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오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킴 Mar 01. 2021

비 오는 삼일절 아침...




3월의 첫날 아침...

귓가에 들려오는 빗소리가 참 좋다.

그 소리를 더 잘 들으려 창가 내 책상 앞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오늘이 삼일절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보고 그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새벽까지 읽었던 알제리 출신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사유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랑시에르의 존재론에서 감각적인 것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늘 보고 듣는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미학이라는 개념을 독특하게 정의한다.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제대로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우리가 매일 보고 듣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배제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없는가? 그는 공통의 세계가 감성을 분할한다고 말한다. 즉 기존 질서의 힘 있는 자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 이런 공통의 분할로 나타나는 포섭과 배제 사이에서 자본주의가 배제시키는 건 늘 돈 없는 자들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말로 바꾸면 바로 ‘몫 없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가 정해놓은 감성의 분할이다. 이러한 기존의 구조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미학적인 것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아방가르드 예술과 같이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을 통하여 기존 사회체제의 감성적인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질적인 것으로 미학적 단계를 설명한다.  


그의 사유를 따라가며 우리나라에 각별한 날인 오늘 삼일절에 나는 정치를 함께 떠올려본다. 과연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


이 사회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다시 중심부로 끌어와서 그들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자들이 좋은 정치인이 아닐까. 기존 질서의 강화가 아니라 배제된 자들의 감성을 공동체 안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이 사회를 변혁시켜 나가는 것, 그래서 그들이 역사의 주체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좋은 정치가 아닐까. 문득 그의 이 감성론이 왠지 변화에 열려있는 그런 존재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위의 공동체, 분유(나눔), 미학적 공동체, 감각적 공동체, 감성의 분할, 정치...


이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게 되면 될수록 이 철학자가 더 많이 궁금해졌다.

기회가 되면 동양철학과도 비교해보고 싶고,

그가 미학이라고 말하는 정치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를

지금 현실 정치에 적용해서 실천하면 참 좋겠다는 그런 생각.


랑시에르의 '평등은 이 세계에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에 잠시 슬퍼졌지만

그 평등은 언제나 우리 의식을 일깨우는 개념이라는 말에 또다시 위안을 받는다.


결코 완전한 평등에 가 닿을 순 없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을 되뇌고 이야기함으로써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너무도 당연시하며 살아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볼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일단 변화의 시작이   있다.


그렇게 우리 개개인이 조금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식적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 102년 전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러져가신 분들의 뜻을 받드는 길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님은 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