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오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킴 Dec 26. 2020

그래, 외계인이 맞아...

믿기지 않겠지만/갈등이나/고통 없이/평탄하게/살아가는 사람들이/정말 있다./그들은 잘 차려입고/잘 먹고, 잘 잔다./그리고/가정생활에/만족한다./슬픔에 잠길 때도/있지만/대체로/마음이 평안하고/가끔은 끝내주게/행복하기까지 하다./죽을 때도 마찬가지라./대개 자다가 죽는 것으로/수월하게 세상을 마감한다.
믿기지/않겠지만/그런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
나는/그런 부류는 아니다./천만에, 아니고말고./나는 그런 부류와/거리가 멀어도/한참 멀지만/그들은 엄연히/존재한다.
나는 여기/존재하고.


이 시는 찰스 부코스키(1920.8.16~1994.3.9) [창작 수업]에 나오는 시다. 하지만 내가 부코스키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책은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이었다. 지금도 그의 너무도 솔직한 단상들은 한 번씩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런데 어제는 와인을 마시면서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와인이 찰스를 소환한 성탄의 밤...


이 시의 압권은 아무래도 제목이지 싶다. ‘정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이런 마음으로 시를 다 읽고 나중에 제목을 보게 된 케이스랄까. 제목이 무려 [외계인들]... 이 제목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정말 허탈하게 웃었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왠지 위안이 됐었던 기억.  


참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우리는 아주 엉뚱한 데서 위로받기도 한다.

인간의 나약함일까? 아니다. 그저 우리 삶이 그런 거다.

저런 완벽한 생은 없다고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게다. 그 진심이 우리를 위로한 거고.

그런 게 아니었을까?


우리 생이라는 게 다 나름의 십자가 하나씩 지고 가는 여정이라는 걸 확인받게 될 때 나의 고단함을 조금은 덜 억울해해도 되겠다 싶은 거...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네. 다 그렇게 사네... 그렇구나. 다 똑같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 그런 거다.

찰스가 시를 통해 그려본 저 완벽한 삶을 사는 자들은 여기엔 진정 없을 테니... 있다면 외계인이 맞을 게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눈 온 날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