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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킴 Mar 30. 2021

시인 옥봉, 그대를 기억하리다.



내게는 시인이 되고픈 페친이 있다. 시를 향한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면서 응원하게 됐다. 얼마 전 올라온 그녀의 포스팅, 감이 왔다. ‘상처 받으셨구나.’ 그녀가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시를 썼으면 싶다. 내 맘이 쓰이는 이유이리라.


이 집콕족에게 바깥세상을 전해오는 그녀에게 계속 파이팅을 외쳤다. 어느 날, 시 한 편이 ‘까똑’한다. ‘모방 시 짓기’를 했단다. 나도 따라 흉내 내 본다. 그녀가 쓴 시에 대한 느낌도 나눴다.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그림 한 장이 또 ‘까똑’. ‘명화 시 쓰기’란다. 이미지를 시로 표현하는 거라나.


같이 하는 친구가 있으면 힘내시려나(敎學相長)? 그래서 또 썼다. 유아 수준의 문자 나열이면 어떤가. 그녀가 행복한 시 쓰기를 한다면야. 이렇게 시와의 ‘어쩌다 데이트’ 와중에 조선의 시인 이옥봉을 만났다. 진짜가 나타났다(쥐구멍 어디??).


장정희 작가님의 소설 [옥봉]이다.  글을 꼼꼼히 읽어주시고 마음 나눠주시는 따뜻한 .  느낌이  맞았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장착한 문체에서 나는 이미 샘을 만난 것도 같다.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그들의 전유물이던 시 짓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옥봉은 어려서부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낱말 ‘옥봉(玉峰)’으로 자신의 이름을 짓더니 배필도 스스로 선택한 당찬 사람. 거기에 딸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아버지라니…‘찐’ 사랑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옥봉의 문재(文才)는 축복 아닌 저주. 그 기구한 운명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고한 자를 살리고픈 간절함으로 지은 시 한 편으로 인해 그녀는 결국…


그 오래전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실존 인물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현재에 부활시킨 작가님이 참 고맙다. 시는 ‘자신의 존재 증명이자 여자로, 서녀로, 소실로 살아야 했던 생의 전부를 내건 발언이요, 항변이며 싸움이었노라’ 말하는 그녀를 우리가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시가 잉태되는 시간은 오직 시인의 침묵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또 다른 세계다. 그 침묵은 고독이요, 밤이다. 블랑쇼의 말처럼 시인의 죽음과도 같은 밤을 통해 탄생한 한 편의 시가 내게로 왔다. 묵향 가득한 시와 함께 하는 시간. 내 눈은 한시를 해석하지만 머리로는 일필휘지 하는 옥봉의 고아한 자태를 그린다. 내 오래도록 그대를 기억하리다.


여성으로서 21세기를 살아간다는 게 새삼 고마워졌다. 옥봉이 내 벗에게 말 걸어오는 것 같다.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그 길 위에 섰으니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고. 그 끝은 상정하지 말고 여정 자체를 즐기라고. 그거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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