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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26. 2023

속상한 일 모두 만두 속에 넣어 씹어 먹고 힘내!

만두 빚기

그나저나 언제 말을 꺼내지.


내 마음과는 달리 경태가 의외로 편안한 표정으로 만두를 만들고 있다. 만두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녀석은 동생 두부에게 뒤지지 않는 속도를 내고, 만두소도 적당히 넣고 피도 꾹꾹 잘 눌러 반달 모양의 만두를 빚고 있다. 안 만들어 본 거 맞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제법 솜씨를 내고 있다. 전에 내가 만들어줬던 손만두가 생각난다며 같이 만들어 보고 싶다, 노래 부르던 녀석의 말이 농담처럼 들렸는데 사실이었나 보다. 고새 다 만들고 뿌듯해한다.


“너 만두 처음 만들어 본다는 말, 거짓말이지?”

“진짜예요. 해본 적이 없어요.” 하며 어휴. 어휴. 경태가 당황할 때 내는 소리를 연신 입으로 뿜어내고 있다.

두부도 칭찬을 받고 싶은지 “언니 요거 이쁘지 내가 주름도 만들었어?” 하며 자기가 만든 만두를 만지작거린다.

“아이고 예쁘게도 했네. 이젠 만두를 쪄 볼까? ”     

난 만두를 김이 오른 찜통에 넣고, 두부는 담아놓은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 양념간장을 꺼내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가득 담긴 죽순 고추장구이 김밥과 감잣국까지 차려지니 양이 모자라지는 않아 보인다.


“부장님, 텃밭 표 열무하고 오이소박이, 우리 텃밭에서 나온 걸로 언니가 만든 거야.”

“텃밭에서 열무도 키우셨어요?”

“그럼 봄엔 열무랑 시금치도 키우지. 이번 가을엔 배추도 심어야 하는데, 너 와서 도와라. 만두 만드는 솜씨 보니까, 손재주가 좋네. 손이 이쁜 사람들이 있어. 일복이 많지!”

숫기 없는 경태가 몸을 배배 꼬아가며 칭찬 소리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네가 그래서 애들 안 시키고 회사일 혼자 다 하지?”

“아닙니다. 직원들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또 직원들 칭찬이다.

“상무님이 너 걱정하던데.” 설마 하며 경태가 지나는 소리로 듣는다.  

   

사무실 직원으로 취직한 두부는 4개월 동안 축사와 폐수처리장에서 수습 기간을 마쳤다. 말을 안 해도 힘들 것만 같았던 축사에서의 수습 기간을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동생이 대견해, 직원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했었다. 경태도 그때 처음 만났고, 그 이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자주 집에 놀러 왔었다. 그 이유에서 인지 상무님은 가끔 직원들 일로 나와 상의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상무님과는 두부가 농장에 입사 후 가끔 음식을 챙겨다 주며  회사에서 마주쳐 인사만 하고 지냈다. 그러다 몇 년 전, 두부네 회사종무식에 초대받은 후로 상무님과 안면을 텄다.


회사 일이 나오자 당황하는 경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만두, 다 쪄졌다. 찌고 나니까 모양이 더 예쁘네, 초보가 만든 솜씨 같지 않아.”

만두를 접시에 담아 옮기는데 경태와 두부가 거북이가 목을 쑥 빼고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내가 서 있는 쪽을 보고 있다. 접시를 식탁에 놓자 두 녀석이 싱글벙글하며 뿌듯해한다.

요리조리 나와 두부 그리고 경태까지 오늘을 기억하려는 듯 접시에 담긴 만두 사진을 찍어댔다.


오늘 음료는 난 혼자 맥주, 운전해야 하는 두부와 임플란트 시술 중인 경태는 시원한 결명자차로 대신했다.

한입 베어 문 경태가 “만두 속에 고기가 들었는데도 시원하네요?”라며 만두 속을 살펴보며 질문인지, 방백인지를 중얼거리고 있다. “뭐가 들어간 거예요? 일반 만두하고 맛이 달라요.”라며 날 쳐다본다.


“만두소 만드는 방법 알려줘? 자 설명한다.”      


가지를 얇게 썰어 소금을 뿌려 절여주고. 냉동실에 저장해 둔 삶은 배추를 꺼내 녹인 후 다시 뜨거운 물에 데쳐, 여기에 우무도 데치고, 이렇게 밑 정리가 끝나면 가지를 면 보자기에 싸서 꼭 짜주는 거야. 물기가 많으면 만두가 질척해지니까. 그런 다음 듬성듬성 다져줘야 해. 배추도 꼭 짜서 가지와 비슷한 크기로 다지고, 우무는 곱게 다져주는 거지. 볼에 다져놓은 재료를 넣고 갈아놓은 돼지고기와 마늘즙 그리고 생강즙을 넣어, 이때 간은 소금과 후추만 넣어줘. 잘 치대며 섞어줘야 만두 속에서 재료가 따로따로 돌아다니지 않아.   

  

“어렵지 않지.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아 다른 일 보면서 설렁설렁하면 돼.”하며 난 시원한 맥주를 컵에 따라 두 아이를 약 올렸다.     

“누님은 요리가 어렵지 않으세요?”

