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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10. 2023

나 요리사인데, 내가 끓인 라면은 맛이 없다네

못난 글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밖에서 하는 일이야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지만, 집안일은 대충 밀어 두고 못 본 척 지나가고 싶은 날.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다리가 구부러지고 무릎이 바닥에 닿으며 몸이 미끄러지듯 업어진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뒹굴뒹굴해 본다.


으슬으슬한 밤에 조금 서 있었다고 감기 기운으로 몸은 늘어져 방바닥만 쳐다보게 되는 날, 그런 날이다. 아니, 솔직히 두부에겐 그만 누워있으라 잔소리하지만, 태생적으로 게으른 나도 매일 늘어지고 싶다.


이런 나에게 다른 사람들은 ‘너무 부지런해. 대충 살아.’라고 말한다. 사실 너무 게을러서, 일이 쌓여있으면 더 하기 싫어 움직이는 것뿐이다. 늘어지게 자고 싶지만 늦게 일어나면 하루가 빠듯해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게 싫고. 먼지 쌓이면 귀찮아 아침이면 일어나 이불 털어 개어놓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머리카락을 줍기 싫어 청소기를 돌린다. 그때그때 치우지 않고 ‘조금만, 조금만.’을 외치다 보면 도둑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게으르다.    

  

아니나 다를까! 겨우 어제 하루 늘어졌다. 그래 오늘까지. 싱크엔 그릇이 널려있고 조리대엔 냄비가 하나, 둘, 셋, 국자에 뒤집게 그리고 물병이랑 집에 있는 컵은 모조리 나와 있는 것 같다. 물 한 잔 마시고 “그래 결심했어! 두부도 회식이라는데, 오늘까지 음! 간단히 먹지 뭐.”라며 슬그머니 싱크대 앞을 비켜 빠져나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꾸리꾸리 이상한 냄새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살피던 내 코는 몸뚱이를 끌고 설거지통으로 향한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지만 섞은 냄새나 구린내는 나지 않는다. ‘아 이걸 다 치우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좀 있다 저녁 먹고 하자’라고 굳게 마음먹고 돌아섰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돌아간 몸 그리고 싱크를 보고 있는 내 눈. ‘그냥 먹고 설거지하지 뭐.’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더 미뤘다간 조그만 부엌 싱크대에서 밀려 바닥까지 쌓일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기운이 목덜미 아래쪽에서 간질간질 올라온다.      


냉장고를 열어봤다. 손님이 오고 난 뒤 냉장고를 열심히 뒤져 먹었나 보다. 밥이 없다.

‘그럼 누룽지?’하며 뒤적거리다 얼마 전에 두부랑 목포 대형 마트에서 사 온 ‘신라면 건면’을 꺼냈다. 물을 끓이며 봉투를 열어 수프와 후레이크를 꺼내 넣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기름 봉지, 꼭 넣으라고 쓰여 있는데 고민이 된다. 짜파게티에 들어있는 올리브유를 넣지 않는데…. 그래도 처음 먹는 맛이니 넣기로 하자.

으. 으. 으. 역시 국물이 짜네! 물 한 컵을 더 넣었다. 물이 부르르 끓어 올라 떡과 면을 넣었다. 면을 한번 뒤집어 주고, 또 한 번 뒤집어 주고, 살짝 들어 올려주고, 달걀을 넣고 끝.


나 정말 귀찮긴 한가보다, 총각김치가 들어있는 반찬통 채 냄비 옆에 두고, 잘라진 무조각과 함께 한 입 호로록. 음~ 면은 괜찮은데 짜다. 김치와 함께 먹어서 그런지 짜다. 그렇다고 김치를 안 먹을 수는 없으니 뜨거운 물 1/3컵을 넣었다. 이제야 맛이 적당하다.      

누가 됐든 나에게 라면을 끓여 달라하면  "진짜?"라고 되묻고 물을 올린다. 그러면 어디선가 두부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안돼!"라며 달려와 날 밀어낸다. 내가 끓인 라면은 이상하게 맹맹하다나.


라면을 굳이 찾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부터 사발면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싫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을 때도 라면보다는 수제비나 떡만둣국, 쫄우동을 주문했는데.

그러다 라면을 먹게 된 건 임신하고부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입을 잡아당기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닥치는 대로 먹어봤다. "뭘까? 뭘까?" 미지의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탐험가처럼 모든 음식을 하나씩 살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 코에 들어온 냄새, 동생이 ‘사발면’을 먹고 있었다. 다른 날 같으면 "냄새나게 왜 집에서 사발면을 먹어."라며 짜증 내고 방에 들어가 먹으라고 했을 텐데,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다 "나도 하나 끓여줘"라고 했었다.

아니 왜? 임신하면 먹던 라면도 먹지 말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사발면에서 특유의 냄새가 싫지 않았다.

지금도 끓이는 라면보다 뜨거운 물을 가득 부은 사발면을 더 좋아한다.  

   

달걀에 소금을 치지 않는 건 기본, 달달하고 고소한 콩고물이나 소가 들어가는 떡보다 가래떡이나 절편을 좋아한다. 밑간이 된 고기구이를 좋아하지 않고 먹을 때도 소스 찍지 않고 구워진 고기만 먹어야 본연의 맛을 느낄 수가 있어 좋다. 달콤한 디저트도 극도로 피곤할 때만 찾을 뿐.

이런 내가 끓이는 라면이 맹맹할 수밖에.


“넌 요리사가 라면도 못 끓여! 봉투 뒤에 적힌 대로 끓이면 되잖아.”라고 지인들이 한심하다는 듯 말하지만, 난 자신 있게 말한다. “짜!”   

그리고 숨김없이 말하자면 요리사가 모든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다. 나도 집에선 내 취향대로 먹고 싶다고!

점심에 먹은 샌드위치, 치즈 한장, 달걀, 텃밭 상추 많이 많이, 소스 NO. 재료 하나하나 맛이 나서 좋다.

요즘 두부와 비슷한 연령대 친구들이 는 식당에 같이 가보면, 맵고 짜고 단맛 나는 진한 소스 범벅이 된 음식을 곁들여 나온 소스에 듬뿍 찍어 먹는다. 재료 맛은 전혀 느낄 수가 없고, 식사 후 물이 너무 땅기고 텁텁해지는 경향이 있다. 매운 요리는 어찌나 매운지 나에겐 착한 맛도 맵다.

이래서일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젊은 성인병, 고지혈증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가까운 두부만 보아도….


시중에 나온 기성 제품들이 어련히 대중의 입맛을 조사하고 맞춰 출시했다 믿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너무 싱겁게 먹는 건지, 아니면 요즘 음식 간이 묵직하게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양념 맛이 아닌 재료 맛은 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두부가 사 온 라면 중 요것은 먹을 만하네. 게으름 부린 덕에 구매 품목 추가.


이제 설거지가 남았구나, 보일러를 온수로 돌리고 닦고 또 닦고, 이래서 그때그때 했어야 빨리 끝나는데, 게으름뱅이 서진은 후회하며 후달거리는 다리를 싱크대에 기대고 가스레인지까지 청소했다.

내친김에 이빨만 닦고 자려했던 계획을 바꿔 샤워하고 머리 풀어헤치고 앉아 차까지 한잔 하며 주말 계획까지 세워본다.


금요일은 만두 귀신이 만두 만들러 오고, 토요일엔 텃밭 정리에 담벼락 칠하고, 일요일엔 삼겹살 파티.      

수업 재료준비.


언제 늘어지게 눕지?

두부에겐 12월이라고 했는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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