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고.

by 류류류

마음이 여름장마처럼 갑자기 내려 닥치는 장마에 온몸이 눅눅해졌다가, 조금 괜찮아졌다를 반복한다.


조금 괜찮을 때는, 서울 와서 코를 베였다니 하며 내 이야기를 우스운 에피소드로 풀어내기도 하지만,

또 어쩔 때는 지구 내 핵에 가까워질 만큼 깊은 심연에 가깝게 내가 쳐지는 것도 느낀다.


평가와 사기가 휩쓸고 간 나의 저번주를 어제 집에서 청소를 하면서 정확하게 대면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집에 이사하고 나서 가장 어지러운 상태의 공간을 마주했다.


바닥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머리카락이 쌓여있었고,

책상 위, 선반 위, 모든 표면에는 어지럽게 물건들이 그득그득했다.


내 마음이 번잡하여, 가장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나의 공간도, 그렇게 번잡해졌나 보다.


이런 내 마음의 흔들거림을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내가 다 느껴야 하는 내 안에 있는 감정들이므로.


아침에 출근을 천천히 했다. 팀 회의가 있었는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팀원이,

팀회의 한번 빠졌다고 뭐 큰 일 있겠나 싶어 (나도 나다 참) 팀장한테 양해를 구하고 여유롭게 출근했다.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말자,라고 생각하다가 그냥 나도 내 마음대로 하자. 라는데 생각이 닿았다.

자기네들도 마음대로 했는데, 나라고 왜 그러지 못하나 싶은 반항심이 올라오는데

그걸 다 받아들여, 반항심이 올라오는 만큼 내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해보려고 한다.


이것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것만 명확하게 알고 있으니.

한번 해보고 후기를 가져오려고 한다.


후회할 수도 있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경험일 수도 있고, 좋은 경험일 수도 있으니.

뭐 셋 중 하나겠지. 못 먹어도 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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