와의 리얼 스토리이기도 하고, 내 주변을 떠나 화려하게 나비로 성장한 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TV 속 모든 훈남들을 떨치고 유독 지진희 님이 마음에 밟힌 이유는, 그를 둘러싼 순애보 같은 이야기가 드라마에도 묘하게 결합되어서, 그리고 결코 그렇지 못했던 나의 과거가 후회처럼 함께 섞여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현실은 앞으로도 크게 변함없을 것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은 계속 내 주변을 맴돌 것이며,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이미 완성된 누군가와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과거에 빠져 있었던 '무언가'를 깨닫게 된 지금, 그 '믿음'이란 안목을 조금 더 실천해보고자 한다. 친구의 말처럼 지진희 님의 복근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지만, 지진희가 아닌 내 남자의 복근은 믿음으로 트라이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니, 내 삶의 모든 불완전한 이들을 

'믿음'이란 복근으로 껴안아 볼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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