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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Oct 29. 2023

국밥이야? 죽이야?

'갱죽'을 아시나요?

‘갱시기’로도 불리는 ‘갱죽’은 경상도에서 처음 먹어봤다.    

 

20년 전 경북 군위 청화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절에서 마음을 다스리겠다는 핑계로 지낸 적이 있다. 다시마국물에 된장을 풀어 제사 후 남은 식은 밥을 풀어 콩나물, 김치를 넣고 끓인 죽에 수제비. 처음 봤을 땐 ‘콩나물 김칫국에 무슨 밥을 죽이 될 정도로 끓여 낸 거야?’라며 한 숟가락 뜨고, 뜨뜻하니 시원하고 칼칼하며 속이 든든한 반 그릇을 더 뜨고 이혼 후 아팠던 마음을 달랬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대구의 한 업체, 식품 개발하며 지내던 곳에서 아침 식사로 잃어버리고 살았던 ‘갱죽’을 다시 만났다. 먹고 또 먹고 그날의 따뜻하고 든든했던 기운이 돌아오며, 나의 레시피 중 하나가 되었다.     

몇 년 전, 폭설로 길이 얼어 출퇴근길이 난감하던 두부와 난 길동이를 데리고 읍에 있는 나의 작업실에서 지낸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론 그때 국물이 얼큰한 국밥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만들어줬던 기억이 있다.

처음엔 찌푸린 얼굴로 꿀꿀이 죽 같다며 숟가락으로 ‘갱죽’을 뒤적거리던 그녀가 한 숟가락 먹고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하며 다른 반찬엔 손도 안대고 끓여놓은 죽을 다 먹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콩나물·김치 순두부국을 끓이던 날, “전에 언니 끓여줬던 수제비 들어간 죽 있었잖아. 콩나물·김칫국 같은?”이라며 운을 뗀다.

“오오 ‘갱죽’이라고 된장 넣고 끓인 거?”

“그때는 된장 안 풀었었는데! 여튼 뜨끈하게 한 그릇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래 며칠 내로 한번 하지 뭐.”라고 말했는데, 그날이 오늘인가?    

 

직원들과 등산을 갔다 온 두부가 다리를 3번이나 접질렸다며 아프다고 한다. 웬만해선 아픈 내색을 잘 안 하는 녀석이, 온몸이 근육통으로 뻐근하다며 으슬으슬 춥단다.

내가 돌산을 올라가는 것까지는 좋았지, 내려오면서 몇 번을 넘어졌는지 안경태 부장님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 앉아서 울었을 거라며 입에서 침만 안 튀었을 뿐, 작은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언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지?”

“그러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구나.”

따뜻하게 불 올린 장판에 깐 이불속으로 들어가며, ‘이런 날은 바지락 칼국수가 딱 맞는데.’라고 생각하고 두부에게 물어보려던 순간.

“언니 내가 수제비 반죽할까?” 이 녀석이 먼저 선수를 쳐 버렸다.

“난 바지락 칼국수 먹으러 가자고 하려 했는데. 그럼 집에서 먹을까? 찬밥이 없는데. 반죽만 네가 해.”


아웅~ 조금 늦장 좀 부려 보려 했건만, 일복이 많은가 보다.    

 

콩나물·김치 순두부국과 끓이는 건 비슷해. 하지만 오늘은 맑은 국물이 먹고 싶었던 난, 된장은 풀지 않기로 했어.     

우선 수제비 반죽부터 한다. 잘 들어.

밀가루에 소금을 두 꼬집 넣고, 녹말가루를 2T를 섞는다. 그리고 물을 부어준다.

밀가루 한 컵에 물 1/4컵 정도 하지만 밀가루 보관상태에 따라 약간 다를 수 있어.     

 

그런데 ‘잠깐!’이란 말도 할 겨를 없이 두부가 물을 부어버렸다. 질 것 같다.

역시 질다. 열심히 주물러 물기를 없애보겠다는 그녀는 밀가루를 조금씩 더 넣어가며 정말 수분을 말릴 기세로 반죽하고 있다. 저 정도면 정말 쫀득하고 부들부들한 반죽이 될 것 같다.   

  

냄비에 멸치를 넣어 살짝 구워내고. 여기에 마늘, 대파와 양파를 넣어 노릇함이 더 진해질 때까지 구워준다. 여기에 다시 멸치를 넣고 다시마와 통후추를 넣고 물을 부어 육수를 끓여.

처음엔 강한 불로 다시 약한 불로 줄여 뚜껑을 덮고 향과 맛이 우러나도록 은근히 끓인다.

진한 향이 나는 육수에서 멸치, 마늘, 대파, 양파, 다시마 그리고 후추를 꺼내.     

육수에 송송 썬 김치를 넣고, 씻어놓은 콩나물도 넣는다. 감자도 넣고 싶지만, 이번엔 패스.


얼큰하고 오래 묵은 김치가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칼칼한 정도를 청양고추나 고춧가루를 넣어 조절한다.  

따뜻한 육수에 콩나물을 삶을 땐 냄비 뚜껑을 열고 익힌다. 냄비 뚜껑을 닫으면 어설프게 비릿한 향과 맛이 날 수 있다.


마늘을 넣고, 생강즙은 눈곱만큼.

어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하는 거야. 소금으로 간 할 땐 간장을 살짝 넣어서 감칠맛을 주고.

언니가 좋아하는 순두부 투하.

푹 퍼진 죽을 먹고 싶으면 지금 밥을 넣어야 하고, 아니면 수제비 넣고 나서나, 따로 말아도 돼.


“어떻게 푹 퍼진 죽? 따로국밥?”

“언니, 안 퍼진 죽.”    

 

우리는 수제비부터 넣는다.

“우와 두부야 반죽이 너무 잘됐다. 얇게 쫙쫙 펴져.”

“거짓말 아니지? 약 올리는 거 아니지?”

“진짜라니까! 대신 양이 장난 아닌데. 난 밥은 안 먹어도 되겠다. 하하하”


그리고 밥을 넣고 수제비가 익을 때까지 끓인다.    


식탁에 따뜻한 ‘갱죽’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았다.

한 숟가락 떠 넣는 그녀가 “음 따뜻해, 몸이 풀린다. 반찬이 필요 없네.”     


역시 한국인은 국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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