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추구미가 아닐 때. 3

by 류류류

한동안 물밀듯이 들어오던 소개와, 새로운 분들과의 만남이 언제 그랬냐는 듯 증발해 버린 것처럼 다 사라지고, 후련하면서도 헛헛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결혼하고 아들 낳고 살고 있다는 사촌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결혼식 때 보고 그 후로 처음 연락이 오는 것이니 4,5년 만인 것 같다.


반갑다며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나서 언니가 하는 말은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얘기였다.


우선 나를 생각해 준 언니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는, 언니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뭐 그냥 디테일 묻지 않고 그냥 잘 만나고 오겠다고 했다.


언니는 자기 회사 동료의 친구의 지인이라며,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고,

변호사에 집안도 잘 산다고 하며, 그 사람 키가 187이라고 했다.


사실 이성적으로는 첫 번째, 두 번째 조건이 훨씬 더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그 순간 본능적으로 187 와.. 좋네라고 해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신원미상의 그 사람과 내가 걸어가는 그림체를 혼자 그려보았다.


그 사람이 찾고 있는 사람의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눈이 큰 사람.

뭐 눈이 얼마나 큰 사람을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 첫마디는 나는 키는 큰데... 였다.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 주고는 내심 기대를 했다. 지금까지 잘 안된 게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인가! 하고 나 혼자 희망적인 상상의 회로를 돌려, 정말 괜찮겠다... 하며 헛헛한 마음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런걸 보면 감정은 일어났다 늘 사라지는 것 같다. 마치 사라질려고 올라오는 것 처럼.


그다음 날 언니가 연락이 와서는 그 사람의 추구미가 아니라고 전해주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타인의 추구미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 이성적으로는 모두가 원하는 이상형이 있기에 거기에 맞지 않을 수 있는 건 높은 확률로 당연한 건데 괜히 아쉬운 감정이 올라왔다.


자연스러운 현상과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은살이 충분히 배겼다 생각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이 모든 감정을 호불호 없이 받아들이고 소화시켜 잘 배출하는 것 밖엔.


사회적으로도, 나를 낳아준 엄마까지도 30대 중반 여성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서 적당히 정착하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요동치기도 한다. 나의 가치에 대해 자문하게 되고, 의심하게 되고, 내가 지금까지 내려온 결정들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근데 뭐,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내가 바꿀 수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때 그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러니 이렇게 시소처럼, 나도 상대가 마음에 안 들었다가, 상대도 내가 추구미가 아니었다가, 그렇게 인연이 나를 스쳐 지나가다, 내가 어린아이처럼 편안한 마음이 들고, 그 사람 자체가 귀여워 보이며 약한 모습도 함께 보듬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가 오지 않을까. 뭐, 안 오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내가 만날 사람이라면 만나게 되고, 인연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든 헤어지게 된다는 걸 반 칠십 년 살면서 알게 되었으니까 오늘도 이런 나를 아껴주고 좀 더 애정하며 하루를 이렇게 보낸다.


이번 추석 연휴 때도 가족의 애정 어린 걱정에 너무 흔들리지 않기를.

나의 타이밍이 대부분은 사람과 딱 맞아떨어질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조급해하지 않기.

가족과 고향에서 맛있는 음식 같이 먹으며 풍성한 한가위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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