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씩 내 일상을 짱구는 못 말려 만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바라보는 적이 종종 있다.
저번 주 명상센터에서 차분히 명상하다 이번 주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류짱구는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을 했다.
여전히 회사에서의 일상은 빠르게도 흘러가지만, 꽤나 종종 현재에 있으려고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류짱구는 어제 쌍펀치를 맞게 된다.
수요일 오전 팀장이 면담을 요청했고, 들어가서 올해 평가가 좋지 않게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사람이 빠졌을 때 업무 커버도 시키고, 모두 부장급인 팀에서 과장 말년차인 나에게 '책임 안 달 거야?'라고 일을 시켜놓고는,
그는 말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사무실에서 전담을 피다가 경고를 먹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습다.
그렇게 치면 너의 평가는 Z다.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열이 받는 내 모습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멈출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행이다 팀장의 전담 쩐내로 마스크를 쓰고 들어갔는데, 그게 내 울그락붉으락 하는 얼굴색을 가려줄 수 있으니까.
팀장이 말한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면 좋지 않다고.
그는 나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줘놓고, 좋은 대화를 하길 바랐다는 건지. 삐뚤어질 테다.라는 생각을 가지며
지금은 감정이 상해 팀장님이 원하시는 좋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다음을 기약하고는 회의실에서 빠져나왔다.
하필 어제는 점심, 저녁 약속이 둘 다 잡혀있는 흔치 않은 빡빡한 화요일이었다.
과일을 가아득 가지고 러닝크루에서 만나게 된 동생이 여의도까지 영하의 날씨를 뚫고 와주었다.
그의 얘기를 많이 듣고, 면접을 보고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파이팅을 선사해주고 싶었으나,
만나자마자 어쩔 수 없이 내 연말평가에 대해서 C 소리 내며 그와 점심시간을 보냈다.
저번주 내내 휴가여서, 이번 주는 업무도, 내가 개인적으로 처리할 일도 많아서 오후에 정신없이 이리저리 일처리를 했다.
내가 10월부터 빠져서 쓰고 있던 글도 어떠한 곳에 제출했고,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간다.
10월부터 글을 꾸준히 쓰게 된 계기는 미션캠프라는 곳에서 10만 원가량을 내면 한 달간 30개의 단어를 주고,
그 단어에 관련된 1,000자 정도의 에세이를 쓰면 그걸 묶어서 책으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결제하면서였다.
회사에 친한 책임님이 작가신데, 그분이 인스타에서 컨셉진과 연결되어 있어, 나도 자연스럽게 피드를 보게 되었다.
결제를 하고 나면 어떻게든 운동이든, 글쓰기는 완성하는 나를 잘 알기에 나는 신청을 했고,
역시나 10월 내내 3만 자의 글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책은 12월 초에 오기로 했고, 당연히. 찰떡같이 믿었다. 의심 따윈 없이.
그랬던 업체에서 11월에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광고 문자가 왔는데,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드는 주제였다.
필름 카메라를 보내주면 그것으로 32장의 사진을 찍어서 그걸 엮어 사진첩으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
한 달간 질문을 30개 받으면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걸 엮어 책으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
마지막으로 꽤나 파격적으로 여겨졌지만, 그래서 더 하고 싶었던 원고를 작성하면 출판까지 해주는 프로그램.
요즘엔 독립출판도 그렇고, 출판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30명 정도만 모집해서 그렇게 진행한다고 생각했다.
각각 보증금은 30만 원이었고, 마지막에 설문조사를 진행하면 전액 환급해 준다고 했다.
계좌이체를 요청했고, 이전에 미션캠프 웹사이트에서 체크카드 결제도 되었어서 별 의심 없이
돈을 송부했다.
돌아보니 약간 싸했던 게, 30만 원을 처음 보내고, 내가 문의 문자를 보냈었는데 아무 답이 없었다.
그래서, 연말에 이렇게 많은 베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바빠서 그런가. 하고 나는 60만 원을 더 송부했다.
나를 자책하지는 않고 싶다.
늘 그렇듯,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 타인도 당연히 그렇게 사기를 칠 거라고 생각지 못한 나를
공격하고 싶지는 않고,
또 100만 원을 태웠다는 건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창조하는 행위가 얼마나
나에게 재미있고 의미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2/1 월요일에 시작되기로 했던, 프로그램이 3일로 연기되었다는 문자와
11월 마지막주에 시작되었어야 했을 프로그램에 대한 진척현황 공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 주엔 내가 폰을 볼 수가 없었으므로)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이제는 아예 사라진 웹사이트지만, 그전엔 파산 예정이라는 공지를 본 순간
가슴골에 땀이 두 줄기 흘렀다. 내가... 사기를 당한 건가....?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비현실적인
어느정도의 순간이 지나갔다. 지금생각해보니 화장실에서 이걸 보게 되서 다행이다 싶다.
환급금은 일반 채권으로 돌려준다고..? 이게 무슨 말인 거지.
마지막에 자신의 회사를 믿고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수많은 가짜 프로그램 광고 문자를 보내
이체로 돈을 최대한 끌고, 파산 신청을 했다는 것에서 다분히 고의적인 악의와 사기죄가 너무나도 명확해
괘씸하고 분노심이 일었다.
10월에 진행했던, 열심히 적었던 글들을 모아둔 책을 기대하며, 검수도 꼼꼼히 하고,
주위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여 줄 생각에 꽤나 신이 났었다. 짱구처럼.
시무룩한 짱구의 뒷모습이 지금 구부정하게 타자를 치고 있는 내 뒷모습과 겹친다.
홈페이지 폐쇄를 공유하고 있는 피해자 수는 지금 기준으로 1,600명이 넘는다.
이 정도로 큰 회사였기 때문에 나도 더더욱 의심하지 않았다.
그 회사 사장의 팬이었던 자기가 병신 같다는 어떤 분의 말에 처음으로 메시지를 적는다.
'모르셨잖아요, 자책하지 마셔요.'라고.
사실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알면 누가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몇백만 원을 이체했겠는가.
모두 연말에 혼자서, 또는 가족과 함께 마음을 글로, 사진으로 함께 표현하길 바랬던 나 같은 사람들이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12월을 보낼 걸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1,600배가 되었다.
어제부터 받은 질문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올해 마지막 달에 내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주위에 많은 응원으로 책을 내겠다는 내 작은 목표와 조심스러운 희망에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로
나의 촛불이 약해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바래본다.
모든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글을 쓰고, 계속해서 만족스러운 자기 계발을 해 나가기를.
이따위 사기꾼 때문에 우리의 창조력을 절대. 잃지 않기를.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또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이체한 비용을 돌려받았으면 좋겠다.
순수한 배움을 위한 비용으로 선뜻 이체를 눌렀던 여러 손가락들이 상처받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