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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05. 2023

장조림, 그리운 맛이 떠오르는 건 포근함이 그리운 건데

못난 글

오랜만에 비가 시원하게 온다.

부족한 기술로 찍사를 가장하여 반가운 비를 찍어보려 했지만 역시 실력이…. 하지만 핸드폰 카메라 탓을 해본다.     


부우우욱 뿌쏴아아아 하늘에 구멍이 난 듯, 한 소리와 함께 새벽 비 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누님, 내일은 여기 산천에도 비가 온다는데. 많이 온다니까 조심하고”라며 먼 길을 찾아와 조용히 수다를 떨다가는 동생 녀석이 ‘가물어 걱정이야.’라는 나에게 한마디 던지고 길을 떠났다.


문화재 보수가 직업인 이 녀석은 전국에 있는 절을 돌아다니며 단청한다. 간만에 이 산천에서 3일간 일하고 돌아가기는 호야에게 밥 한 끼 먹여 보내려 했다. 그런 녀석에게 겨우 목살 구워 텃밭에서 난 채소로 겉절이와 쌈 채소를 곁들여주었다.

아침에 콩나물국에 겨우 남아있던 불고기와 죽순을 구워내어 주었는데. 

집엔 잘 갔는지.   

       

‘호야 말대로 드디어 비가 오는구나. 한동안 텃밭에 물 준다고 허둥대지 않아도 되겠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잠들었다.


어제까지 가을이 뭐 이래?라는 투덜거림도 있지만, 따뜻한 날씨에 다시 올라온 새싹이 커 볍씨를 품어 앉은 벼의 품새가 신기하다. 이젠 우리나라도 이모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동네 할머님들이 오며 가며

“이제 고추를 월매나 먹는다고, 걷고 마늘 심기제.”

“토마토를 아적도 따먹는당가? 무는 심깃제?”

“가지 뽑아부러, 겨울배추나 심거.”

라고 하시는 통에 한 달째 고민하고 있다.     


토마토를 뽑아?

강력한 두부의 가지치기 실력에 앙상한 가지만 남아 살아남을지가 걱정이었던 방울토마토. 아 글쎄 기특한 이놈이 아직도 실한 방울토마토를 우람한 팔뚝 같은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한 바구니 가득 따온 방울토마토는 손님 차 안에 간식으로 넣어주고,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웃집도 나눠주며, 우리 집 식탁 위 접시엔 몇 알이라도 항상 놓여있다.     


가지는 어떻게 하지?

이놈이. 아! 이놈이 물건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가지볶음도 되어주고 가지무침, 가지김치, 가지 물김치, 가지냉국, 가지전, 가지튀김, 가지 구이, 가지 만두, 가지와 탱자향을 품은 소스, 오만가지 요리가 되어주는 요놈을 제거하기가 쉽지가 않다.     


고추가 너무 달아!

우리 집 텃밭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고추나무는 모든 병을 이리저리 피해내고 살아남았다. 초록색 고추도 고추지만 빨간 홍조를 띠다 못해 붉게 온몸이 물들어 달큰한 향을 풍기며, ‘내가 얼마나 단지 알아?’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풍성한 고추를 품고, 자태를 유지하며 요리에 향도 주고 색도 주는 일등 공신 중 하나이다.   

   

‘이런 아이들을 뽑아야 한다는 것인가?’ 고민하는 이때 비 님이 오신다.

이 비가 그치면 추워질 것인지 아니면 다시 더워질 것인지가 결정되지 않을까? 라며 비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데 장조림은 왜 생각이 나는 걸까?


장조림을 해야겠다.      


그리운 맛이 생각이 나는 건 포근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건데. 엄마? 아들? 아니면 쌀쌀해진 날씨 탓인가? 그래 겨울이 되면 따뜻한 숄을 두르고 눈길을 걸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들고~ ‘정신을 차려 서진 아줌마야!’      


일단 볼에 반 토막을 낸 고기를 넣어 위스키 스트레이트 1잔 정도 양을 물에 부어 섞는다.

한 두어 시간 담가두었다.

냄비에 고기를 넣고, 면 주머니에 대파, 양파, 마늘, 숙성 생강, 후추 그리고 깨끗이 닦은 골드키위 하나를 담아 냄비에 넣어준다. 그리고 물을 붓고, 조선간장, 양조간장, 어간장, 액젓을 넣고 끓인다.

아주 푹 끓인다.   

  

그런데 보통 난 고기를 삶을 때 키위를 넣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갖춰 놓았던 홍두깨는 있었지만, 요리에 자주 사용하던 과일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감과 골드키위뿐. 선택지가 없었다. ‘고기에서 홍시 맛이 나기에 홍시 맛이 난다고 이야기를 한 건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물으시면 홍시 맛이 나기에 그렇다고 이야기를 드린 것인데….’에 나오는 것처럼 감은 끓이는 요리에 많이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감은 패스.      


키위가 고기를 부드럽게 해준다. 하지만 키위를 이용한 소스로 오랜 시간 고기에 재워두거나, 키위를 사용하며 양 조절에 실패하면 고기의 식감이 물컹거린다. 그래서 금방 볶아 먹는 요리에는 이따금 사용하지만, 오래 끓이거나 두고 먹어야 하는 요리에는 난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야생 고기를 이용한 요리에는 제격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없으니 사용해야지.     


어느정도 익었다 싶으면

젓가락으로 찔러보거나 고깃덩어리 하나를 꺼내, 조금 뜯어 씹어보고 맛을 본다.

당하다 싶으면 대파, 양파, 마늘, 숙성 생강, 후추 그리고 키위가 담겨있던 면 주머니를 꺼낸다.

냄비에 담긴 고기를 꺼내 식혀 잘게 찢어준다.


뜨거우니까 꼭 식혀야 한다. 급하다고 ‘아 뜨거!’를 외치며 찢어대다간 다음엔 하기 싫을껄.     

역시 키위를 넣었더니 고기가 부들부들하다. 너무 부드러워 나이 드신 분들이나 아이들에겐 안성맞춤이라 권하고 싶다.  

   

냄비에 찢은 고기를 넣고, 설탕이나 엿, 매실청, 탱자즙을 넣고 끓인다.

아! 달걀은 옵션. 달걀 12개를 삶아 냄비에 넣어 같이 조렸다.     


음~ 맛이     


얼른 두부가 퇴근하고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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