“재미있어 그러니까, 누나가 너! 밥 해준다고 놀러 오라고 하지. 넌 네가 하는 일 재미없어?” 난 그의 낯빛을 찬찬히 살폈다.

“뭐. 뭐.” 소리만 되뇌는 경태.     


“김 선생님은 정기검진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전화 왔었네.” 난 두부에게 김 선생님 안부를 전했다.

“누님 김 선생님이 상무님 사모님이죠?”

“응 맞아. 우리 요리 수업 보조 선생님. 며칠 전에 상무님 부부하고 만나서 식사했거든. 그날 네 얘기 물어보시며 진짜 걱정 많이 하시더라” 

“상무님이 왜 저를. 요즘 밥을 안 먹어서 그런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아뇨. 아뇨.라는 말만 계속 반복하는 경태.    

 

“내가 말이 나왔으니 잔소리 좀 할게. 좀 들어봐.”   

  

답답이 안경태,  태생적으로 착하게 태어났다고 난 본다. 뭐 다른 건 모르겠고, 착해도 멍청할 정도로 착하고 일 잘하는 경태, 부하 직원의 일까지 맡아서 해주는 건, 너의 허점이야. 두부가 회사에 다니던 4년 동안, 명절마다 일하던 너를 우리 집으로 초대를 하거나, 내가 만든 명절 음식을 싸가 명절에도 쉬지 못하는 직원들과 나눠 먹었었지. 명절마다 우리와 밥을 먹는 걸 보면, 도시에 있는 본가에 가지 않고 다른 직원들 대신 일을 한다는 거지. 넌 네 딸 생각은 안 하니?


가축 농장의 특성상 주말이라고 가축들이 쉬지 않는 건 알아. 달력에 빨간 글씨로 숫자가 적힌 날에도 가축은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똥을 싸고, 오줌도 싸니까. 그래서 주말에도 직원들이 교대로 일을 해야 하는 가축 농장은 추석과 설 명절 중 하나만 선택해 직원의 반만 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아니! 축사 순찰은 거의 네가 도맡아 하니? 밥을 먹다가 “저는 저녁 순찰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 봐야 해요.” 라든가 “직원이 갓난쟁이 돌봐야 해서 제가 대신 순찰하고 있어요.” 야! 직원이 사회생활도 안 하는 아기 엄마 대신, 돌이 다가오는 아이 돌보고 밥 하며 빨래하는 집안일까지 봐주느라. 금, 토, 일 3일 내내 저녁 순찰하는 건 이해가 안 가지.


일이 힘들다며 뺀질거리는 직원 일 대신해 주고, 하면 안 되는 실수 해도 눈감아주는 건 그렇다 치자. 임신사, 분만사, 자돈사를 이리저리 종종걸음 치다, 힘들어 밥도 못 먹고, 저녁엔 직원들 다독이느라 술 먹고, 피곤함에 지쳐 서류정리는 뒷전이면, 무엇이 잘한 일이고 무엇이 못한 일일까? 너 찬찬히 둘러봐. 네 직원이 너 챙겨주니? 아니면 네가 챙겨주길 바라니? 너 너무 챙겨주다 보면 직원들이 볼 땐 당연하게 본다. 밥값도 네가 다 내지?  


“그건 맞아. 저 언니도 그래서 힘들어하잖아.” 두부가 껴들며 고개를 끄덕인다.     


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보다 못한 상무님이 너를 A 농장에서 B 농장으로 옮겨 줬잖아. 그런데 너 거기서도 그러고 있지? 네가 잔소리 안 하고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직원들이 알아줄 시대는 지났어. 내가 초코파이 광고 싫어한다고 했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말 안 하면 어떻게 알아? 말 안 하고 알아달라면 사람들이 알아도 모른척해. 너를 정말 생각해 주는 사람이 누군지 잘 생각해 봐. 상무님이 네 마음 몰라 준다고 꿍꿍대며 속앓이 하지 말고.”


“제가 직원들에게 잘해주는 것도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두부와 나는 경태를 째려보았다.


“경태야 직원에게 잘하고 싶으면, 일 잘 가르쳐서 딴 농장에 가서도 칭찬받고 연봉 많이 받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야. 대신 일해주는 게 아니고. 직원들이 일 못 한다는 소리 들으면 속상하지? 네가 중심을 잡고 거세게 직원들 한번 가르쳐봐. 잘 못 된 걸 지적하고 징징대는 걸 안 봐주는 행동은 혼을 내는 게 아니야. 그리고 다른 농장 사람들이 B 농장 직원들 일 잘한다, 대단하다는 소리하나에 너를 보는 직원들 눈이 달라질걸.”      

하고 만두를 더 가져다주며 “만두에 속앓이 다 싸서 먹고 힘내.”     


모르는 사람들이 뭉쳐 일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음식 재료에 따라 안 어울리는 재료도 어떤 방식으로 밑 작업을 하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기도 없기도 하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김밥이 허전하지 않고, 김치가 아닌 가지가 들어간다 해서 만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난 경태가 직원들에게 밑 작업 잘된 재료로 조화롭게 요리한 맛난 요리의 맛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경태야! 능력을 보여줘!


이렇게 오늘도 남은 만두와 김밥을 싸 보내며 하루를 마쳤다.


https://brunch.co.kr/@ginayjchang/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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