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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킴 Jun 07. 2021

다시...

저 파란 하늘을 봐~


나의 동굴은 생각보다 깊고 어두웠다. 그리고 아주 길었다. 걸어도 걸어도 출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그렇게...


3년 전, 독일에서 돌아와 칩거하기 시작한 동굴 속 나의 삶은 어둠에 잠식당한 채 빛을 잃었다. 살 수도 없고 죽음만 오롯이 남은 그 절망으로 달려가는 힘에 기대어 내 죽음의 형식에 대한 실존적 판단이 필요했다. 나는 그 막연한 두려움에 패배한 나의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했던 나의 간단없는 노력들이 무색하게도 점점 심연 속으로 침잠할 뿐 내일은 없었다. 하루하루 깊어가는 우울의 늪 속에서 죄책감도 함께 두터워져만 갔다. 내가 외면하는 세상은 외려 자꾸 두 팔 벌려 나를 불러주었기에...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손길들을 피해 벼랑 끝으로 내달릴수록 내 마음은 또 하나의 가시밭길이었다. 


‘내 마음이야, 들어봐’라는 메시지와 함께 도착한 양동근의 노래 ‘어깨’가 나를 울렸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면 이런 마음일까? 그 진심이 내 심장을 건드렸다. 


다시 살아야 할까 보다. 이렇게 나를 가만 놔주지 않는 저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더는 못 하겠다. 지인들에 대한 죄책감이 내 안의 깊은 슬픔을 이겨버린 것일까. 내가 뭐라고... 내가 뭔데 이렇게까지... 


응답하지 않는 후배에게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 선배들과 깜깜무소식의 언니가 궁금한 동생들, 밥 챙겨 먹을 리 없는 나를 먹이겠다고 멀리서 주문 배달시켜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늘 따뜻한 눈빛으로 샘을 바라봐주는 학생들이 있었다. 군 입대하며 호신용 가스 스프레이를 선물하던 둘째의 엄마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듬직한 혀기와 미니가 있었다. 그리고 그 벼랑 끝에는 이 막내딸의 행복을 바라는 눈물겨운 부모님이 계셨다.  


너무도 많은 고마운 얼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다. 죽고 싶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이거겠다 싶었다. 반응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주는 것, 그러면 귀찮아서라도 또 미안해서라도 응답하겠구나. 누군가는 그렇게 다시 살아질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늘 문득, 어딘가에 숨어서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귀찮게 안부를 묻고 싶어 졌다. 기꺼이 달려가 내 어깨를 빌려주고 싶어 졌다. 내 손 내밀어 함께 걸어보고 싶어 졌다. 파란 하늘 올려다보며 나뭇가지에 이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렇게 나란히 앞을 향해 걷고 싶어 졌다. 


내 상실감과 슬픔을,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가슴으로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나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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