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부탁한 3번의 만남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이번 소개팅을 통해서 확실하게 배운 건, (사실 이전부터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처음에 아닌 것이, 여러번 본다고 긴 게 되진 않는다는 것.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방이 완벽할 거라고 생각해도 나중에 이런저런 꼴 보기 싫은 점이 서로 생길 텐데
첫인상에 부족한 점이 요모조모 보인다는 건, 시작하기 힘든 뜻인 것 같다.
그래도 주위 언니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받아들여,
내 마음이 그래도 그 사람의 인성에 조금이라도 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불나방처럼 빠지는 것보다는 이성적으로 관계를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3번을 나간 건데
돌아보면, 그저 나와 그 사람의 에너지, 시간, 감정 낭비였던 것 같다.
물론 그쪽에서는 원했던 시간이었고, 감정이었지만.
첫 번째 만남 이후에, 그다음 날 바로 만나자고 했지만,
그다음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취소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는 내가 늦은 하계휴가를 떠났고,
돌아와서 그 사람을 만났다.
첫날보다는 더 깔끔하게 코트를 입고 나타난 그 사람과 나란히 광화문 주위를 걸었다.
내가 토요일에 브런치를 먹자고 해서, 빨리 만날 줄 알고 기뻤다고 했다.
나에게 브런치는 1~2시여서 겸사겸사 운동도 하고 왔다고 뿌듯하게 자랑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도 미래에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서 잘 보이고 싶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시소같이, 상대방이 나를 더 좋아한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나는 점점 더 차분해진다.
시소에서 내가 밑으로 내려갈 때, 그저 몸을 뒤로 조금만 재끼면 바닥에 쿵 하고 닿을 것처럼.
그 편안한 모습에 반대편에 있는 두 발이 붕 떠있는 그 사람은 더 기뻐하는 것 같다.
브런치를 먹고, 그 사람이 찾아둔 박물관도 가고, 카페도 찾아갔다.
그런데 카페가 팝업으로 운영하던 곳이라, 기간이 끝나 그 자리엔 카페가 없었고,
그 덩치 큰 사람이 카페가 없어져서 당황하는 모습이 내심 귀여웠다.
별것 아니라고, 이 주위에 카페가 얼마나 많은데, 찾아보고 땡기는 곳으로 가자고 하니
싱긋 웃으며 고맙다고 한다.
별 일 아닌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감정 표현은 잘하시는 분이구나.
라고 나 혼자 괜히 이 사람이 어떤지 분석해 본다.
오히려 좋게, 내가 찾은 카페로 가는 길에
국내산 팥으로 만든 빙수집에 들어갔다. 맛있었고, 내부 조명도 추운 겨울에 딱 맞는
따뜻한 귤 색으로 우리를 감쌌다.
그 사람이 할 말이 있다며 무게를 잡는데, 뭔가 불안하다.
두 번째 만나는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는 덤덤하게 과거를 나에게 펼쳐놓는다.
사람으로서 그의 손을 잡아준다.
그러는 사이 해는 이미 져버렸고, 집에 갈듯하면서도 이 사람이 4차로 찾아둔 생맥주 집에 들어간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술을 좀 더 마시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맥주잔이 바꿔지면 바꿔질수록 우리의 웃음은 더 시답잖게 나오고,
말도 더 편해진다.
마지막에 카페에 가서 따뜻한 음료로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사람과 장장 8시간 넘게 함께 있었다.
근데 싫거나,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어라 이건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매일매일 톡이 오는 게 좀 부담스럽다.
톡으로는 크게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밥 먹었어요, 출근 잘하셨어요, 퇴근 잘하셨어요, 운동 잘하셨어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정도.
그리고 내가 급하게 본가로 다녀올 일이 있어, 거의 2주 만에 그 사람을 만났는데,
첫 번째보다, 두 번째보다, 더 괜찮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 마음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점점 괜찮아 보이는 모습에 나는 솔직히 말한다.
잘 모르겠다고. 어장을 관리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성향은 아닌데,
좋으신 분 같으나, 이성으로 느낌이 나는지 잘 모르겠다고.
저녁을 먹고 나와서 걷는 그 사람에게 나는 말한다.
손 한번 잡아봐도 되냐고.
불혹이 넘은 이 사람은 당황한다.
내가 뭐 다른 걸 잡아본다고 한 것도 아니고, 손 하나인데 뭘 그리 당황스러워하냐고
내 손을 내민다.
그 위에 그 사람의 투박한 손이 얹힌다.
흠- 나쁘진 않은데, 막 설레지도 않는다.
뭐 사실 지금 내 나이에 막 설레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닌가. 하면서 그저 같이 걸어본다.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돌아가는 그가
두 팔을 벌린다. 손 잡기를 받고 포옹을 던지나 보다.
포옹도 해본다. 그 뭐시라고. 크게 감흥이 없는데, 이 사람의 배가 생각보다 조금 튀어나와 있군.
이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뭐 흘러내리는 뱃살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그는 떠나간다.
이성이 만나서 하는 것들이 얼마나 별게 없는지.
먹고. 마시고. 서로를 만지고.
함께 어딜 가고,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또 먹고. 마시고. 서로를 만지고.
이 모든 과정 속에 또 나는 나를 열어 보여줘야 하는 것에 피곤한 감정을 느낀다.
그 이후 전화에서, 톡에서,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껴,
이런 마음상태로 상대방을 알아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정리를 했다.
그날 밤 자정이 넘어 그 사람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고.
얼마 뒤 문자가 와있었다. 야. 로 시작하는 조금은 긴 문자.
처음부터 나에게 거슬렸던 반말 시전을 끝으로 이 사람도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후련함과 함께,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는 게 지겹게 느껴진다.
피곤하고, 지루하고, 짜치고. 그렇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아무리 세 번 만나보자고 해도,
그냥 첫 번째 만남에서 아니면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연말을 맞이한다.
그 사람과 만나기로 했던 일요일에 나 혼자 덩그러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또 이리 잘도 흘러간다.
조금은 무의미하게, 조금은 헛헛하게. 또 이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