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경북 군위 청화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절에서 마음을 다스리겠다는 핑계로 지낸 적이 있다. 다시마국물에 된장을 풀어 제사 후 남은 식은 밥을 풀어 콩나물, 김치를 넣고 끓인 죽에 수제비. 처음 봤을 땐 ‘콩나물 김칫국에 무슨 밥을 죽이 될 정도로 끓여 낸 거야?’라며 한 숟가락 뜨고, 뜨뜻하니 시원하고 칼칼하며 속이 든든한 반 그릇을 더 뜨고 이혼 후 아팠던 마음을 달랬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대구의 한 업체, 식품 개발하며 지내던 곳에서 아침 식사로 잃어버리고 살았던 ‘갱죽’을 다시 만났다. 먹고 또 먹고 그날의 따뜻하고 든든했던 기운이 돌아오며, 나의 레시피 중 하나가 되었다.
몇 년 전, 폭설로 길이 얼어 출퇴근길이 난감하던 두부와 난 길동이를 데리고 읍에 있는 나의 작업실에서 지낸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론 그때 국물이 얼큰한 국밥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만들어줬던 기억이 있다.
처음엔 찌푸린 얼굴로 꿀꿀이 죽 같다며 숟가락으로 ‘갱죽’을 뒤적거리던 그녀가 한 숟가락 먹고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하며 다른 반찬엔 손도 안대고 끓여놓은 죽을 다 먹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콩나물·김치 순두부국을 끓이던 날, “전에 언니 끓여줬던 수제비 들어간 죽 있었잖아. 콩나물·김칫국 같은?”이라며 운을 뗀다.
“오오 ‘갱죽’이라고 된장 넣고 끓인 거?”
“그때는 된장 안 풀었었는데! 여튼 뜨끈하게 한 그릇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래 며칠 내로 한번 하지 뭐.”라고 말했는데, 그날이 오늘인가?
직원들과 등산을 갔다 온 두부가 다리를 3번이나 접질렸다며 아프다고 한다. 웬만해선 아픈 내색을 잘 안 하는 녀석이, 온몸이 근육통으로 뻐근하다며 으슬으슬 춥단다.
내가 돌산을 올라가는 것까지는 좋았지, 내려오면서 몇 번을 넘어졌는지 안경태 부장님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 앉아서 울었을 거라며 입에서 침만 안 튀었을 뿐, 작은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언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지?”
“그러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구나.”
따뜻하게 불 올린 장판에 깐 이불속으로 들어가며, ‘이런 날은 바지락 칼국수가 딱 맞는데.’라고 생각하고 두부에게 물어보려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