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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Oct 29. 2023

오늘밤엔 탱자탱자 노는 꿈을 꿀 거야.

feat. 탱자 향을 품은 불고기 덮밥

부스스 일어났다.

아니 몸은 그대로 누워 눈만 떴다.     


길동이도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든다. ‘이제야 일어난 거야. 어서 몸도 일으켜. 난 준비됐어!’라는 듯 뱅글뱅글 돌며 꼬리를 파닥파닥 하고 있다. ‘아 새만 파닥거리는 게 아니구나.’

이불을 끌고 나와 거실에서 떡실신해서 자던 두부가 “길동아, 알았어. 그만. 그만. 일어날게. 그래 나가자.”라며 꼬리를 뱅글뱅글 돌리는 길동이의 엉덩이를 밀어낸다.

“더 자면 안 되겠지.”하고 두부를 바라봤다.

“언니 일어나야 하지?”라며 다시 쓰러진 두부.

“두부야, 탱자 얼마나 되지?”

“세 소쿠리.”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일단 쌀부터 씻자.”라는 소리에 이불을 돌돌 말아 몸에 휘감고 괴로워하는 두부는 “아웅. 아웅.” 소리를 내며 구르고 있다. 그런 동생이 길동이의 엉덩이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잠옷 위에 외투만 걸친 채로 나갔다.     


불고기 양념을 해볼까.

사과, 무 그리고 양파를 푸드프로세서에 갈고 즙을 짠다.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는다.

조선간장과 어간장을 넣어 섞는다.

후추도 넣는다.

아무래도 오늘 달달한 음식이 무척 당길 것 같아 설탕을 조금 넣어주고, 매실액도 넣는다.

불고기감을 넣어 조물조물 간이 잘 밸 수 있게 조물조물 무쳐 통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일단, 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

커피포트에 불을 확인하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차가 놓인 선반 앞에서 잠시 주춤거리다, 팥 차를 꺼냈다. ‘그래 차를 마시자.’

길동이와 돌아온 두부에게 차를 권하자 고개를 매몰차게 저으며 다시 누우려 한다.

“두부야, 쌀 씻어.” 그래야 잠이 깨지.

쌀을 씻던 그녀가 “언니 식탁에 비닐 깔고 해야겠지?”

“귀찮다 그냥 하자.”

그렇다. 두부도 나도 너무 피곤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일이 많아, 날짜는 헤아리지 못했지만, 가을, 꽤 긴 시간을 여름작물을 걷고 텃밭을 정리해 배추와 마늘, 쪽파, 대파를 심고, 당근, 무, 시금치, 상추, 청경채, 유채 씨를 뿌렸다.

게다가 이틀을 꼬박 볏짚을 신들린 듯 꼬느라 온몸이 뻑적지근하다.

    

두부가 탱자 한소쿠리를 들고 온다.

“언니 어떻게 해야 해?”

“일단 작은 알맹이들을 골라서 따로 담아줘. 말릴 거야.”

“진짜 말릴 거야? 노랑집 아저씨 말대로 한 달은 걸리겠어.”

“아마, 찌고, 말리고, 찌고, 말리고 돌멩이처럼 굳으려면 한 달보다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은 것만 고르려고. 나머지는 네 등분해서 여기에 담아. 씨 빼야지.”     


수세미로 탱자를 하나하나 박박 문질러 닦아 놓았더니 노란색이 정말 예쁘다.


사실 탱자 얘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인상을 쓰던 동생에게 “탱자가 너에게 얼마나 좋은 다이어트 음식이 되는지 알아? 지방 분해해 주지, 콜레스테롤 낮춰주지, 항산화 작용도 하지, 미백과 보습 효과가 좋아 여드름 안 나지, 간에도 좋아. 일단 활성산소 억제해, 신진대사 활발하게 해. 노화 방지 효과도 있데.”라는 말에도 떨떠름하더니, “너 다음 달 말에 ‘자취남’ 온다며? 화장발 받으려면 필요하지 않을까?” 이 말에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피곤하다는 말없이 움직이는 두부.


11월 말에 ‘자취남’이라는 구독자 65.6만 명 유명 유튜버가 우리 집에 온다. 어차피 12월 전에 텃밭과 집 주변 정리를 끝내려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 기회에 두부 다이어트도 좀 확실히 시켜보고, 피부관리도 할 요량이었다.     


반정도 정리가 끝나갈 무렵 배가 슬슬 고파왔다.

“두부야, 밥 먹고 하자. 힘이 없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놓고 냉장고로 달려간다.

“언니 버섯하고 파 썰어?”

난 솥에 불을 켜고, 양념이 된 불고기감을 꺼내 뒤집었다. “딱 너 좋아하는 맛이다. 냄새가 좋은데.”

밥을 뜸 들이는 사이 뜨겁게 달궈진 철판에 불고기를 올렸다. 두부가 예쁘게 썰어준 버섯을 고기 주위에 돌리고 파와 적양파는 고기 위에 올려 굽는다. 그리고 화룡점정, 씨를 뺀 1/4 쪽 유자를 가져와 즙을 뿌려준다.

“언니 유자즙을 넣어?”

“응 그럼 고기 특유의 비릿함도 완벽하게 없애주고, 향도 좋아지지. 고기를 씹을 때마다 유자 맛이 난다기보다 향긋함이 입 안을 돌아다녀. 일단 드셔봐. 원래는 안 익었을 때 땄어야 하는데.”     

오늘처럼 정신없는 날, 하얀 쌀밥 위에 불고기를 올려 덮밥으로 완벽하다.

“두부야, 맛이 어때?”

“유자 맛이 강해 고기 맛이 안 날 줄 알았는데, 향이 고기를 씹고 난 뒤에 올라오네. 레몬보다 훨씬 좋다.”라며 열심히 흡입하던 두부가 “언니 반 소쿠리는 즙을 짜서 보관할까?”라며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는지 들뜬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러더니 정말 열심히 즙을 짜고 있다.   

 

해는 뉘엿뉘엿하고, 남아있던 탱자는 끝을 보이고 “언니 씨가 너무 많아, 씨 빼다 하루가 다 갔네, 씨가 대두 같지 않아? 이 정도면 콩국수도 해 먹겠다.”라며 중얼거린다. 에고 많이 지치기도 했을 거다.     

탱자 소금을 만들어 통에 넣고, 청도 준비하고,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말린 차대신 간단히 타 먹을 수 있는 차도 만들고, 갓 쪄낸 탱자를 건조기에 넣고 거실바닥에 누워버렸다.     


“언니, 우린 언제 탱자탱자 놀아?”

“겨울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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