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보는 재미있는 고사성어 이야기
‘거두절미(去頭截尾)’, 이 사자성어를 이루는 4개의 한자들을 해체해서 나열해 보면 이렇다. 갈 거(去), 머리 두(頭), 끊을 절(截), 꼬리 미(尾)… 여기서 ‘갈 거(去)’자는 ‘가다’가 아닌 ‘제거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이 한자에 기반해서 문자적 해석만 먼저 해보자면, ‘거두(去頭)’는 ‘머리를 제거하다’고, ‘절미(截尾)’는 ‘꼬리를 끊다’이다. 다시 이 둘을 합체하면 ‘머리와 꼬리를 잘라버림’이렷다. 그러니까 이 성어는 ‘앞뒤의 잔사설을 빼놓고 요점만을 말한다’는 뜻이요, ‘앞뒤를 생략(省略)하고 본론(本論)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즉 불필요한 부분은 다 제거하고 중요한 요점만을 간추려 말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인 거다.
핵심이 되는 요소만 골라 짧고 명확하게 뜻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만큼 효과적인 말도 없으리라. 쓸데없는 것은 다 버리고 핵심만 말하겠다는 이 취지야 나무랄 게 없는데도, 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이유는 뭘까?
워낙 ‘빨리빨리’가 미덕인 작금의 사회에서 혹여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할라치면 중간에 훅 들어와 상대방의 말허리를 끊으면서 던지는 말이 있다.
“그니까,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말하라고!”
과거에 비해 인내심이 사라진 요즘, 누군가의 말을 진득하게 들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영화 한 편 앉아서 끝까지 보는 것도 힘들단다. 시리즈로 몇 편을 연속해서 봐야 하는 드라마는 또 어떻고. 그러니 유튜브에 잘 요약된 짧은 영상들을 찾아 소비하는 시대인 거다. 그조차도 길다며 수십 초짜리 쇼츠 영상이나 릴스, 틱톡 등 단순하고 감각적인 영상에 탐닉하는 게 이 초고속 인터넷 시대의 문화가 된 지 오래다.
‘초연결 사회’를 실현 중인 5G 시대, 속도에 대한 강박으로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이제는 말만으로도 많은 게 해결되는 음성인식 AI를 친구 삼아 살아간다. 하지만, 아날로그 세대의 낭만이 사라져 간다고 해서 슬퍼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스마트한 세상을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제 아무리 최첨단의 디지털 기반 세상에서 산다 해도 우리 인간이 아날로그적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그로 인한 위험과 불안은 증대되는데, 그 위험사회를 극복하는 수단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적 소통임을 강조한다. 역설적이게도 기술발전도 결국은 아날로그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디에 애정을 쏟느냐의 문제이지 않을까. 우리가 정신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것은 영원히 아날로그로 남을 것이므로.
오늘의 사자성어 ‘거두절미’를 소개하려다 나도 모르게 깨어난 아날로그 감성에 젖는 시간, 오늘과는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수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말없이 건네는 한 마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