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가 나에게 좀.

by 류류류

미래의 내가 나에게 좀 알려줬음 좋겠다.

그 사람은 아니고, 이 사람이 맞다고.

그러니 감정 낭비,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할 필요 없다고.

그럼 내 불확실한 마음속 숱한 감정들이 좀 사라질까.


결정사에서 소개를 받을 때도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을 때와 비슷하게 사진이 온다.

다른 점이라면, 사진과 함께 그 사람의 꽤나 디테일한 정보가 함께 딸려온다는 것.


보통 어머니들이 자식을 위해 등록하는 경우가 많아, 궁합을 보시는 분도 있어 그런지, 생년월일과 함께 태어난 시간까지 공유되는 경우도 많고, 자가여부, 부모님의 노후 준비 여부, 어떤 일을 하는지와 지금 받는 연봉이 얼마 정도인지, 형제자매관계와 그들의 결혼 여부까지 10줄 가까이 프로필이 날아온다.

물론 키와 몸무게, 그리고 결정사 실장님이 보기에 훈훈한 편인지, 듬직한 편인지, 잘생겼는지 적혀있는 경우도 간혹 있다.


프로필이 들어오면 내가 만나보겠다고 하거나, 거절을 한다.

뭐 거절하는 경우는 당연히 만날 필요가 없다고 느낄 때 거절을 하고,

내가 수락을 하면, 내 프로필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그쪽에서도 만나보겠다고 하면 서로의 폰 번호를 알려준다. 그 이후론 뭐 똑같다. 보통 남자 쪽에서 먼저 연락이 오고, 만날 약속을 잡고, 만나고. 하는 것.


사진에서는 덩치가 있고, 사진 속에는 깍두기 머리여서 그런지 더 그래 보였던 것 같은데,

토목 일을 하시는 분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여자분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마른 것보다는 근돼 쪽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만나보겠다고 했다.

나보다 5살 많았고, 고향이 같은 사람이었다.


약속을 잡는데, 우리 집 쪽으로 와주신다고 하여 내가 알고 있는 맛집을 알려드리며 여기서 뵙는 건 어떻겠냐고 하니 시원시원하다고 좋아한다. 말투만으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말을 더 조심히 뱉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나쁘진 않다. 얼굴도 보지 않은 사람이 전하는 칭찬이니.


첫 만남 때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여성스럽게 입고 나갔다.

아이보리색 니트에, 허리와 골반 라인이 잘 보이는 머메이드 스커트에 밝은 색 코트.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남자라도 나랑 사귀고 싶었을 것 같다.

왜 내가 힘을 뺀 자리에서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내가 좀 딸리는 것 같아 힘을 준 자리에서는 왜 내가 못나게 느껴지는지.


역시나 상대방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고,

역시나 나는 시큰둥했다.


어라, 근데 이 사람이 말을 은근히 놓는다? 만난 지 5분도 안되었는데.

나도 어마어마하게 예의가 바른 사람은 아니지만,

첫인상도 약간의 날티가 나서 별로라고 생각하던 찰나, 말까지 놓는 걸 보니 나도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뵌 지 5분도 안되었는데 벌써 말을 놓으시네요?'라고, 웃으며.


그랬더니 그쪽도 웃으며 아 그런가요? 제가 대화 나눌 때부터 내적 친밀감이 들었나 봅니다.라고 한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내적 친밀감이 들었나 싶다. 성격이 급한 사람인가.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5살 많은 그 사람이 얘기한다. 나이차이가 그래도 있다면 꽤 있는 건데, 이렇게 만나보려고 해 줘서,

자기도 최대한 젊어 보이려고 정장 안에 저지를 입고 왔다고 했다.

나는 다음에는 그냥 정장을 입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답한다.

그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우리 둘 사이에 우삼겹이 구워지고, 구워주는 이모까지 민망하겠다 싶은 정적이 흐른다.


내가 수많은 소개팅을 해보았지만, 1차만 하고 집에 가는 일은 또 처음이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말한다.

잠깐만요. 우리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 같다고.

내가 대답한다. 그래요 그럼 풀어보자고.


그 사람은 내가 다음에는 그냥 정장을 입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이,

나는 네가 마음에 안 드니, 다음에 다른 사람과 소개팅할 때는 정장을 입는 게 낫겠다.라고 받아들여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


그러네, 말할 당시에는 다음에 만나게 되면 정장이 더 낫겠다는 말이었는데,

사실 내가 다음에 만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마음이 상할만했다.

그래서 난 사과를 한다.


그리고 나도 내가 왜 불편한지에 대해 얘기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편한 후배 대하듯 말을 놓는 것이 난 당황스러웠다고.

(나는 꽤 오래 지낸 사람에게도 웬만큼 친하지 않으면 말을 잘 놓지 않는다.)

그쪽도 사과를 한다.


그래도 이렇게 짚고 넘어가게 되면서 분위기가 한결 노곤노곤해진다.

그러고는 같이 우삼겹과 된장찌개에 밥을 시켜 야무지게 저녁을 마무리했다.

케이크 맛집을 찾아왔다는 그 사람을 따라 카페로 간다.

그 사람은 커피숍이라고 부른다.

내가 예전에 전남친과 왔던 곳이다.

모르는 척 들어간다.


경상도 남자의 특징을 잘 드러내듯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두 개나 시킨다.

이것저것 먹어보자고.

생리 직전에, 달달한 게 들어가니 마음이 좀 더 누그러진다.

더 편하게 얘기를 한다.

자기가 다 내고 싶다고 하는 그 사람에게 괜히 빚지는 마음을 가지기 싫어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고 한다.

그 사람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곰보 같은 피부가 내 눈에 꽂힌다.

3차까지 자기가 오늘은 다 대접하고 싶다고. 자기를 3번만 더 만나달라고 한다.

웃으며, 그 사람이 화장실 갔을 때 3차는 내가 계산한다.

당연한 거겠지만, 대접하려고 하는 사람에겐 나도 대접하고 싶어지고,

짱꾸 굴리는 사람에겐 나도 짱꾸를 굴리게 되는 법.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넘게 나를 보러 온 사람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작별인사를 하는데,

괜찮으면 내일 광화문에서 브런치를 먹자고 한다.

생각해 보겠다고 답하며 그 사람을 보낸다.


그땐 몰랐지, 내가 이 사람이랑 2달 가까이 연락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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