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냉장고를 열어 주문한 닭이 잘 배달되었는지 확인을 했다. 다행히 튼실한 닭 6마리가 하얀 비닐봉지에 쌓여있다.
매 수업, 요리 수업 재료를 웹 주문으로 한다. 재료 항목을 미리 결재를 받아야 하는 데다, 학교 카드로 구매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부득이하게 인터넷 구매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집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이리저리 웹 쇼핑하며 재료를 구매하면 편하지 않냐고 반문을 한다. 하지만 나에겐 재료를 일일이 확인하지 못해 질이 좋지 않은 재료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일이 더 힘들다.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운영되는 요리동아리라 택배비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다. 차라리 지금까지 지불한 택배비로 더 좋은 재료를 구매하거나, 소고기나 두어 근 끊어 고추장찌개라도 한번 가르쳐줬더라면 마음이 무겁지 않았을 것 같다.
오늘도 요리 동아리 팀장인 재범이가 아이들과 같이 내가 전화로 설명한 대로 준비를 잘해주어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게 해 줘 고마웠다. 난 나머지 재료를 준비하고 냉커피를 한잔 마시러 탕비실로 향했다.
커피를 내리며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는 사이 동아리 담당 보라 선생님과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 그리가 숙제해오지 않아서, 요리 수업에 조금 늦게 갈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올해 학기 초, 숙제를 안 해온 동아리 아이들은 수업 후, 남아서 숙제를 다 풀고 요리수업에 오는 규칙을 만들었다. 숙제하지 않던 버릇이 남아 있는 3학년 재범이와 그리 그리고 래도가 학기 초에 한 두어 번 실수했지만,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그리고 2학기 들어 그리가 처음으로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요즘 애들이 문제를 풀지 않거나 숙제를 안 하다가도, ‘요리 선생님께 이른다.’ 하면 못 풀던 문제도 푼다니까요.”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오늘따라 부드럽게 이야기를 한다.
“수업을 먼저 따라가야죠. 숙제 다 하면 보내세요.” 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하여튼 요즘은 요리반 안 보낸다고 하면 애들이 말을 잘 들어 수업 분위기가 좋아요.” 난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피하고 싶다.
“저 보조 선생님이 기다려서 가 볼게요.” 커피 두 잔을 들고 탕비실을 나왔다.
동아리 보조 선생님인 김 선생님과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방울이가 들어왔다.
“선생님 우리 백숙해요?” 눈이 동글동글해진 방울이가 날 바라본다.
“아니, 저번 주에 얘기했듯, 오븐 통구이하고 치킨커틀릿, 닭볶음탕 할 건데. 왜?”
“닭이 통으로 왔어요.” 하며 냉장고 문을 열고 닭을 가리킨다.
“하하하 오븐 통구이라니까.”
“아~ 그렇구나. 선생님 종료하고 올게요.”라더니 달려 나간다.
무슨 일인지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닭이 모조리 통으로 왔어요.” 재범이와 래도 그리고 우스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닭이 잘 못 배달된 것 같다는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방울아 선생님이 뭐라고 했지?”
“오븐 통구이 한다고요.” 난 알고 있지라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방울이.
“닭볶음탕은요?” 우스가 물어본다.
“너희가 잘라서 만들어야지. 그런데 쟤들은 동아리도 아닌데 왜 온 거야?”라며 커피를 한 모금 길게 쪽 빨아 들이켰다.
“얘들도 궁금하다고 우리 따라왔어요. 우리가 잘라요?”
“살아있는 닭 잡아 올 걸 그랬나? 얼른 준비합시다.”
아이들이 웅성웅성 댄다.
너희 선생님은 이상하다는 말부터 닭털 뽑을 뻔했네, 그럼 물 끓여야 하냐는 둥, 시끌시끌하다.
“손질해 씻어두는 건 끝났지?”
“네.” 아이고 우렁차다.
“일단 허브는 1학년이 다지고, 재범이 마늘 다져주세요. 닭은 누가 씻을까? 그래 우스. 나머지 분들은 닭볶음탕에 들어갈 채소를 썰어줍니다,”
“얘들아, 모여봐. 여기 닭이 누워있습니다. 버터와 허브, 다진 마늘, 소금, 후추를 잘 섞어 줍니다. 그리고 살과 껍질 사이에 허브·갈릭 버터를 발라주는 거야. 요렇게 잘 마사지해 주면서. 재미있겠지? 누가 해볼래?” 우스와 래도가 손을 번쩍 든다.
“우스 먼저 하고 다음에 래도. 그리고 여기를 보시오. 도마에 닭을 올려요. 요기, 요기, 요기, 요기 관절이야. 반대로 꺾는다.”
우두둑 소리 내며 축 늘어진 닭을 보자 아이들 얼굴이 천차만별이다. 우웩 소리를 내는 녀석, 헉!, 오 예!, 어머머, 꺾였어! 꺾였어! 하며 아이들의 머리가 닭을 보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한다.
“자자 이제 잘 봐. 관절에 칼을 살짝 가져다 대면. 짜지잔 쉽죠?”
“우와~ 우아~ 우아~” 아이들이 연신 감탄의 소리를 내뱉는다.
“팔과 다리를 떼어내고 몸통이 남지. 이 몸통에서 닭 안심과 가슴살을 분리할 거야. 자 봐. 뼈와 살 사이에 칼을 넣어서 살살 떼어내는 거야. 달랑달랑 붙은 요놈은 안심 그리고 가슴살. 어때? 해볼래?”
“네. 네. 네.” 각자 자리로 돌아가더니 도마와 칼을 챙겨 자리를 잡는다. 난 닭을 반으로 나눠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선생님 닭 마사지 끝냈는데요.” 버터가 범벅이 된 손을 들고 우스가 헤헤하며 웃고 있다.
“그럼 오븐에 넣을까? 팬에 로즈마리 가지와 타임, 오래가노를 깔고 그 위에 닭을 올리는 거야. 그리고 오븐에 들어갑니다. 이제 우스씨 닭을 분리하시지요.”
갑자기 조용해진 아이들은 초집중 중이다. 순서대로 닭을 분해하고 채소도 정갈하게 썰어 모든 준비를 마치며 뿌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으스댔다.
“자 이제 솥 밥을 안쳐주세요. 닭볶음탕 할 친구? 치킨커틀릿 할 친구?”
“저요. 저요.”
닭볶음탕에 들어갈 고춧가루, 고추장, 마늘, 생강, 간장, 설탕, 후추 등 재료를 챙겨 오고 그 많은 닭과 채소를 버무려 탕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아이들이 돈가스를 한번 튀겨봤다고 알아서 척척, 밀가루 묻히고 우유를 넣어 풀어놓은 달걀에 담갔다 꺼내 빵가루를 꼭꼭 누른 치킨커틀릿을 튀길 준비를 마쳤다.
“얘들아, 이렇게 살짝 프라이팬에 구운 커틀릿을 오븐에 넣으면 기름이 살짝 빠져 더 바삭해.”
오븐 통구이가 완성되어 오븐에서 꺼냈다.
아이들이 냄새를 맡더니 환성을 지르며 다가온다.
“자 이제 잘라 드리겠습니다.” 집게와 칼을 들고 조각조각 골고루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잘라 아이들에게 주었다. 두 마리를 게 눈 감추듯 없애버리며 바삭바삭한 닭 껍질을 찾아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