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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25. 2023

너네 건강하라고! 만든, 죽순 고추장 구이 김밥.

김밥재료 별거 있나

억수로 내린 비와 땡볕을 동반했던 여름이 가고 있다.


가을을 알리는 입추가 지났으니 가을이 왔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날씨는 아직도 여름 같은 느낌이다.  

가을과 겨울에 먹을 음식 재료 준비하려면 냉장고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단 냉동실을 열어보면 올해 채취한 죽순이 한 칸을 차지하고 삶은 배추, 이 두 가지만 빼면 여유가 생길 것 같다. 김치 냉장고에는 동생이 식단 관리를 시작하며 주문한 우무 국수와 두부 면이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난 ‘이걸로 뭘 할까?’ 고민하면서 죽순과 삶은 배추를 꺼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가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 의동생 안경태다.

“누님 내일 저녁밥 먹으러 갈게요.”

“너 김밥 먹을래?” 눈에 들어온 김밥용 김, 식자재를 쌓아 놓은 곳에 얌전히 누워있는 김이 방긋방긋 웃고 있다.

“저는 좋지요. 그럼 내일 두부씨와 같이 갈게요.”

경태는 내 동생 두부의 부장님, 말하자면 그녀의 직장 상사이다. 내 동생은 전 직장 상사였던 나와 살고 있고, 현재 다니고 있는 두부의 직장 상사가 내 의동생이 되었다.   

   

두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부야 경태 내일 저녁 먹으러 온다는데? 무슨 일 있어?”

“부장님이 요즘 밥도 안 먹고 우울해하셔서 오라고 했어.”

아무래도 며칠 전 상무님 부부와 식사를 하며 나눴던 대화가 신경이 쓰인다.

“김밥 먹자고 했는데, 김밥으론 부족하지 않냐? 경태 만두 좋아하는데 만두도 할까?”

“그럼 부장님이 좋아하겠네. 참! 나 오늘 회식.”


두부 회식을 까먹고 있었다. 꺼내 놓았던 재료들을 다시 냉장고에 넣어놓으며 “내일 만두피랑 돼지고기 사 와.”하고 난 전화의 종료 버튼을 누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저녁 식사엔 식단 관리하는 두부가 없다. 저녁 메뉴로 기름 쪽 빼고 바싹하게 구운 족발과 맥주를 선택했다. 에어프라이에 족발을 넣고, 맥주를 사러 나갔다.     


안경태 오는 날

애들이 오기 전에 쓰고 있던 귀촌 이야기를 정리하고 김밥과 만두 재료 밑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자꾸 딴생각이 난다. 다음 주 아이들 요리 수업으로 할 김밥 재료로 미리 김밥을 말아볼 것인가? 냉장고 털어 나온 재료로 할 것인가? 뒹굴뒹굴하다 보니 시간만 가고 있어, 발딱 일어나 이빨을 닦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무래도 냉장고를 털어야겠어.' 라며 노트북 자판에 손을 올렸다. 한 문장 쓰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한 문장 쓰고 가지를 썰어 소금 뿌리고, 한 문장 쓰고 죽순 정리해 양념해 냉장고에 넣고, 한 문장 쓰고 우무와 두부면 꺼내 물을 빼주고, 하다 손을 노트북에서 내려놓았다. 


이러다 글도 김밥과 만두 재료도 준비가 안 될 것 같아 노트북을 닫고 요리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직업은 못 속이나, 역시 나에겐 글보다 요리가 먼저인 것 같다.    

  

먼저 김밥 재료

올봄에 채취한 죽순은 삶아 냉동고에 저장해 놓고 꺼내 먹는다. 죽순을 좋아하지 않는 동생을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요리해 주는 데 오늘 해줄 고추장구이는 처음 해주는 것 같다.

먼저 녹인 죽순의 물기를 꽉 짜주고 길이로 찢어준다. 여기에 고추장 1T, 고춧가루 3T, 마늘 1/2t, 생강즙 1t, 간장 2T, 물엿 1T, 설탕 1/2 넣고 조물조물 무쳐준다.

두부면은 물기를 빼주고, 뜨거운 물에 데쳐 수분기를 한 번 더 빼준다. 간장으로 색과 맛을 내고, 마늘과 생강즙으로 콩 특유의  맛과 냄새를 잡는다.

달걀을 6개 풀어, 따듯하게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얇고 넓적하게 부친다.

