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대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생의 전철을 밟고 지낸 꼰대 마냥 ‘그때는 말이야.’ 하며 아이들이 작년 한 해, 힘들었던 경험담을 후배들에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웃기기까지 하다.
“언니 그만둬! 언니는 좋은 일이라고 여기저기 부탁을 하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선 들쑤시고 다니는 것밖에 안 돼!”
정말 그럴까?
그래, 힘없는 귀촌인이 지역민도 신경 안 쓰는 아이들 일을 도와달라 사정하며 돌아다니는 건 오지랖일지도 몰라.
작년 봄, 중학생들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대로 된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귀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이 녀석들의 대견한 생각에 청을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학생교육원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미래 도전 프로젝트’에 지역 요리 축제 참가와 요리대회를 목표로 계획서 만들어 제출하고, 당당히 선발되어 요리동아리를 개설됐다.
“계획을 세웠으면 노력하고 끝을 맺어야겠지. 꼼수는 없다. 힘들더라도 노력하자!”라며 아이들의 도전을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요리 수업은 시작됐다.
허황된 계획이라며 못마땅해하는 선생님들도 있었지만, 칼 한번 잡아보지 못한 아이들이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선생님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계획은 바뀔 수 있다며 요리 축제 참가를 반대하시는 선생님들께, 학교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으면 실행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말씀드리고, 고개 조아려 설득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지역 요리 축제, 작은 주전부리관 부스에서 배추 빵과 쌀 떡꼬치 그리고 낙지. 밤 호박죽을 연일 매진을 기록, 판매했습니다. 고맙게도 3학년 아이들은 요리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저는 아이들이 연일 음식 판매대에서 매진했고, 요리대회에서 동상을 받은 일이 아니라, 축제 준비 과정과 그 뒤 일어난 아이들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잠을 자고 숙제를 안 해오던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는다.
자기밖에 모르고 나눠 먹지 않던 아이들이 서로를 챙긴다.
이제는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궂은일을 미루던 아이들이 미루지 않는다.
선후배의 정이 돈독해졌다.
이런 마음이 모여서인지 시험 점수 50점만 받아도 칭찬받던 아이들이 100점도 받아온다.
더욱 기특한 건 지난 자신의 안일했던 일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반성하는 자존감 높은 아이들이 됐다.
또한 일부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었어요. 안 했던 거지. 요리 선생님에게 이른다고 하면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 서진 선생님 대단하십니다.”라고 칭찬하시거나
어두침침한 얼굴로 다니던 녀석들의 낯빛이 밝아졌노라며 “애들이 1년 새 밝아지고 명랑해졌어요.”하고 짧은 시간 동안 변한 아이들에 대해 놀라워했다.
이런 참 교육이 계속되어야 한다면서 모 선생님은 나에게 본인의 교육철학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를 바라다보니 더욱더 동아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아이들도 그러했나 봅니다. 아이들이 축제에서 판매한 금액과 요리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모아 100만 원을 학교에 기부했다. 그 덕인지 올해, 요리동아리는 살아남았다. 예쁜 1학년 신입 부원들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지만, 1학년 신입생들이 입학도 전에 요리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며 교장 선생님께 부탁했단다.
지금 우리 동아리는 경력자 선배들은 후배들을 잘 끌어주고, 후배들은 선배들을 잘 따라주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안하다. 올해는 예산이 부족해 3학년 두 명만 대회에 나가야 할 것 같다. 너희는 내년에 도전해 보자!”라고 작년 2학년 아이들과 손가락 걸며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예 요리 축제에도 나가지 못하게 됐다.
작년에 받았던 군 지원 예산을 올해는 받지 못해, 축제 참여는 힘들다는 학교 측 설명이었다. 그래도 요리 축제에 나가고 싶다면 작년처럼 자원봉사 활동하는 마음으로 동아리 수업을 해 달라고 부탁이 아닌 선택권을 줬다. 그리고 손 많이 가지 않는 전이나 김밥 같은 간단한 간식을 만들라는 주문과 함께. 선생님들과 저의 공방전은 결국 축제에 나가지 않겠다는 결론을 냈다. 이 결정에 아이들은 실망하고 선생님들은 안도하는 듯 보였다.
작년엔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주 일회 3시간 수업이었지만 거의 매일 출강하고 주말까지도 아이들과 대회 준비와 축제 음식을 준비했다. 그 때문에 당연히 생업은 포기해야 했다. 이제 와 후회되지만, 나의 오지랖이 아이들에게 허무를 가르쳐준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은 아프다.
그러다 군청 회의에 참석할 일이 군회의실 자리에 앉아 회의록을 보고 있다가 기획실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군 기획실장님께 올해는 요리 축제에 나갈 수 없는 우리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군이나 기업을 통해 후원을 받을 방법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올해에도 축제에 나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며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하시는데 기뻤다. 그리고 축제 총괄팀장님과 관광 위생팀 관계자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에 주전부리 부스를 잘 운영해 준 학교에 축제 참가 의사를 물어보았더니 거절했노라 말해주었다. 학교 측에게서 들은 바가 없어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없다. 올해가 안되면 내년이라도 아이들이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없는지 물어봤다. 다음날 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군 교육재단을 소개받았다.
난 의아했다. 나 같은 일개 강사에게도 하루 만에 후원기관을 알려주는데 학교에서는 왜 안 된다고 했을까?
작년 동아리 담당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서진 선생님, 모든 선생님이 저를 피해요. 내년 동아리 맡아달라 부탁할까 봐. 그래서 저도 학교생활이 힘듭니다.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요? 올 축제에 나간 일도 힘들었다고들 하셔요.”
그래도 작년엔 동아리 담당 선생님 덕에 견딜 수 있었는데.
네! 나도 이해한다. 수당도 나오지 않고, 인사고과에도 반영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건, 학생들을 바른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평정심으로 독려하며 가르치는 일이 어렵다는 이야기고, 그만큼 선생님을 존중하는 의미로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의 마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선생의 정의? 교육의 정의? 는 무엇일까?
나는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의 변화하는 과정과 목표가 없던 아이들이 목표를 세우는 것을 보면서 뿌듯함으로 견디는 것 아닐까!
내 생각일 뿐일까?
아니면 내가 포기하고 선생님들의 뜻에 맞춰, 아이들을 위한 수업이 아닌 선생님 입맛에 맞는 수업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