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김치로 요리하는 전라도 아이들

산천 요리생 마지막이 아니길

by 서진

김치 뚜껑을 열자 아이들이 우웨엑 소리를 내며 “김치가 상했나 봐요?”


새 학기가 시작하고 냉장고를 열자마자 깜짝 놀랐었다. 작년 아이들이 학교 행사로 진행했던 김장, 미처 처리 못 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던 비닐에 담긴 김치가 연습실 냉장고에 처량하게 남아있었다. 이미 양념이 골고루 발리지 않아 상한 김치와 김칫국물이 새어 나와 맨 아래 신선칸까지 굳어있었다.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청소해 두었던 냉장고가 엉망진창, 쓰고 남은 재료들이 섞어가며 발생한 이상한 냄새까지 제거하느라, 아이들과 나는 애를 먹었었다. 아이들과 그나마 온전하지 않을까 싶은 봉지마다 들어있는 김치를 꺼내 김치통에 넣어 위생 봉지를 덮어주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전라도 김치에 골마지가 낀다지만 유독 하얗게 뒤덮여있었다. 다행히 곰팡이는 아니었다.

“씻어서 쓰면 되겠다. 상하지는 않았네.”

“선생님 이런 것도 먹어요. 곰팡이 아니에요?”

“곰팡이처럼 보일 수 있는데, 만져봐 봐. 물먹은 종이 같지? 효모 덩어리야.”

“먹어도 돼요?”

“응, 먹어도 돼. 오늘 김치볶음밥 먹을 거다.”라고는 했지만, 아이들 얼굴에 ‘저걸 어떻게?’라고 쓰여 있다.

“자 봐봐. 김치의 새로운 변신. 진짜 김치볶음밥 해줄게.”

커다란 볼에 김치를 담고, 그리에게 물에 깨끗이 씻어 양념을 다 털어내라 했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로 휘휘 흔들어 씻고 있다.

“자 그리야, 더러운 게 아니야. 이 녀석 집에서 김치통 한 번도 안 열어봤지! 김치는.”

커다란 볼을 하나를 더 가져와 물을 받아 씻은 김치를 담가 사이사이에 끼인 양념을 걷어내고, 씻어내기를 반복해 깨끗한 묵은지만 채반에 올려 남겼다.


꼭꼭 짜낸 김치를 아이들 입에 넣어주었다. 우물쭈물하던 아이들이 마지못해 받아먹고 오물거린다.

“엉! 우리 집 김치 맛이 나는데. 안 상한 거네.”

“유독 전라도 김치엔 젓갈이나 멸치·사골 같은 육수에 풀을 쑤고 온갖 재료 들어간 되직한 김치 양념을 만들어서인지, 이상하게 선생님 고향에서 만드는 김치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 것보다 골마지가 많이 끼이는 것 같아. 상한 건 아니야. 너희 집 김치통도 열어보면 그럴걸?”

“다른 김치는 어때요?”

“전라도 김치보다 맛이나 향이 덜 강한 편이지. 다음에 절에서 만드는 김치 해볼래?”

“네~”


밥이 안 되는 요리 수업하는 날이면 우리 집에서 가져오는 재료들로 아이들 저녁밥을 챙긴다. 3학년 아이들이 과자를 만들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김치볶음밥 준비를 하고 있다.

“얘들아, 햄도 넣을 거야?”

“네~~~~”

“그럼 양파와 마늘 다지고, 햄도 썰고, 냉동시켜 둔 썬 대파도 꺼내오자.”

음식 축제 참여 경험이 있는 3학년 형님들은 나와 2년째 요리를 같이하고 있다. 이젠 재료만 이야기해도 척척 꺼내 밑 준비는 식은 죽 먹기 마냥 하고 있다.

“선생님 밥해야 하는데요.”라며 밥을 올리는 재범이.

점점 능구렁이가 되어가는 래도가 “그리야 넌 양파를 썰 거라 난 햄을 썰게.” 하며 동생들 밥 준비를 하고 있다.

“너희들 싸갈 거야?”

“네~”라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재료를 더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 옆에서 페이스트리에 관심이 많은 1학년 여자 후배들을 2학년 부팀장인 우스가 도와주며, 보조 선생님과 오늘에 요리리 '피칸 버터쿠키'를 굽고 있다.


집에서 가져온 목살을 꺼내, “누가 구울까?”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저요!”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오는 재범이, 이 녀석은 고기를 보고 팀장이라는 본분을 또 잃어버렸다.

“넌 아이들 지휘해야지?”라는 말에 아이들을 둘러보는 재범이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네가 해라.’라는 신호를 준다.

“선생님 프라이팬을 준비할까요?” 느림보 재범이의 몸동작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집게 그리고 가위 게다가 접시까지 준비를 끝낸 재범이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준비가 됐습니다.’라는 몸짓으로 나를 향해있다.

“하하하 먼저 프라이팬 달궈야지.”

집게와 가위를 놓고 불을 켜 프라이팬을 다시 올리고 뜨거워질 때까지 눈을 깜빡이며 기다리는 녀석이 어찌나 귀엽던지.

“이제 됐다. 고기를 올리고, 프라이팬에 닿은 고기 밑부분이 익어가는 게 보이지?”

“네~에에. 하얗게 변하고 있어요.” 녀석이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본다.

“그리고 물 같은 것이 위에 송글송글 올라오지.”

“네~에에.”

“뒤집어!”

잽싸게 뒤집는 재범이가 “우와 익었다.”

“그리고 다시 육즙이 고기 위로 올라오면 뒤집어서 살짝 익혀서 끝낸다.”

"지금요?"

"기다려."

"지금요?"

"기다려봐."

"지금이요오오오?"

"지금이야!"

노릇노릇한 고기를 보고 재범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이제 볶음밥 하려 준비를 서두르는데 1학년 아이들과 우스가 다가온다.

“형님들 글레이징 해봐요. 볶는 건 우리가 하고 싶어요.”

그리하여 바통터치.

잘 썬 김치에 고춧가루, 간장, 다진 마늘과 생강과 후추를 넣고 간을 한다.

먼저 햄을 노릇하게 구워 그릇에 담고, 양파를 볶는다.

양파를 볶던 팬에 양념한 김치를 넣는다. 수분이 어느 정도 날아갈 때까지 볶고 또 볶아준다.

다시 햄을 넣고 볶은 후 간을 본다.

아이들이 약간 단맛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아 설탕을 넣어준다.

달걀을 풀어 김치 볶음에 넣어 부드러운 맛을 준다.

그리고 잘 지어놓은 솥밥을 팬에 투하.

뒤집고 볶고 부수고 흘리고 튀고, 온 힘을 다해 준비를 한 결과.

돼지 목살을 올린 김치볶음밥이 완성됐다.


오늘도 테이크아웃까지, 모든 재료 소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