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리지만, 괜찮아.
시작은 업무 복귀였다.
육아 휴직 중 이직을 하느라 예정보다 이르게 워킹맘이 되었다. 하여 7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했다. 눈물이 앞설만큼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내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어린이집에 적응했다. 엄마가 안보이는 공간에서 혼자 놀아도, 엄마와 안녕 인사하고 선생님 품에 안길 때도 한 번을 울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아직 엄마 껌딱지 시기는 아니니까- 순한 기질의 아이니까. 그런데 어린이 집에 보내고 몇일동안 아이를 데릴러 가도 내 얼굴을 보고 반가워하지 않았다. 웃지 않았다. 그게 의아했다. 혹시 애착형성에 문제가 있는걸까. 혼자 판단하기 어려워 가까운 발달 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더 주목한 건 아이의 반응보다 움직임이었다. 엄마 얼굴을 보고 반응이 없는 건 기질이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다만 아직 배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같은 월생 친구들은 이미 바닥을 슥슥 기고 있었지만 아이는 엎드린 채 장난감만 만지며 놀았다.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부분이라, 새로운 걱정거리만 늘었다. 혹 떼러 갔다가 혹만 더 붙여온 기분이랄까.
베일리 검사를 진행했고, 배밀이와 네발 기기에 대해 주 1회 물리치료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결과를 받았다. 남편과 나는 먼저 집에서 훈련을 해보겠다고 결정했고 유튜브 영상을 따라 열심히 연습시켜주었다. 댓글에는 '1주일 만에 기더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빨리 터득하지 않았다. 약 한 달 후, 진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나 걱정이 커질 즈음 아이는 갑자기 배밀이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나 이제 할게'라는 듯.
그때 알았다.
우리 아이는 빠른 아이는 아니라는 걸. 자기만의 리듬이 있는 아이라는 걸.
그리고 9개월. 또 한번의 영유아 검사 시기가 왔고, 병원에서 미리 받아온 검진표 문항에 하나하나 답변을 했다. 아직 못하는 것 같은데, 싶은 항목들이 많아 보수적으로 답했다. 그 결과, '전반적으로 양호하나 대근육, 소근육, 언어 발달이 느린편이며 특히 사회성 영역에 대해 심화 평가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심각하게 생각하시고 관찰하셔야 해요." 그 말에 마음이 쿵 내려 앉았다. 갑자기 모든게 내 탓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조용하면 아기의 언어 발달도 느릴 수 있다고 했다. 조용한 성격인지라 아이를 위해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부족했구나. 내가 더 잘했으면, 내가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나는 사실 엄마 자격이 없는게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 말수, 내 표정,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검진을 마치고 나오는 길, 생각보다 길어진 상담 시간과 내 어두운 표정을 보고 밖에서 아이와 앉아있던 남편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그날 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아이는 빠른 아이는 아니지만 자기 속도로 잘 자라고 있다고. 지금까지 잘 커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잘 자라주리라고. 우리 역할은 그 속도를 믿고, 그 안에서 꾸준히 도와주는 거라고. 말도 많이 걸어주고 소근육, 대근육 발달 놀이도 매일 조금씩 해주자고 다짐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매일 새로운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무게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건 참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남들보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시계는 모두 같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시계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