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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킴 Jan 07. 2021

게으른 나를 위한 변명

지난해 12월 말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31일엔 급기야 앓아눕고 말았다. 덕분에 12시를 기해 모두가 외치는 카운트다운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렇게 2021년을 맞아서 그런 건지 유난히 새해라는 느낌이 없다. 게다가 연휴 내내 이불 속에만 누워있었으니 더 말해서 뭣하리.


이제야 조금씩 기운 차리면서 그동안의 내 모습을 돌아보니 새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요즘이 너무도 정체되어 있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다 새해 계획이다 뭐다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은데 나의 시간만 멈춰 서 있는 것 같다.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버트란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다시 펴고 싶은 걸 보니. 이 제목만으로도 요 며칠 내 생활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만 같아 위안이 된다.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 시니컬하게 사회에 던지는 철학자의 15개 충고를 모아놓은 이 에세이가 말이다.


70년 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우리 현대사회의 핵심과도 고스란히 연결되기 때문이리라. 러셀은 이 에세이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과잉노동과 그로 인한 인간소외현상에 대해 냉철하게 진단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다.


근면은 역사 이래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강요해온 덕목이며, 부지런해야 한다는 강박은 노예근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러셀은 쉼도 없이 부지런히 일만 하면 생산초과와 가격하락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근로자들은 실직하게 된다며 하루 4시간씩만 일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돈 쓸 여유시간이 생기면서 소비가 일어나고 그것은 또 다른 생산의 니즈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탄은  게으른 손이 저지를 해악을 찾아낸다 말을 듣고 자라면서 열심히 일만 하게 되는 양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제 산업기술의 발달로 인해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여도 되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했다. 근로가 미덕인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엄청난 해악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러셀에게 있어 게으름이란 생산적인 여가활동을 의미한다. 인간에게는 노동 이외에도 주체적 사고를   있게 하는 생산적인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OECD 평균보다 278시간이나 많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을 자각하고 다시 보니 이 에세이가 일에만 매몰되어 내가 누구인지도 잊은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러셀이 전하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놓지 말라'는 조언처럼 느껴진다. 여가는 문명의 필수적 요소다. 근로의무를 부과하는 자본가만이 노동의 가치를 찬양한다. 하지만 노동이 진정 가치 있기 위해서는 노동을 통해 우리가 여가를 즐기며 좀 더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타성에 젖어 게으름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 지금 러셀을 끌어들이는 나의 비루함에 헛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솔직한 심정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제안한 이상적인 노동양태가 모든 이들의 삶속에서 실현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러셀이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했던 독점 자본가 비판과 정치권력의 독재화 반대와 같은 더 깊은 사유들은 차치하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마음에 담으려 한다. 매일 성실하게 일은 하되 최소한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자문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오늘 내가 느끼는 이  무력감과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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