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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지나 Oct 18. 2016

오랜만에 전하는 소식은 간결하지요

단어할당제 - 해야 할 말은 차올라 넘치면 비로소 흘러갑니다

브런치에 반년 넘는 시간동안 접속하지 않았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와서 카페에 비치된 책이나 잡지를 건드려 보는 것 말고는 다른 사람의 글은, 특히 온라인으로는, 읽지 않은 지도 오래다. 새 글을 차려 올리기 전에 그 동안 한국으로 아주 (일단은) 들어왔기 때문에 ‘파리에서 살고 있다는’ 작가 소개부터 고쳤다.


길 건너 있어 글 쓰러 노트 들고 자주 갔던, 커피가 맛있는 작은 카페 Boot Cafe, Paris

(c) Gina Maeng


그 동안 감사하게도 잡지 원고 청탁과 수 개월 후 빛을 볼 책 여러 권을 교정하느라 바빴다. 브런치에 올릴 새 글을 끄적여 볼 여유도,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쓸 말이 없어 들어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서 편지가 오면 봉투를 뜯기도 전에 기분이 한결 더 들뜨는 것처럼, 잊혀지지 않았다면 반가움이 조금 더한 글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실 오랜만에 쓰면 적을 것이 더 많겠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써 놓은 원고를 다듬을 때마다 글자 수는 항상 줄어든다. 늘어나는 법은 결코 없다. 불필요한 미사여구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지우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나면 종이에 적지 않았어도 마음 속 순서 없이 엉켜 있던 말들은 자기 위치를 찾아 가며 무게를 덜어 낸다. 그래서 할 말이 많지는 않다. 올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곳곳의 에디터들을, 잡지의 특정 타겟 독자층을 위한 말을 끄집어 내어야 했다. 때로는 억지로 꺼내어 놓아야 했다. 그러고 나니 남은 말이 별로 없다. 


말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인지, 해도해도 또 할 말이 생각이 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지금은 알겠다. 그들은 분명 다른 어딘 곳에서는 정말 조용할 것이다. 두 입술이 한 덩이인양 붙어서 꼼짝 하지않을 것이다. 어느 한 곳에서 그렇게 쏟아내고 나면 반드시 사라진 말의 공간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사실 시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없은 지 꽤 되었다. 그렇다고 마음 한 켠을 불편하게 하는, 점점 늘어나는 공백을 채우기위해 아무 말이나 적어 올리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말인데 내년부터는 출간 페이스를 많이 늦추어 보려한다. 그 동안 하고 싶은 말들을 세계 여러 아름다운 도시와 나라들을 빌어 두서없이 쏟아 낸 것 같아, 오래 걸러 만드는 맑은 찻물 같은 글을 더욱 차분하고 느리게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의뢰 받지 않고 혼자 쓰는 글은 종종 주체를 못하고 종일 적게 되니 어쩔 수 없다고 미리 변명을 해 두겠다). 


"방금 칠한 페인트에요, 조심!"

(c) Gina Maeng


새로 쓴 글은 막 칠한 페인트처럼 바로 눈길을 끌기도 하고 방금 갖게 된 존재감을 뽐내기도 하며 바로 짚어내지 못하는 불편한 무언가도 지니고 있다. 오래 묵힌 생각은 반대로 큰 임팩트 없이 다가와 긴 시간 머문다. 간단히 안부를 묻는 말이라도 한참을 생각하다 꺼내어 건네는 질문에서는 그 서려 있는 모든 감정이 배어 나오는 것과 같다. 오래 생각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가를 받고 파는 글이 아닌 나를 위해 쓰는 글을 묵혀 두었다가 적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오늘은 잘 지내는지 궁금한 몇몇 얼굴들에게 문자라도 보내봐야겠다. 매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친구들에게는 더 다정하게 말을 건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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