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몇 번이나 냉장고 문을 닫았다 열까?
일어나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어 물통을 꺼내고 문을 닫고, 물을 컵에 따른 다음, 다시 문을 열어 물통을 넣고 문들 닫는다. 아침을 먹기 위해 김치냉장고 문을 열어 우무를 꺼내고 문을 닫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열고 얼음 봉지를 꺼내고 문을 닫고, 얼음을 컵에 담고 다시 냉동실 문을 열고 문을 닫는다. 아침 3시간 동안 12번을 여닫았다. 그렇다면 점심과 저녁을 요리에 필요한 재료, 간식, 물, 얼음, 시원하게 만들어 놓은 커피, 과일, 만들어 놓은 밤 호박죽을 넣기 위해, 앞으로 난 냉장고의 문을 몇 번이나 여닫을 것인지 궁금은 하지만 세지 않기로 했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 냉장고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보다 아주 작았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면 우유, 쿨피스, 썬키스트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 가득 찬 반찬들, 과일과 부식들이 냉장고 불빛이 안 보일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당시엔 김치 냉장고가 없어 김장 김치는 냉동실에 갓 담은 김치는 냉장고에 보관했다. 냉동실 안쪽엔 할아버지가 잡아 보내주신 생선과 해물들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많은 음식이나 재료가 들어 있던 냉장고를 정리한다고 냉장고 털이를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도 않았었다.
그 대신 우리 엄마는 매일 상다리가 휘도록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을 차리셨고 간식을 만들어줬었다. 그래도 냉장고 안은 여전히 그득했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냉장고는 작았지만 다양한 부식과 음식 재료가 부엌 안과 근처에 쌓여 있었다. 냉장고를 대행하던 보릿겨나 쌀겨가 들어있는 항아리는 마당에서 부엌으로 가는 그늘진 길 구석에 놓여있었다. 그 속엔 과일도 보관하고, 밤, 고구마 그리고 감자 같은 요리 재료들도 들어있었던 것 같다. 부엌 뒷문으로 놓여있는 펌프가 있는 뒷마당엔 우거지나 생선이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걸린 줄에 매달려 휘청대고 있었고 장독대 위엔 얇게 저며 썬 무나 호박, 가지, 박 같은 채소들이 채반 위에 놓여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내 어릴 때 기억으론 겨울에는 어찌나 춥고 눈이 많이 왔었는지, 처마에 달린 고드름 똑 따서 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쪽쪽 빨아먹고, 동네 비탈길에서 미끄럼을 타다 어른들이 차가 지날 때 미끄러진다며 혼난 적도 있었고, 쌓인 눈을 모아 동네 오빠들이 이글루도 만들어 줬었다. 이런 날씨엔 냉장고가 필요 없었다. 김장철이 되면 꽃밭 한쪽을 파고 아빠가 항아리를 3개나 묻으셨다. 하나는 배추김치, 또 하나는 동치미, 나머지 하나는 봉지에 쌓인 알타리, 고들빼기, 파김치가 들어있었다. 보일러를 때지 않는 우리 집, 작은 방은 적당한 온도를 가진 식료품 창고가 돼주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환경에서 우리들의 엄마는 삼시세끼 요리에 도시락까지 싸주셨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화실에 가야 하는 처지라 도시락을 한 개 이상 들고 학교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내 친구들을 보면 적게는 두 개, 많게는 세 개까지 싸 왔던 것 같다. 우리는 도시락 가방이라는 것이 따로 있었다. 도시락을 보면 공부하는 자식들 걱정에 아들·딸이 좋아하는 소시지, 햄, 달걀, 장조림, 샐러드 등 각종 반찬이 따뜻한 밥과 같이 도시락 가방에 넣어주셨다.
심지어 가족 행사나 친인척, 지인들의 모임을 바깥에서 외식하기보다, 집에서 요리한 음식이 융숭한 대접이라 생각해 집이 터져 나갈 정도로 손님들이 모였던 적도 많았었다.
해마다 하는 김장은 배추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이모들과 엄마 친구들이 이틀 동안 배추를 절이고, 무, 갓, 당근, 마늘, 생강, 청각, 쪽파, 생새우, 각종 젓갈, 고춧가루, 찹쌀죽, 육수 등을 다듬어 썰고 배추 소 양념을 만들어 김치를 담았었다. 거기에 딸려오는 총각김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였고, 라면과 잘 어울리는 파김치, 고구마와 같이 먹던 동치미 그리고 고들빼기까지 만들어지면 한 해의 마무리가 끝이 났다며 엄마들은 웃었었다. 힘이 빠질 법한 일을 끝내고도 엄마들은 김치의 여분으로 나온 겉절이와 삶은 돼지고기 그리고 따뜻한 밥과 국으로 한 상을 차려 내는 걸 보면 대단하다 느끼기도 했었다.