단무지와 우엉은 찬물에 넣어 짠맛을 빼고 꼭 눌러 짜서 물기를 없애준다.


음. 재료 준비는 마쳤고, 다시 식탁에 앉아 옆집 아주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써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 당시엔 황당하고 어이없던 귀촌인들이 행태를 보면 귀촌인인 나도 화가 났었다. 글 마무리를 짓고 다시 한번 읽어 보며 흥분이 올라오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커서를 움직여 발행을 눌렀다. 16시 30분이면 한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핸드폰 스크롤 놀이를 시작했다.

https://brunch.co.kr/@ginayjchang/95


17시다.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센 불 위에서 철판을 달구기 시작했다. 따뜻해진 철판을 확인하고, 불 세기를 센 불로 조절한 다음 양념한 죽순을 철판 위로 올렸다. 센 불에서 불맛이 입혀진 죽순을 뒤적거려 가며 약불에서 꼬들꼬들하게 익혀주고, 센 불로 올려 다시 한번 불맛을 입혀준다.

두부 면을 한번 더 짜서 수분을 제거한다.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마른 팬에 올려 재빠르게 볶기 시작한다. 탱글탱글하다는 느낌이 들면 끝이다.

넓적하고 얇게 부친 달걀은 돌돌 말아 가늘게 채를 썰어준다.

모든 재료를 쟁반에 담아 김밥을 말 준비를 다.    

  

동생 두부와 경태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 나왔어.”

“누님 저도 왔어요.” 경태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밝다.

“저는 뭘 할까요?” 요리하고는 거리가 먼 경태가 도와주려는지 손바닥을 쓱쓱 비비며 주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단 앉아있어. 두부가 산책에서 돌아오면, 너희 둘은 만두를 만들면 됩니다.”

나는 두부가 사 온 돼지고기를 미리 준비해 둔 만두소 재료가 담긴 볼에 넣고, 모든 재료가 잘 섞이도록 주물러주었다. 이젠 만두소 준비도 끝냈다.

김치냉장고에서 끓여 놓았던 육수를 냄비에 붓고, 감자를 썰어 넣어 감잣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마늘 1/2t와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달걀을 풀어 감잣국에 넣어 휘저어주었다.


“누님 매일 이렇게 요리해서 두부씨 밥 먹이는 거예요?”

“요즘 식단 관리해야 하니까 더 신경을 쓰고 있지. 저것이 복에 겨워 이렇게 해줘도 불만이다. 라면 못 먹게 한다고.”

“저 같으면 감사하게 먹을 텐데.”

“두부 기숙사 보내고 넌 나랑 살자.”

경태는 집밥이라곤 우리 집에 와야 맛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기숙사에 사는 경태는 계약을 한 식당에서 세끼를 다 해결해야 하고, 이주에 한번 가는 본가에서도 반찬을 사다 먹는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픈 아버지를 보살피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데다, 직장까지 다니는 그의 부인은 반찬을 만들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경태를 불러 밥을 먹인다.


다 된 솥밥을 볼에 퍼 담고 깨, 소금 그리고 참기름을 넣어 골고루 비벼준 뒤, 김 위에 올렸다. 단무지를 놓고 죽순 고추장구이, 두부면, 달걀, 우엉을 올려 돌돌 말아 썰어 산책에서 돌아와 만두를 만드는 두부와 경태에 입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언니 내가 먹은 죽순 요리 중 제일 맛있는 것 같아. 김밥 맛있다.”

“누님 이런 김밥도 있어요? 이런 건 처음 먹어봐요. 두부씨는 좋겠네.”

“나도 처음 먹어봐요.” 두부가 만두를 열심히 싸면서 오물오물 잘도 받아먹고 있다.

“사찰 김밥이라고 보면 돼. 절에선 마늘을 안 넣는데 오늘은 좀 넣었지. 들어있는 재료가 단백질이 많은 재료거든. 너 좀 아프지 말라고! 고지혈증 어떻게 할 거야?”

난 고개를 돌려 두부를 쳐다보는데, 볼 줄 알았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내린다.

“두부 건강 좀 챙기라고! 너 역류성 식도염! 응. 배 속에 있는 용종은 어떻게 할 거야?”     

 

조용히 만들어준 김밥이 맛있다고 먹어주는 동생들이 예쁘다. 다 큰 어른들이 이럴 땐 제비 새끼로 보인다.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아야 할 텐데.   

   

그나저나 경태랑 얘기를 좀 해야 하는데 언제 말을 꺼내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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