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요거트 케잌
그냥 막 하는 베이킹
내가 베이킹을 막(?) 하게 된 경위는 아무래도 홈베이킹이 흔한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서이다. 처음에 본인이 구웠다는 케잌을 먹고 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모양은 엉망인데다가 너무 달고 느끼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알고 보니 시판 믹스로 구운 케잌이었다. 얘들은 시판 믹스로 구운 것도 자기가 구웠다면서 자랑스러워하는구나... 때마다 김치를 담그고 된장을 뜨던 집에서 자란 나로서는 너무 놀라운,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운이 좋으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케잌 레시피를 전수받는 경험을 한다. 효모를 넣고 발효시켜서 만드는 식사용 빵들보다는 아무래도 베이킹파우더 등을 넣고 구운 간식/디저트용 빵들이 대부분인데, 레시피도 잊으려야 잊을 수 없게 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이킹이라는 행위가 매우 과학적이어서 각 재료의 1g의 차이로 망칠 수 있다고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의문 투성이었고, 친구들은 늘 이렇게 얘기했다. 별거 없어, 그냥 하면 돼.
그런 레시피들엔 이들이 꼬마 때부터 부엌에서 가족들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들이 담겨있다. 의자 위에 올라가 밀가루 반죽을 만지고, 부엌이 분명 전쟁터가 되었을 그들의 어린 날을 상상하면 마치 엄마 옆에 꼭 붙어 김밥 꽁다리를 얻어먹거나, 갓 튀긴 도너츠를 제일 먼저 맛보며 뿌듯해하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이런 경험들은 결국 한국말로 쓰여있는 레시피도 따라 하지도 못하는 바보 혹은 자유인 그 어느 중간 즈음의 김묘한을 만들었고, 그 김묘한은 현재 본인도 따라 하지 못하는 레시피를 정리하고 있는 기묘한 매주를 맞이하고 있다.
가장 쉽고 인상적이었던 레시피 중 하나가 이 요거트 케잌인데, 내가 배운 레시피는 1:1:2:3(요거트:오일:설탕:밀가루의 비율-컵으로 계량)... 너무 달아서 숨쉬기도 곤란했던, 하지만 이게 말이 될까 싶어 잊기 힘들었던 이 레시피를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구운 뒤 갖게 된 나만의 레시피를 공유한다. 설탕 1:오일 1:요거트 2:밀가루 3 정도의 비율(g으로 따짐)로 변형된 기묘한 요거트 케잌. 일단 요거트를 만들자.
<기묘한 요거트 케잌>
재료: 달걀 3개, 유기농 비정제 사탕수수 원당 110g, 홈메이드 요거트 250g, 유기농 식물성 오일 110g, 유기농 우리밀 밀가루 350g, 베이킹파우더 5g, 소금 한 꼬집, 유기농 레몬필 1ts, 바닐라빈 1개, 그랑 마르니에 1 1/2ts
+ 건과일이나 치즈, 견과류 등을 더해도 좋다.
1. 오븐은 190도에 예열하고 틀에 오일이나 버터를 발라 준비한다.
2. 달걀을 풀면서 두 배 정도의 부피로 만든다.
3. 원당을 1에 넣고 섞는다.
4. 요거트와 오일, 그랑 마르니에를 넣고 섞는다.
5.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소금은 체 친다.
6. 바닐라빈은 씨만 긁어 레몬필과 함께 3에 섞는다.
7. 5에 4를 넣고 섞는다.
8. 틀에 7을 넣고 중간에 칼집을 내어 190도에서 37분 굽는다. (오븐 사양에 따라 180도 40분)
- 요거트, 잼 등을 더해 먹는다.
기묘한 와인 페어링: 달걀이 많이 들어가는 베이킹을 할 때는 꼭 그랑 마르니에를 자주 사용한다. 오렌지 증류 원액과 꼬냑을 블렌딩한 오렌지 큐라소 중 최상급으로 꼽히는 그랑 마르니에는 조금만 사용해도 오렌지 특유의 시트러시한 상큼함과 달콤함, 꼬냑의 풍미가 더해져 달걀이나 유제품의 잡내를 잡아주는 데 출중한 킥의 재료이다. 기묘한 요거트 케잌에도 조금의 그랑 마르니에를 쓴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되지만, 넣었을 때의 그 미묘한 차이는 큰 다름을 선사한다. 그랑 마르니에가 꼬냑 베이스이므로 기묘한 요거트 케잌과 꼬냑의 페어링은 아주 훌륭하다. 추운 겨울날 따뜻하게 중탕한 꼬냑을 홀짝이며 먹는 요거트 케잌의 맛은 아주 근사하다. 꼬냑이 너무 독하다고 느껴진다면 헝가리의 대표적인 디저트 와인이자 귀부 와인인 토카이를 추천한다. 일반적인 단맛을 뛰어넘는 풍부한 과실의 달콤함의 극치인 토카이와 페어링 한다면 아주 환상적인 디저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