우리나라 하나의 명절 같은 김장 날에 만든 김치는 따끈따끈 맛있는 만두소도 되고, 어떤 재료가 들어가도 맛있는 김치찌개, 내가 좋아하는 부대찌개, 호박이 들어가는 김치 돼지고기 짜글이, 시원하거나 따뜻했던 김치말이 국수, 두부와 싸 먹던 볶은 김치, 숭덩숭덩 썰던 썰지 않고 길쭉하게 부친 김치전, 매콤한 등뼈찜, 김치와 두부가 들어간 부꾸미, 빠질 수 없는 홍어 삼합, 김치만 들어가도 맛있는 볶음밥, 신김치를 씻어 볶은 간장 김치 볶음, 한겨울에 먹던 동치미 막국수, 동치미 무를 꽉 짜서 무친 새콤달콤했던 무짠지 등 헤아릴 수 없는 반찬들이 엄마의 정성과 함께 상위에 올라왔었다.
엄마의 밥을 먹고, 간혹 먹는 짜장면이 호사였으며, 시장에서 갓 튀긴 통닭에 침을 흘리던 단순한 간식거리기가 전부였던 우리 세대보다,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편식이 심해져 안타까울 뿐이다.
귀촌하고 한 유치원에서 편식을 고칠 수 있는 요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라는 제의가 들어왔었다. 채소도 잘 먹는 어른 입맛을 가진 시골 아이들이라 어렵지 않을 거라는 내 생각은 편견이었다. 이 아이들도 도시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채소나 버섯이 들어간 음식보다 냉동실에서 꺼낸 돼지나 닭의 온갖 부위를 갈아 만든 공룡 모양 너겟이나 돈가스를 좋아하고 합성 돈가스 소스와 케첩이 아이들에겐 최대의 만찬이었다.
냉장고도 커지고, 김치, 음료 그리고 와인을 비롯한 술 냉장고와 냉동고까지 따로 쓰는 이 시대와 앞 시대를 살았던 엄마들 세상과 비교해 보자면, 더 많은 요리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보인다. 나도 나이가 들다 보니 이제는 “애들이 반찬을 해 다 줘도 싫어해.”라던가, “요즘 애들이 집에서 밥을 먹는 줄 알아?” 또는 “쟤들은 뭘 먹고 사는지 모르겠어, 그 큰 냉장고에 반찬이 없어.”하고 “낑낑대고 장 봐오면 뭐 해 어디서 뭘 먹고 들어오는지 집에선 밥을 안 먹어”같은 엄마들의 볼멘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들의 걱정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난 생각한다. 우리 아이도 어른들의 손에서 벗어나 혼자 살거나 결혼하면, 나도 저런 걱정하지 않겠냐는 걱정이 앞선다. 외식 산업이 발전하여 우리의 식탁을 바꿔주고 엄마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들은 내가 만든 밥을 먹어주는 자식들이 고맙다.
그래서 난 오늘도 다시 냉장고를 열고 내 밥을 먹어줄 동생을 위해, 건강한 밥상을 차리려 한다.
김치냉장고 문을 열고 두부면을 꺼내고 문을 닫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 노각을 꺼낸 후 문을 닫는다. 두부면은 뜨거운 물에 데쳐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 노각은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썰어 소금에 절인다. 김치냉장고의 서랍을 열어 초여름에 담가 놓은 열무김치와 얼마 전 텃밭에서 딴 오이로 만든 오이소박이 통을 꺼내고 문을 닫는다.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 통에 여분으로 만들어둔 무와 당근, 부추, 양파가 들은 소박이 소를 볼에 덜어 담는다. 다시 김치냉장고 서랍을 열고 통을 넣고 닫는다. 절인 노각을 꽉 짜서 열무김치가 들어있는 볼에 담는다. 간장, 생강즙, 식초, 설탕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후 물이 빠진 두부 면을 넣고 다시 버무린다. 그릇에 두부면 무침을 플레이팅하고 썰어 프라이팬에 구워 기름을 빼준 삼겹살을 고명으로 올려준다.
오늘도 냉장고 덕에 맛있는 저녁을 맞이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