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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14. 2023

오늘 주인공의 주인공은 쪽파입니다. 삼겹살은 거들뿐

쪽파 가득 삼겹살 두루치기

“언니, 남은 삼겹살로 매콤한 두루치기 해 먹을까?”라는 말을 남기고 동생 두부가 출근했다.


그 말인즉 나보고 500g 정도 남은 삼겹살을 잘라, 고추장 1숟가락, 고춧가루 1숟가락, 집간장·양조간장·어간장 믹스에 매실액 반 숟가락, 탱자즙 반 숟가락, 절구에 빻은 마늘과 생강을 넣고, 후추 약간 뿌려주고 설탕 조금 첨가한 삼겹살 두루치기를 만들어 놓으라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젊은 나도 어제 창고 벽 미장과 텃밭 정리로 팔이 아픈데 언니는 더 하지.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며 걱정을 하던 것은 페이크였다.     


마음을 추스르고 텃밭이 궁금해 나가 보다... 발견한 고무통에 담겨있던 몰탈 믹스는 굳어 그대로 수돗가에 방치되어 있다. ‘이놈 두부, 정리하지 않은 거야!’

저쪽에서 막 산책을 끝내고 들어오는 길동이와 두부가 보인다.

낙엽은 뒹굴지만, 손을 좀 봤다고 깔끔하게 정리된 텃밭이 두부를 살렸다.

위태위태하던 창고 벽도 미장이 잘 되었는지, 떨어진 곳 하나 없이 다듬어 놓은 그대로 황토가 붙어있다.  

   

집으로 들어와 포트 전원 버튼을 누르고 찬물에 뜨뜻한 물을 타 한잔 마시고, 부스럭 소리에 항상 뺏어 먹고 싶어 달려오는 길동이를 손으로 밀어내고 인간용 홍삼 쭈르를 쪽쪽 빨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개. 수. 대.


어제저녁 손님이 오시고 간 후, 너무 피곤해 설거지거리를 개수대에 잔뜩 쌓아놓고 잠들어 버렸다. 분명 녀석은 이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말을 하고 나갔다.

식탁에 앉아, 불 멍도 아닌, 물 멍도 아닌, 설거지 멍을 때리며 개수대를 바라보았다. 일단 설거지를 해보자는 생각에 식탁을 짚고 으스러질 듯한 허리에 손대고 일어나다, 뒹구르르 굴러 다시 거실 바닥에 누웠다.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데, 몸은 간질거리고.

성격상 눈떠있는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천장을 보고 있지 못하는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책이라도 볼까?’ 몸을 꿈틀대 책이 쌓여있는 선반으로 기어가듯 꼼지락거리는데 너무 귀찮다.

이젠 겨울나기 준비가 다 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워서인지 몸이 쉬고 싶다고 움직이질 않고 눈이 감긴다.

이러면 아니 되오. 아니 되를 외치다. 몸뚱이를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아침이다.

자자 수업 재료 주문부터 시작할까?

아니야! 따뜻한 커피부터 한잔.

나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 텃밭에 상당수의 땅덩이를? ‘그래봐야 10평도 안 되지만.’ 차지하고 있는 품종이 있었으니 바로 쪽파다.

전라도 사투리에 서툰 나는, 이웃집 할머니가 파 씨를 준다는 말을 팥 씨로 알아듣고 감사하는 인사를 했다. 그날 저녁 무렵 할머니가 가져오신 쪽파 종자에 놀란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텃밭 구석진 곳까지 동네 분이 나눠준 쪽파를 심은 데다, 굽은 허리를 뒤로 젖혀 지팡이까지 짚고 오신 성의에 마다하지 못하고 ‘어! 땅이다.’ 싶은 곳에 잔뜩 심어놓은 것까지 쪽파가 풍년이다.     


두부가 아침에 주문하신 ‘매콤 돼지 두루치기’를 저녁으로 먹기 위해 난 준비를 시작했다.   

  

밥 한 숟가락에 익은 ‘삼겹살’이 안정적으로 올라 설 정도의 크기로 잘라준다.     


1:1:1의 집간장·양조간장·어간장이나 1:1:1/2의 집간장·양조간장·액젓처럼 식성에 맞게 비율을 한 간장 믹스를 준비한다.   

   

고추장 1T, 고춧가루 1T를 준비한다.  

    

매실액 1t, 탱자즙 1t, 설탕 1t, 후추 2꼬집을 볼에 담는다.    

 

돌절구에 콩콩콩 찧고 짓이긴 마늘과 생강을 볼에 넣어주고.     

나머지 간장 믹스와 고추장과 고춧가루도 넣고 삼겹살에 양념이 밸 정도로 골고루 주물러 준다.     


약간 국물이 있는 두루치기를 원한다면 배나 사과 그리고 양파즙 또는 무를 갈아서 즙을 짜 넣어도 좋다.

하지만 오늘은 물기가 없는 구이 같은 두루치기를 할 예정이기 때문에 난 필요가 없다.     


오늘의 주인공은 삼겹살이 아닌 쪽파.

두루치기엔 양파도 다른 어떤 채소도 들어가지 않는다. 단지 텃밭에서 뽑아 온 쪽파를 잔뜩 넣어 구울 참이다.     

사실 전 주부터 쪽파를 가득 넣고 상추와 오이를 곁들인 겉절이 같은 무침을 손님상에 내놓았었다. 모두 맵지 않고 달큰한 쪽파의 맛을 좋아했다. 그렇담 고기같이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겠어!

역시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파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비타민 A가 많아 감기 예방에 좋다니 많이 먹어야지.

    

쌀도 씻어놓고, 두부가 들어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6시가 넘어가는대도 들어오질 않는다.

전화가 왔다.

“언니, 밥은?”

“너 와야 먹지.”

“나 오늘 회식인데. 내가 말 안 했나?”

“너 삼겹살 두루치기 먹고 싶다는 말만 하고 나갔는데요.”

“미안 나 회식이야. 내일도 모레도. 난 말한 줄 알았지.”

“끊어.”

“미안. 미안. 언니. 언니이이이”  

   

나 3일 동안 두루치기 먹어야 해?

두부를 갖다 버려?

https://brunch.co.kr/@ginayjchang/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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