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0

by 류류류

어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심장이 아리고 눈물이 계속 나서 월요일 출근이 걱정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월요일 아침 눈은 알람 전에 개운하게 떠졌고(물론 눈은 부어있었지만),

사무실에 앉아 차분하게 글을 쓰고 있다.


어제 새벽에 마지막으로 본 유튜브에서 하루치의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5년, 10년 주기의 목적지를 가져야만 그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다던 지 등을 듣고,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기부여보다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에 불과했지만, 무튼.)


3년 5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의 연애였다.

그 대부분은 장거리 연애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좋고, 좋지 않은 추억을 쌓아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사람이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되기를 바랬고,

그 사람은 내가 감정적으로 안정되길 바랬다.

그렇게 서로의 불안정에 의구심을 가졌고 그로 인해 서로 지쳐버린 것 같다.


그 이전의 헤어짐의 위기와는 달리,

차분하게 비가 오던 일요일 저녁에 같이 라면을 먹고,

내가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짐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적어도 끝에 차분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뭔가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마음을 적셨다.

좋은 사람이기에. 아직까지도 밉지 않은 사람이기에.

더 미안해졌다.


그 사람이 주는 사랑만큼 내가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사람에 비춰보면 나는 참 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그만큼 용감하지 못하고, 그만큼 따뜻하지 못하고,

그만큼 이타적이지 못하고, 그만큼 헌신적이지 못했던 내 모습이 싫었고,

그에 반해 남들 의견에 잘 휘둘리고, 속물이며, 확신이 없으며,

그래서 믿음도 부족했던 내 모습이 쨍한 햇살아래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를 괴롭혔다.


그러고 보면 회사생활도 비슷한 것 같다.

5년째 다니고 있는 기업에서 처음의 내 모습과는 다르게 최소한의 말만 하며,

조용히 시간이 가기를, 눈에 띄지 않기를, 그냥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하기를 바라는 내 모습이

낮에는 잠을 자는 바퀴벌레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끼고 있었던 선물 받은 커플 링을 뺀 자국이 꽤 선명하다.


나를 기억에서 지우지 말라던 그 사람의 눈물에 마음이 또 아릿거린다.

이제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함에 절망하고 안타까워하던 그 사람이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

이별 그다음 날이라 그런지 회사에서 눈물이 난다.

그래서 아무도 신경도 안 쓰는데 일부러 인공눈물을 꺼내두었다.

혹시나 변명할 일이 생길까 봐.


원격근무 스타트업 회사에 2주 전에 이력서를 날렸었는데,

그 회사 CEO가 LinkedIn에서 나에게 친구 추가 요청을 했다.

그 사람과 함께 그리던 미래를 위해 준비했던 과정이었는데.


지금 당장은 그냥 회사에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방에서 울고 일어나서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하루를 풀로 보냈을 테니까.

그렇게 글로 적어지지 않던 내 마음이 복잡했던 내 속을 글로 풀어보려고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어제 봤던 동영상에서 배운 것처럼 5년 뒤 내 모습을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해 매일매일 소소하게 해야 하는 일을 조금씩 그러나 꾸준하게 지속하려고 한다.

이제는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생각을 바꾸니 사무직인 회사에서도 충분히 시간을 내서 나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으므로.

예전엔 그냥 8시간이 너무 지루했던 것 같다.

바빴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닌.


그냥 보고에 보고를 위해 바쁜듯한 모든 것이 쓸데없는 느낌.

허무주의에 빠진 것일까? 정말 중요한 일은 급하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그냥 계속해서 회사에서 내일과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하루하루 지내보려고 한다.


오늘 조용히, 무사히 지나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