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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11. 2023

언니의 뻔한 잔소리

행복한 밥상

오늘 저녁에 밥 약속이 생겼네.


어제가 말복이어서 그런지 뒤늦게라도 보양식을 먹자는 지인의 연락이야.

얼마 전부터 나랑 동생이 식단 관리 시작해서 외식은 피했는데, 갑자기 유혹의 손길이 많아지네. 뭔가 하려고 하면 나오라는 사람도 많아지고 찾는 사람도 많아져, 참 아이러니하지.


굳이 안 가도 되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래. 한 번쯤은 불편해도 ‘네’하고 나가봐야 하는 일도 생기는 거지. 그런데다 ‘오리백숙’이래. 없는 돈도 얹어주고 먹는다는 오리라 사양은 절대 못 하지.


하긴 저번 주에도 보양 닭 코스를 거나하게 차려진 식당에 갔었는데. 사실 그날은 진짜 나가기 싫었거든.

도움을 받았던 분이라 밥이라도 같이 먹어줘야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싶어 나가긴 했지만, 역시 밥은 자고로 편한 사람하고 먹어야 소화도 잘되더라.

상은 거했어도 뭘 먹었는지 모르겠고 소화도 안 되고. 


다행히 전리품으로 테이블 위에 있던 달걀 몇 개를 몰래 가방에 담아 온걸, 식탁에 올려놓으니 마음이 풀리더라. 내가 삶은 달걀 좋아하는 거 알지? 그거라도 가져와야 나갔다 온 의미가 있지. 달걀이 없어서 가져왔겠어! 창피할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리 먹으라고 깔아 놓은 거였는데. 사람 마음 다 똑같아.  

   

여튼 한국 사람들 보양식 참 좋아해. 나도 좋아하지, 싫어한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야.


한 25~30년 전이었나? 한참 보양 관광 많이 갔었는데. 갔다 와서 아픈 사람 많았었지. 과유불급이라고 알지? 논어 선진 편에 나오는 얘기잖아, 한자에 약한 내가 이걸 다 기억한다.

이 정도면 차라리 모자란 것이 낫다는 내 지인의 경험에서 알 수 있었.


내가 아는 분이 90년대 중국 보양 여행을 갔다가 물개 거시긴가? 곰쓸갠가?를 먹고 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병원에 실려 갔잖아.

그동안 하도 술을 많이 드셔서 간이 안 좋아졌거든, 그래서 보양 음식으로 치료해 볼까 하고 이것저것 많이도 드셨던 모양이야.


그런데 이 보양식을 먹어도 너무 많이 먹어서 간이 해독하느라 마구마구 달렸나 봐. 도대체 뭘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조리가 되지 않은 걸 먹은 것 같아.

곰 몸에 빨대 같은 것도 꽂아놓는다며? 그런 불법적인 걸 깨끗한 상태에서 채집했겠어? 비위생적이니 바이러스에 패혈증까지 동반할 수 있다는 거지. 결국엔 간경화인가 간암 인가로 몸이 많이 망가졌더라.

술을 그렇게 드셨는데 위는 좋았겠니?

맞다 술이랑 같이 먹었다고 술 자랑도 했었다.     


우리나라 식당 가봐라. 곰탕에 부추 넣어주면서 부추의 효능이 어떻다며 여백 없이 벽에 붙여 놓는 거. 헛개나무 효능, 능이 효능, 콩의 효능, 우슬의 효능 이런 식당만 다녀도 음식 재료 박사 되겠어. 아줌마들 가장 많이 보는 TV 프로그램이 뭐야? 미스터 트롯 빼고 건강기능식품 관련 프로야.


어제는 홍삼, 오늘은 새싹보리, 내일은 장어, 그다음 날은 블랙마카 그리고 소연골, 노루궁둥이, 알로에, 도라지, 귀리, 민들레, 렌틸, 병아리콩, 석류, 클로렐라, 굴, 아마, 치아시드, 케피어, 컴프리 ...

와! 많아도 진짜 많다, 내가 말하는 건 빙산에 일각일 뿐인데.


모임 가서 들어보면 모두 식품 박사야 박사. 게다가 건강보조식품과 건강기능식품까지 모르는 게 없다니까. 

끼니마다 몇 가지만 골라 식탁에 올려놓으면, 밥을 안 해도 건강하게 살겠어.

그래서 너도 단백질 타 드신다고 사놓고 안 드시는 거 아닙니까!      


정말 TV나 SNS에서 알려주는 건강에 좋은 것들만 먹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신문에서 본 것 같은데, 너무 비슷한 건강식품을 과하게 먹으면 식욕부진이나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다더라.

왜 의사와 영양사가 있겠어?


그래 맞아 뻔한 얘기야. 그런데 너희 집에 통에 들어있는 보조식품이나 기능식품을 다 꺼내 봐. 그것만 먹어도 배부를 것 같지?        


내 말은, 내 입맛이야라며 가공식품 드시고, 스트레스받는다며 폭식으로 살찌우시고, 다시 살 뺀다고 단식, 그러다 기운 없으면 건강 보조 식품이나 기능식품으로 때우려는 루틴은 버리라는 거야.

건강한 식습관을 당장 가지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다만 한 끼라도 잘 챙겨 먹었으면 하는 거지.


내 너를 생각하는 나이 먹은 꼰대 아니겠니.      


그래도 예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끼는 식구들이 모여 앉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었는데.

공부하는 애들은 조금 더 잔다고 아침도 거르고 나가지. 학원 간다고 잘 때나 들어오지.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식습관은 꽝이 된 거라고.

온종일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다고 다 서울대 가나? 운동도 하고 식구들하고 둘러앉아, 한 끼 정도는 이야기하며 나눠야 하는 거 아니야.


나랑 안 놀아준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습관이란 무서운 거더라.      


사 온 반찬이라도 통째로 놓지 말고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아보고. 

계란말이인지 오믈렛 뭉쳐 논건지 모를 엄마의 정성 하나 만들어서. ‘

얘들아, 오늘은 학원 가지 마. 같이 밥 먹자.’하고 큰소리쳐.

그리고 남편 불러들여 식탁에 둘러앉아보는 건 어때?


잔소리는 이만하련다.

네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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